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내에 판매되는 전분 및 당류(전분당) 가격을 짬짜미한 혐의를 받는 식품업체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약 8년간 이뤄진 담합 규모는 식료품 업계에선 역대 최대인 10조 원대로, 이를 통해 60∼70%가량 인상된 제품 가격은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됐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23일 대상, 사조CPK, CJ제일제당 법인과 대표이사 등 임직원 21명, 전분당협회장 A 씨 등 총 25명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오늘(23일) 밝혔습니다.
이들은 2017년 7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분당 및 그 부산물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습니다.
전분당은 옥수수 등을 원료로 한 전분과 당류를 말합니다.
물엿, 과당, 올리고당 등 당류와 식품용 전분은 과자와 음료, 유제품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산업용 전분은 제지나 섬유 생산에 사용됩니다.
기소된 피의자들은 전분당과 그 부산물의 가격 변동 폭과 그 시기 등을 임의로 정하고, 서울우유나 농심 등 대형 수요처가 발주한 입찰에서도 짬짜미를 벌여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8년간 담합 규모는 약 10조1천520억 원으로, 국내 식료품 담합 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이 같은 담합으로 인해 전분 가격이 담합 이전보다 최고 73.4%, 당류 가격은 최고 63.8% 각각 인상됐으며, 그 피해가 소비자들에게 모두 전가된 것으로 검찰은 분석했습니다.
나희석 부장검사는 오늘 브리핑에서 "통상 식품업계 영업이익률은 4∼5%에 불과한데 전분당 회사들은 담합을 통해 실제 영업이익률 10% 이상을 초과 달성하는 등 막대한 경제상 이익을 취득해 온 사실을 수사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전분당 시장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상·CJ제일제당·삼양사·사조CPK는 물엿, 과당 등 품목마다 목표 가격을 정해두고 저마다 목표가보다 높은 인상금액을 통보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담합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각 회사의 인상 가격과 공문을 보내는 시기도 다르게 조율했습니다.
4개 회사 팀장이 모여 목표가와 각 사 인상 금액, 공문시행일 등을 정리한 화이트보드 사진도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습니다.
포스코 같은 대형 실수요처 입찰 과정에서는 유찰로 인해 3차 입찰까지 진행될 것을 예상하고 1∼3차 제시 금액을 업체별로 합의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전분당 부산물의 경우 1위 업체가 가격을 정하고 나머지 업체에 연락을 돌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 재고가 부담된다고 하자 1위 업체는 '못 팔면 우리가 살 테니 우리를 믿고 이 가격으로 가자'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앞서 검찰이 설탕 담합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자 전분당 업체 관계자들이 "우리처럼 훈련이 됐었어야 하는데 훈련이 안 돼 있던 것 같다. 거기서 자료가 싹 나와버린 것 같다"고 하거나 "교육받았는데 실형 산 사람은 없고 다 집행유예로 빠졌다고 하더라"는 대화를 주고받은 녹취도 확보됐습니다.
전직 전분당 업체 임원이 현직 직원에게 연락해 "나도 소환되는 것 아니냐. 휴대전화를 바꿔야 하냐"고 하자 직원이 "영업본부장 선에서 정리될 것 같다"는 취지로 대화하는 내용도 나왔습니다.
1위 업체가 내부적으로 만든 '담합방지가이드북'에는 '내부 메신저와 휴대전화 메시지로 나눈 대화도 담합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설탕 담합 수사 과정에서 전분당 담합에 대한 혐의점을 포착한 검찰은 지난 2월 전분당 업체들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두 차례 고발요청권도 행사했습니다.
지난달 31일에는 대상의 김 모 사업본부장과 임 모 대표이사, 사조 CPK 이 모 대표이사 등 3명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김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발부했지만, 임·이 대표의 영장은 각각 '담합 행위에 대한 소명 부족',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 없음'을 이유로 기각했습니다.
이후 김 본부장을 우선 기소한 검찰은 수사 착수 두 달만인 오늘 담합에 관여한 임직원과 법인 등 25명을 무더기로 기소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적발된 4개 담합 업체 가운데 삼양사는 이번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수사에 협조한 점 등을 고려한 조치입니다.
검찰은 추후 공범자들의 재판 경과를 확인해 최종 처분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나 부장검사는 "서민경제를 교란한 담합 사범은 반드시 엄벌한다는 정부의 강력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시장에 전파다"며 "검찰은 앞으로도 국민 경제를 위협하는 각종 민생 침해 사범에 수사 역량을 집중해 공정한 경쟁 질서 확립과 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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