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결혼정보회사 홍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의사 배우자 만나는 법' 관련 영상
'연봉 25억 의사 남편의 현모양처 브이로그', '의사 남편을 둔 트리마제 사는 전업주부의 일상은?', '의사 남편이 전여친을 거르고 나와 결혼한 이유'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사 와이프, 의사 아내'를 검색하니 이러한 제목의 콘텐츠가 주르륵 뜹니다.
스크롤을 계속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갈수록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SNS에는 '의사 남편'을 내세운 콘텐츠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명품 쇼핑, 고급 호텔 방문, 한강뷰 아파트 등 고가 소비를 보여주며 의사 남편을 둔 삶을 과시하는 내용들입니다.
영상 속 인물들이 진짜 의사의 아내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병원 홍보나 마케팅을 염두에 둔 콘텐츠라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콘텐츠는 높은 관심 속에 많게는 600만~700만 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전문직 배우자 콘텐츠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부러움을 자극하는 소재가 결합한 결과"라며 "눈에 띄는 콘텐츠를 만들려는 과정에서 등장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이나 직업을 지나치게 돈과 연결해 보여주는 방식은 직업과 관계의 상업화로 비칠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점점 물질 중심적으로 흐르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의사와 결혼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겠다는 강의까지 등장해 논란이 됐습니다.
최근 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는 '5월 1일 오전 11시 오픈 예정'이라는 안내와 함께 '나는 어떻게 의사와 결혼했는가'라는 제목의 강의가 올라왔습니다.
강의의 목차에는 'SNS에서 의사 남편이 인기인 이유', '한국 사회에서 의사가 가지는 의미', '나는 왜 의사와 연애는 쉬웠을까', '의사 부모들이 조건을 더 따지는 이유', '의사라는 직업을 이해해야 결혼이 보인다', '의사의 인생 사이클 완전 분석' 등이 포함됐습니다.
'의사 남편'이 대세인 이유를 전면에 내세운 이 강의는 오픈 기념 할인가로 9만 9천 원인 강의료를 4만 9천 원으로 책정했다고 안내했습니다.
여기에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피부 시술 정리본과 체중 관리 꿀팁' PDF를 무료 배포한다고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해당 강의를 검색하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프로젝트로 페이지에 접근할 수 없다"는 문구가 뜹니다.
해당 플랫폼 고객센터에 문의하니 "메이커(강의 제작자)님의 요청으로 중단되었다"며 "강의 재개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해당 강의가 알려지자 비난이 빗발친 데 따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지난해 7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우리 오빠는 의사인데 돈이 없다"는 영상은 조회수 579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영상은 "첫째, 요즘엔 치킨도 안 시켜준다. 집에서 밥하라고 한다", "둘째 주말마다 호텔 가던 것도 없고, 이제는 넷플릭스나 보자고 한다", "셋째 우리 오빠는 돈이 없다. 근데 하루에 150만 원씩 주식을 산다", "넷째, 사람들은 우리 오빠가 늙고 못생기고 돈만 많다고 했다. 나 취집 왔다는 소리 들었는데 큰일 났다. 울더라도 아반떼에서 우는 것보다 페라리에서 우는 게 낫다"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여기에 3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연봉 25억 의사 남편의 현모양처 브이로그"는 조회수 628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집안일 하는 영상 속 주인공의 모습 뒤에는 한강뷰가 보이는 고급 아파트가 등장합니다.
역시 댓글에는 "부럽다"와 "허영심 끝판왕이다" 등 상반된 반응이 달렸습니다.
또 지난달 4일 인스타그램에는 "의사 남자친구 만난 게 인생 최대 업적인 나"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이 영상은 챗GPT에 "대한민국에서 서울대 나오고, 의사인데 연하인 남자친구 만나려면 몇 퍼센트의 확률이냐"를 묻자 "우리나라의 0.003%~0.005%"라는 답변이 제시된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남자친구에게 당장 절해야 해요"라는 자막이 붙습니다.
'의사 남편'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판사·검사·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 배우자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도 있습니다.
지난 2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전문직 사모님 되는 법 특강 제 1탄"이라는 제목의 영상 속 작성자는 "서른다섯에 연하 전문직이랑 결혼했어요. 사실 연하 전문직 남편 꼬시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알파메일(인기가 많은 매력적인 남성) 꼬시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마무리합니다.
내용 자체가 물질 만능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부적절하지만 진위 여부도 의문입니다.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하거나 남편과의 일상보다는 고가 소비 장면 위주로 구성된 경우가 많아 실제 '의사 남편'의 존재 여부 등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문직 배우자 콘텐츠가 결혼정보회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홍보 목적으로 만들어진 뒤 숏폼으로 점차 확장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의사랑 결혼하는 가장 빠른 방법"(결혼정보회사 유튜브 모***·6년 전), "결혼할 때 남자 의사를 만나길 바라는 분들만 보세요"(결혼정보회사 유튜브 커***·5년 전) 등이 대표적입니다.
병원 홍보용이라는 의혹도 있습니다.
지난 1월 스레드에는 한 홍보 컨설팅 대표가 "병원 마케팅을 배우고 싶은 의사 사모님이 있으면 가르쳐주겠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직장인 김 모(29) 씨는 "처음에는 그냥 웃기려고 만든 밈 콘텐츠인 줄 알았다"며 "연애나 결혼에서 현실적인 조건을 보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그걸 아예 상품처럼 포장해서 '전문직과 결혼하는 공략법'으로 파는 건 다른 문제다. 좋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대학원생 이 모(26) 씨도 "단순히 배우자의 직업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명품 소비나 호텔, 고급 아파트 같은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의사 남편 같은 표현은 사실상 이런 사치스러운 생활을 설명하는 장치처럼 쓰이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교사 오 모(40) 씨는 "이런 영상을 웃긴다고 공유하다 보면 결국 '좋은 직업과 돈이 있어야 결혼도 잘한다'는 식의 획일적인 가치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결혼을 인생 역전을 위한 전략처럼 보여주는 콘텐츠가 계속 노출되면 아이들에게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만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습니다.
반면 직장인 박 모(33) 씨는 "표현 방식은 자극적이지만 배우자의 직업이나 경제력, 집안을 보는 건 사실 대부분 하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점잖게 표현했을 뿐, 지금은 SNS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또 대학생 최 모(24) 씨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넘기다 보면 이런 영상이 많이 보이는데, 인터넷 콘텐츠는 원래 과장되거나 일부러 허세를 섞어 웃기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며 "가볍게 소비하는 수준이라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작년 4월 발표된 인구보건복지협회 제2차 국민인구행태조사에 따르면 남성이 희망하는 여성 조건은 '육아·가사 적극적 참여' 97.3%, '직업을 가져야 함' 82.9%, '충분한 소득' 70.4%였고, 여성이 희망하는 남성 조건은 '직업을 가져야 함' 95.4%, '육아·가사 적극적 참여' 93.5%, '충분한 소득' 91.2%였습니다.
(사진=유튜브 이용화면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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