"항상 기도하고 와요, 자존감 높여 달라고"
노인일자리는 노인이 일자리와 사회활동을 통해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그 예산을 분담해, 전국 1천 개가 넘는 수행기관에서 일자리를 설계해 제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장 취재를 나갔던 그날 아침에도 지하철역은 출근길 시민들로 붐볐고, 열차가 들어온다는 소리에 환승을 하려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서서 가 주세요.
"서서 가 달라"고 틈틈이 외치던 이 여성은, 에스컬레이터 왼편에 서서 사람들이 걷거나 뛰어 에스컬레이터를 지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길 막기'가 그에게는 일자리였습니다. 이 일자리는 노인일자리의 다양한 유형 가운데에서도 '노인 역량 활용 사업' 분야로 분류돼 있는 일입니다. 노인들의 숙련된 기술과 전문성, 경험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사업입니다.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길을 막고 선 게 노인의 전문성을 발휘해 사회에 기여하는 일인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일을 하면서 어려움이 없느냐는 저의 질문에, 이 노인일자리에 참여했던 노인은 곧바로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노인일자리 참여 노인
자존감은 좀 떨어져요. 항상 기도하고 와요. 자존감 높여 달라고. 욕을 많이 먹어요.
길을 막고 선 탓에, 출근길에 마음이 바쁜 시민들로부터 욕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겁니다.
교육 대신 팸플릿 주면서 "집에서 읽어보세요"
노인일자리 참여 노인
몇 초 사이로 이걸(환승을) 놓치잖아요. 뒤에서 계속 욕을 하더라고요. (일자리가) 안전 문제에는 굉장히 둔감하다, 직접 피부로 느꼈고.
일을 한 첫날 욕을 너무 많이 듣고 위험함을 느끼기도 해서 노인일자리 참여자 2명이 에스컬레이터 각각 1대씩에 나눠 올라서려고 했는데, 역 관계자가 다시 한 에스컬레이터에 2명이 나란히 서라고 했다는 겁니다. 또, 승강기안전공단 관계자가 업무 시작 초반 현장에 오긴 했지만, 업무에 대해 세세하게 교육을 하거나 안전에 대한 당부를 한 게 아니라, 승강기 탑승에 대한 일반적인 매뉴얼이 담긴 팸플릿을 주고 집에서 읽어보라고 하는 데 그쳤다고도 했습니다.
노인일자리 참여 노인
(채용 때) 경력은 안 물어봅니다. 팸플릿을 주면서, '원래 이걸 교육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집에 가서 읽어보시라.'
A 씨는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지인들도 일자리 제공 기관에서 "무조건 다치지 마라, 다치면 골치 아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그렇다고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노인일자리 '115만' 역대 최대…재계약 못할까 '눈치'도
"가스 누출 사고 막은 경험…큰 보람으로"
좀 점검해도 되겠습니까?
노인 2명이 1조로 집집을 돌며, 외부에 설치된 가스통에서 가스 누출은 없는지, 접지는 잘 돼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하고 이를 기록했습니다. 점검 시작 전에는 어떤 부분을 점검할지 집주인에게 설명했고, 점검 후에도 점검 결과 내용을 소상히 전하고 다음 점검 일정을 안내했습니다. 이 현장에서 만난 올해 78세 장지연 어르신은 가스안전관리자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점검 현장을 동행하는 내내, LPG 가스의 성질이 어떤지, 그래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점검하고 있는 건지 등을 꼼꼼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문 시공업에서의 가스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한 이 어르신은 경력을 살려 이 노인일자리 채용 과정에서 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 일자리를 찾게 됐는데, 우선 많이 움직이게 돼 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했습니다. 2년 반째 이 일을 하고 있는 어르신은, 가스 누출 사고를 막은 경험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장지연 / 노인일자리 참여 노인
무기력해지고 해서 일자리를 찾게 됐는데 우선 건강이 좋아진 것 같고. (가스 누출) 사고로 이어질 뻔한 걸 모면한 경험을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점검 현장 2~30m 인근부터 뭔가 냄새가 났는데, 농촌에서는 이를 거름 냄새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 잘 발견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기기로 점검을 해보니 경보가 울렸고, 즉시 밸브를 차단하고 그 집에 살고 있던 어르신을 대피시킨 후 가스 공급기관을 불러
추가 조치를 취했던 경험을 그간의 가장 보람으로 꼽았습니다.
당장 가계에 도움이 되는 이 노인일자리, 지난해 노인인력개발원이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니 참여 이유 1위는 역시 생계비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기 노인이라고 부르는 74세 이하 노인을 따로 떼어보면 조금은 다른 경향도 관찰됩니다. 자아 실현, 건강 유지, 관계 형성 등 비경제적 사유로 노인일자리에 참여한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지난해에는 31.6%에 달한다는 겁니다. 개발원은 단순한 소득 보전 수단을 넘어, 고령층의 사회 참여와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으로 노인일자리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특성과 욕구를 반영한 맞춤형 사업 설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시범사업으로 추진할 신규 노인일자리 아이템을 발굴하려고 다음 달 10일까지 공모전을 열고 있습니다. 노인역량활용사업 분야도 공모 분야에 포함돼 있고요. 희망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의 역량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안녕과 존엄이 보장될 수 있는 일자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걸 놓쳐서는 안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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