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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화번호에 18개 유령회사, 데이터로 해부한 '산림 카르텔'의 실체 [취재파일]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박두진 시인의 「청산도」첫 구절입니다. 예로부터 한국인이 산을 바라봐 온 애정 어린 시선이 이 짧은 문장에 압축돼 있습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 산에서 시인이 묘사한 생명력 넘치는 풍경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취재진이 다시 찾은 강원도 강릉 옥계가 그 적나라한 증거입니다. 2019년 4월, 대형 산불이 250여 헥타르를 잿더미로 만든 이 자리는 7년이 지난 지금도 헐벗은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능선 너머 동해까지 이어지는 비탈에는 어린나무 몇 그루만이 듬성듬성 위태롭게 서 있었고, 열화상 드론으로 내려다본 조림지는 온통 생명력을 잃은 노란빛뿐이었습니다. 살아남은 나무는 전체의 1%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복구가 끝난 산을 열화상 드론으로 찍은 영상

동행한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는 "99% (조림) 실패한 곳, 아마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현장일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비단 옥계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산림업계 관계자들은 전국 곳곳의 산림 복구 사업이 이와 비슷하게 병들어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었는데도 우리 산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진 걸까요? 취재진은 그 배경에 똬리를 튼 기형적인 구조를 데이터로 파헤쳐 보기로 했습니다.
 

'숫자'로 드러난 유령회사의 거대한 네트워크

이번 취재의 출발점은 숲이 아니라 조달청의 '숫자'였습니다. SBS 탐사기획팀이 지난 6년간(2020년 1월~2026년 3월)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산림사업 낙찰 1만 3천여 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예산액으로만 따지면 1조 7천100억 원 규모. 그러나 이 거대한 시장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산림업체가 아닌, 서로의 전화번호와 대표자명을 공유하는 '페이퍼 네트워크'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페이퍼컴퍼니 네트워크 분석 그림

분석 결과, 조달청 산림사업 입찰에 참여한 1천578개 업체 가운데 36.1%가 다른 상호를 쓰면서도 동일한 전화번호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들 '한 몸'으로 추정되는 업체들이 6년간 따낸 금액만 3천246억 원. 조달청 산림사업 낙찰 전체의 43.4%를 싹쓸이한 것입니다.

네트워크 형태로 시각화 해보면 수의계약 행태는 비정상에 가깝습니다. 시장은 서로 단절된 236개의 '네트워크 단위'로 분리되어 있었고, 이 가운데 10개 이상의 법인이 결합된 9개 거대 네트워크가 수의계약 시장의 '권역'을 좌우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네트워크는 법인 49개가 한 사슬로 묶인 군집이었습니다. 이들은 6년간 234건, 145억 원의 사업을 따냈습니다. 등기상 대표는 5명 이상으로 모두 다른 이름이었지만, 충남 지역의 4개 전화번호와 경남 사천의 번호가 한 법인을 매개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충남에서 경남까지 5개 시·도에 걸친 법인들이 등기상으로만 분리된 채 한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무실을 방문해 보면, 사무실은 문이 닫힌 채 비어있는 곳이 많습니다.

두 번째로 큰 군집은 법인 30개가 인터넷 전화(070)로 묶인 형태였습니다. 6년간 263건, 170억 원을 가져갔습니다. 회사 이름이 '○○임업'으로 끝나는 30곳이 070으로 시작하는 단 네다섯 개 번호로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일 전화번호로 가장 많은 법인을 가진 곳은 어떨까요? 단 한 개의 전화번호 아래 18개 산림법인이 등기돼 있었고, 6년간 110건, 70억 원을 받아갔습니다. 회사 이름은 18개가 다 다르지만 외부에서 연락되는 통로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전화받는 한 사람이 사실상 18개 회사를 한꺼번에 운영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 회사 없어요"…미용실과 살림집 뒤에 숨은 유령들

데이터 분석으로 걸러낸 페이퍼컴퍼니의 실제 주소지를 추적해 봤습니다. 그들이 관리했다는 조림 현장은 처참했습니다. 베어낸 잔가지는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고정되지 않은 흙더미는 위태롭게 흘러내려 산사태 직전의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책임을 묻기 위해 업체를 확인해보니 이미 '폐업' 상태입니다. 이유를 듣기 위해 해당 업체 대표가 명의만 바꿔 운영 중인 또 다른 법인의 주소를 확인해 강릉의 한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등기부상 법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사무실이 아닌 '동네 미용실'이었습니다. 취재진을 본 미용실 사장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장사한 지 19년째예요. 2층은 우리 집. 주택" 서류상으로는 숲을 가꾸는 전문업체지만, 실상은 모르는 사람의 건물을 빌려 쓴 유령이었던 셈입니다.

