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취재파일

"한 해 구축함 겨우 1척 생산"…미 해군의 '진퇴양난' [취재파일]

"한 해 구축함 겨우 1척 생산"…미 해군의 '진퇴양난' [취재파일]
▲ 이지스 전투 시스템을 탑재한 미 해군 주력 알리 버크급 구축함. 미 해군은 내년 이런 구축함을 단 한 척 건조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사진=DVIDS)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안보 관련 미국 상하원 청문회는 한반도 현안을 파악하는데도 유용합니다. 최근 상하원 청문회를 보면서 작년과도 기류가 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해군 관련한 청문회를 보면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해군이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가진 상태이고, 그걸 스스로도 알면서 빠져나갈 길을 못 찾고 있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법대로면 355척, 지금은 291척"…숫자로 드러난 미 해군의 '민낯'

미 해군 청문회

핵심은 지난 19일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해군 청문회였습니다. 헝 카오 해군장관 대행과 대럴 코딜 해군참모총장, 에릭 스미스 해병대 사령관이 나란히 나와 2027 회계연도 예산과 함정 건조 계획을 놓고 의원들의 추궁을 받았습니다. 로저 위커 군사위원장이 모두발언부터 작심하고 숫자를 들이밀었습니다. 법으로 정한 함대 규모는 355척인데, 10년 넘게 그 목표에 도달한 계획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지금 미 해군이 보유한 함정은 고작 291척이라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건 이번 예산안이 이지스 구축함을 1년에 딱 1척만 건조하겠다고 잡아놓은 점입니다. 위커 위원장은 앞으로 10년간 구축함이 매년 평균 3척 넘게 퇴역하는데 1척씩만 지으면 "그 계산은 맞지가 않는다"고 직격했습니다. 해병대가 운용해야 할 상륙함도 40척이 필요한데 지금은 31척에 그치고 있다는 것도 스미스 사령관 입으로 확인됐습니다.

압권은 카오 장관 대행이 스스로 꺼낸 중국과의 격차였습니다. 미국이 보유한 상선은 188척, 군수지원선은 105척에 불과한데 "중국은 지금 1만 1천 척의 상선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1만 1천 대 188이라는 숫자를 미 해군 수장이 직접 입에 올린 것입니다. 상선까지 숫자를 비교해야 하나 싶었는데, 전시에 미군은 보급품을 해외로 옮기는 데 상업용 해상 수송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카오 대행도 "병참이 전쟁을 이긴다"고 답하며 동의했습니다. 즉 상선이 적으면 전쟁이 터졌을 때 군수 보급선 자체가 부족해진다는 얘기였습니다. 게다가 평소 상선을 많이 찍어내는 나라라야 유사시 군함도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청문회 참석자들도 입을 모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구축함 한 척 개발, 건조하는 데 6년에서 8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사업가 출신 릭 스콧 상원의원은 "왜 배 한 척을 6개월 만에 설계 못 하냐. 사람들 한 방에 모아놓고 결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답답해할 정도였습니다. 이게 수십 년에 걸쳐 미국 조선 산업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문을 걸어 잠그면서 조선 산업 자체가 무너진 결과라는 건 그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건조 역량이 안 된다"…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솔직한 실토


사실 이 허약함의 본질은 다른 청문회에서 더 솔직하게 드러났습니다. 지난 12일, 상원 세출위 국방소위에 나온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이 직격 했습니다. 이지스 구축함이 이란 미사일 요격부터 전 세계 작전 지원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왜 이번 예산안엔 1척만 넣었냐는 것이었습니다. 25년엔 3척, 26년에는 2척이었는데 이제는 1척 겨우 만드냐는 지적이었습니다.

헤그세스의 답이 의미심장했습니다. "답은 모두 건조 역량(shipbuilding capacity)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소에 650억 달러를 투자하는 거고, 그 역량이 늘어나는 즉시 구축함을 더 발주하겠다는 논리였습니다. 결국 미국 해군 스스로 "지금은 배를 더 지을 능력 자체가 없다"고 시인한 셈입니다. 구축함을 1척으로 줄인 게 전략적 판단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걸 인정한 것입니다. 헤그세스는 지난 2월 메인주 배스의 아이언 웍스 조선소에 가서 최대한 발주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쳐놨는데, 그게 1척이었으니 체면을 더 구긴 셈입니다.

