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 戰雲 일시에 걷어낸 평창 올림픽 교류
남북한 관계도 최악이었습니다.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모든 공식 대화 채널이 끊겼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올림픽'을 제안하며 북한의 참가를 지속적으로 타진했지만 북한은 올림픽 직전까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올림픽 안전마저 우려됐습니다.
절망적 분위기는 2018년 1월 1일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를 기점으로 급반전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평창 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사흘 만인 3일 판문점 남북 직통 연락 채널이 2년 만에 전격 재개됐고 9일 고위급 남북회담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 조건과 절차가 일사천리로 합의됐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습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결성돼 함께 뛰었습니다.
스포츠가 앞장서자 얼어붙었던 한반도가 순식간에 녹아 내렸습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포함된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그해 4월 27일 제1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그해에만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남한 정부는 이런 외교적 공간을 활용해 북한과 미국 사이를 적극적으로 중재했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습니다. 직전까지 '꼬맹이', '늙다리'라고 서로 욕하며 전쟁을 불사할 태세였던 북한과 미국 정상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장면 2 : 대결에서 교류로 이끈 통일축구대회
축구 대회가 튼 물고를 통해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결정적 마중물이 흘렀습니다. 불과 1년 뒤인 1991년 12월 남북은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불가침에 합의하는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향후 사회, 문화, 예술 등 다방면의 민간 교류가 이뤄졌습니다.
장면 3 : 8년 만에 방한한 북한 선수단 '무표정, 무관심'
많은 기자들과 시민들이 공항을 찾아 이들을 환영하고 말을 건넸습니다만 단 한 마디의 대답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표정 역시 굳어 있었고 희미한 미소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당초 북한 선수단은 남한팀인 수원FC 위민과 같은 호텔을 쓰기로 계획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이를 거부하고 AFC를 통해 숙소를 따로 정해 동선을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선수단의 방남 사실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측은 이번 방한이 대회 참가 이외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는 모습입니다.
이번에도 남북 관계 전환 돌파구 되나?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부정적입니다.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방한 배경은 이번 경기를 해야 결승에 갈 수 있고 불참할 경우 감당할 국제적 징계와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선을 긋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이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공식 클럽 대회를 정치적 이유로 보이콧하면 향후 수년 간 북한 여자축구 전체가 AFC 및 FIFA 주관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중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가장 강세를 보이는 여자 축구 자산을 스스로 사장시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번 대회 우승 상금인 100만 달러도 포기해야 합니다. 외화난을 겪는 북한 정권에게 국제 스포츠 대회를 통해 벌어 들이는 15억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또한 북한이 이번 남북 대결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크다는 점도 방한의 핵심 요인입니다. 북한 여자축구는 최근 U-17, U-20 월드컵을 휩쓸며 세계 정상급 전력을 증명했습니다. '내고향여자축구단' 역시 객관적 전력에서 남한의 수원FC 위민보다 우세하다는 평가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적대국 심장부에서 남한팀을 꺾고 공화국 위상을 떨쳤다"는 선전은 내부 결속에 더없이 좋은 소재입니다. 패배할 위험이 컸다면 방한을 주저했겠지만, '실력의 우위'가 확실하다는 계산 아래 방한을 승인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북한 정권이 "이번 기회에 남한과의 대화 문을 열거나 관계 복구의 모멘텀을 만들려는 취지"는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두 개의 적대국가론' 속 '해빙의 틈'은 없을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이 아무리 철저히 통제하려 해도 축구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남북 청년들이 만나 발을 맞추고 남한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것 자체가 큰 자극입니다. 북한이 구축한 '적대국 프레임'에 내는 균열입니다. 따라서 이번 북한 축구단의 방한에 정치적 메시지를 억지로 부가하는 것은 피하고 스포츠 본연에 집중함으로써 북한 당국에 정치 외교적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향후 비슷한 교류가 이어지고 그런 움직임들이 쌓이고 모여 현재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스포츠가 다시 한 번 '해빙의 돌파구' 역할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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