페이퍼컴퍼니 우체통 사진

또 다른 주소지로 찾아갔더니 작년부터 쌓인 우체국 등기 도착 안내서가 겹겹이 눌러 붙어, 오랜 시간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사무실이지만, 이 페이퍼컴퍼니 대표들은 전화기 너머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뻔뻔했습니다. 비가 내려 작업이 불가능한 이른 아침이었지만 "지금 현장에 나와 있다"며 거짓말을 되풀이했습니다.

페이퍼컴퍼니 취재 그림

취재진이 방문한 6~7곳의 페이퍼컴퍼니는 공통적으로 상시 근무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산림 사업체의 기술 인력은 상시근무가 원칙입니다. 통상적으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가 기준이며, '비상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확률 게임' 입찰과 '자격증 대여'가 만든 견고한 회로

이 비상식적인 구조가 버젓이 굴러가는 데는 '허술한 입찰 시스템'과 '자격증 불법 대여'라는 두 장치가 맞물려 있습니다. 현재 산림 복구 사업의 입찰은 예정 가격에 근접한 금액을 써낸 업체 중 무작위로 낙찰자를 뽑는 방식입니다. 기술력이나 실적보다 운이 좌우하다 보니, 한 사람이 법인 여러 개를 만들어 동시에 응찰하면 그만큼 당첨 확률이 올라갑니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결국 A 업체가 낙찰받든 B 업체가 받든, 현장에 가면 똑같은 작업자가 와 있다. 다 페이퍼컴퍼니니까 그러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산림청 지침은 현장 감독자 1명이 관리할 수 있는 사업장을 같은 시·군 내 3곳까지로 제한하지만, "산림청 지침이 정한 '현장 감독자 1인 통합 한도 시·군 3곳'을 넘어 한 해에 4곳 이상의 시·군에서 동시에 사업을 따낸 업체만 175곳. 사실상 한 명이 현장에 상주할 수 없는 거리에서 공사가 동시 진행돼 온 셈입니다.

산림분야 자격증 대여글 비율 추이

이 부실 회로의 또 다른 축은 바로 '자격증 대여'입니다. 페이퍼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산림기능사·산림기사 자격증을 빌려 인력 요건을 채워야 합니다. 산림 기술자들이 모이는 국내 유명 포털 커뮤니티의 구인·구직 게시글 5천698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4천59건(71.2%)이 자격증 대여 의심 글이었습니다. 비율은 해마다 상승해 2026년에는 90.6%에 달했습니다. 불법 대여가 확인된 53개 업체가 챙긴 계약만 269억 원입니다.
 

단단하게 묶인 '산불 카르텔'과 무능한 단속

수년간 곪아온 이 병폐를 단속해야 할 정부 부처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답은 산림청의 실태 조사 결과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산림청은 매년 두 차례 부실 법인과 자격증 대여 실태 조사를 벌이지만, 지난해 자격증 불법 대여 적발 건수는 놀랍게도 '0건'이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몇 월 며칠 몇 시에 점검 나간다고 미리 알려준다. 그때 자격증 소지자들을 불러다 사무실에 앉혀 놓으면 그만"이라고 비웃듯 증언했습니다. 단속의 칼날이 무뎌진 정도가 아니라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이었던 셈입니다.

산림청은 보도 직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을 이어갔습니다. 산림청의 한 공무원은 취재진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에 활용한 자료가 무엇이며, 혹시 줄 수 있냐"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개된 예산 집행 데이터조차 스스로 분석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자인한 셈입니다.