그런데 콜린스 의원은 미국산 구축함은 1척으로 깎으면서, 같은 예산안에서 외국산 수상 전투함을 위해 18억 달러를 따로 요청했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직격 했습니다. 정작 미국산 구축함에 꾸준한 수요 신호를 줘야 배스 같은 조선소가 생산 속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는데, 예산을 이렇게 짠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물론 콜린스의 지역구가 메인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팔아넘긴 격"…해외 건조에 등 돌린 의원들


마찬가지로 메인주를 지역구로 둔 앵거스 킹 상원의원은 해군 청문회에서 "일본과 한국에서 군함을, 심지어 구축함을 짓는다는 얘기가 돈다"며, 이건 "보스턴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팔아넘긴 이래 최악의 아이디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아무리 동맹이라도 그 정도 기술을 넘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킹 의원의 비유가 꽤 신랄했습니다. 미군 병사들이 입는 옷은 전부 미국산을 쓰도록 법으로 강제하면서, 정작 그들이 탈 배는 외국에서 만들어도 된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습니다. 마크 켈리 상원의원도 결이 같았습니다. 동맹과 협력해 미국 내 산업 기반을 키우는 것과, 전시에 중국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는 외국 조선소에 전략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외국 조선소가 미국 돈 받고 자기네 야드에서 배를 지어버리면, 결국 미국에 투자할 유인이 사라진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의원들이야 지역구 이해관계가 있으니 그런 압박을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해군 수뇌부의 화법도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카오 장관 대행은 "우리가 해외에서 배를 사들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텐데, 아니다. 외국 조선소가 미국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고, 그걸로 일자리 54만 개를 만들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대럴 코딜 해군참모총장은 한발 더 나가, 외국 조선소와 외국산 함정을 미 해군 무기 체계에 들이는 건 "전혀 간단한 결정이 아니다"라며 그 배를 어떻게 싸우게 하고, 누가 몰고, 손상 통제는 어떻게 하고, 부품은 어떻게 댈지 전부 따져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폈습니다.

능력은 안 된다면서 동맹의 손은 마다하고…'중국과 경쟁' 가능할까

헤그세스 상원 청문회

조선업 건조 능력은 안 된다고 국방장관이 실토했는데, 그 부족한 능력을 메워줄 동맹의 손은 의회가 앞장서서 뿌리치는 형국입니다. 헤그세스 장관은 청문회에서 동맹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깃발이 목표가 아니다. 실제로 싸울 수 있는 능력 있는 부대의 숫자가 목표"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 일본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능력이 손을 내미니까, 이번엔 "그건 미국 안에서 미국 노동자가 지어야 한다"며 그 능력을 마다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도 갈 수 있는 길이 처음부터 좁았습니다. 미 해군 군함을 한국 땅에서 지어 납품하는 건 번스-톨레프슨 수정안이라는 오래된 법으로 애초에 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조선사들은 규제 문턱이 가장 낮은 정비, 수리(MRO)부터 교두보로 삼아 한화, HD현대가 미 해군 비전투함 MRO 계약을 따냈고, 다음 단계로 비전투 함정 건조, 나아가 규제가 풀린다면 전투함까지 넘봤던 게 사실입니다.

한국은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1천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이른바 'MASGA' 구상을 내놨고, 이는 2025년 한미 관세 합의의 한 축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 기류에서 보듯 의회는 "미국 땅에서 미국 노동자로 짓는다"는 원칙을 더 단단히 조이는 분위기라는 게 확인된 셈입니다.

자국 산업 기반을 지키겠다는 미국 의회의 의지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 1만 1천 척 대 미국 188척이라는 엄청난 격차 앞에서, 능력은 안 된다고 실토하면서도 동맹의 손까지 마다하며 모든 걸 미국 안에서만 해결하겠다는 게 과연 현실적인 선택인지는 의문입니다. 능력도, 시간도, 동맹 활용 의지도 어느 하나 충분치 않은 진퇴양난 속에서, 미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에 맞서 해군 최강대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뉴스 그 뒷이야기 '취재파일'더보기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