산불 카르텔 뉴스 화면

더 안타까운 건, 이 시스템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학계와 전문가들의 침묵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은 산림청의 정책적 결함을 지적하는 걸 극도로 주저했습니다. 서울 인왕산 현장 점검을 위해 동행 취재를 약속했다가도, 전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일정을 취소하거나 "업계 내부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고 털어놓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산림 분야 학자 상당수가 산림청의 연구 용역을 수행하거나 각종 위원회 자문역을 맡으며 촘촘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연구비'와 '자문료' 라는 끈에 묶인 전문가들은 산림청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뿐, 정책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업체는 '확률 게임 입찰'에, 자격증 시장은 '공무원 인맥'에, 그리고 학계는 '정부 용역'에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이 세 겹의 견고한 매듭이 산림업계의 거대한 침묵을 강제하고 부패를 지탱하는 '산불 카르텔'의 진짜 뼈대였습니다.
 

보도 후 움직인 정부…카르텔의 고리 끊어낼 수 있을까

SBS 취재진이 산림청에 정보공개청구와 공식 질의를 보낸 직후, 산림청은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부실 운영 업체를 집중 점검해 등록 취소와 형사 고발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취재진이 질의한 항목들이 고스란히 근절 대책에 담긴 것을 보면,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수수방관해 왔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파장은 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SBS 보도를 직접 언급하며 담당 부처를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수년간 계속된 일인데 왜 산림청이나 농식품부는 지금까지 몰랐을까. 또 혹시 알고도 조치를 했는데 왜 조치 내용이 이렇게 부실했을까."

이 대통령은 '산불 카르텔'에 대한 전면 파악과 문책, 근본적 대책 수립을 지시했습니다. 산림청은 즉각 전수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하고 유관 기관의 데이터를 연계해 자격증 대여에 대한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은식 산림청장은 본인 SNS에 산림법인 관리 부실 문제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비정상적인 제도와 관행을 정상화하는 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댓글 텍스트 분석 이미지

보도 직후 여론도 뜨거웠습니다. 산불 카르텔 관련 유튜브 기사 댓글 약 8천 개를 분석한 결과, 주목할 단어는 '카르텔', '조사', '처벌', '단속', '비리', '한통속'이었습니다. 시청자들 역시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분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다시 '우뚝 솟은 푸른 산'을 위하여

지난해 산불 피해액은 6조 7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올해 산림청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3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특히 2025년 3월 경북 안동·의성 산불 이후, 관련 수의계약 규모는 1천633억 원으로 폭증했습니다. 산불이 대형화 될수록 역설적으로 '산불 카르텔'의 먹잇감도 함께 커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막대한 혈세를 들여 나무를 심는 방식만이 유일한 해법일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은 "모든 산불 피해지에 일률적으로 인공 조림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숲 스스로 회복하도록 두는 '자연 조림'이 더 효율적이고 건강한 복원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찾은 강원도 강릉의 산불 현장은 이런 문제의식을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나무를 심은 인공 조림 구역에서는 식재된 나무 상당수가 말라 죽어 있었던 반면, 자연의 회복력에 맡겨진 구역에서는 새순과 어린나무들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며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 역시 "지역과 환경에 따라 자연 조림 중심의 복원 방식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산불 카르텔 뉴스 화면

물론 인공 조림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급경사지나 토사 유출 위험 지역처럼 반드시 인위적 복원이 필요한 곳도 분명 존재합니다. 문제는 어떤 곳에 어떤 방식이 필요한지에 대한 과학적 판단보다, 예산 집행과 사업 유지가 우선되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나무를 심어야 예산이 생기고', 그 예산을 둘러싸고 페이퍼컴퍼니와 메뚜기 업체들이 움직이는 구조 속에서, 복원의 목적보다 사업 자체가 우선되는 왜곡이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게 됩니다. 산불 복구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심었는가'를 경쟁하는 사업이 되어선 안 됩니다. 산의 생태와 회복력을 가장 우선에 두고, 인공 조림과 자연 조림 가운데 무엇이 더 적절한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정책적 논의도 이제는 시작돼야 합니다.

박두진 시인이 「청산도」에서 노래한 "우뚝 솟은 푸른 산, 짙푸른 산"은 1949년의 풍경으로만 남아 있어선 안 됩니다. 지금 우리의 산이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생명의 공간입니다. 산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세금이 오히려 산을 망치는 구조를 키우고 있다면,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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