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취재파일

[취재파일] "좋은 척 하던 시대는 끝났다"…'힘'이 '규칙'이 된 세계

[취재파일] "좋은 척 하던 시대는 끝났다"…'힘'이 '규칙'이 된 세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 2기 집권, 그리고 이란 전쟁이 맞물리며 국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이문영 교수는 이런 일련의 흐름을 우아한 위선의 시대’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의 전환으로 규정했습니다. 강대국들이 더 이상 명분이나 규범을 내세우지 않고 노골적인 힘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인데요. 규칙이 힘이 되는 게 아니라 힘이 규칙이 되고 있다고 이문영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전쟁을 일으킨 두 당사자인 트럼프와 푸틴이 서로 상대방의 전쟁에 대해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글은 지난 4월 초 SBS 유튜브 <지식의발견>으로 출고된 이문영 교수와의 인터뷰 영상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Q.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교수님 책의 부제입니다. 직접 설명을 해주시면요.
 
이문영 교수 : 사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트럼프가 부활을 하고 이게 한데 어우러지면서 정말 우리가 알던 세계가 끝난 것 같지 않으세요? 이 전쟁 전에는 어쨌든 미국 단극 체제였잖아요. 그런데 이 전쟁이 경과하면서 또 트럼프가 더해지면서 단극에서 다극으로 변했죠. 또 그전에는 미국이 주도하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였는데 그게 지금은 강대국 정치, 세력권 정치 이렇게 변화를 했죠.
 
그러니까 당장 트럼프는 ‘서반구 내 거야, 미국 거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거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고 그게 서로 어느 정도의 공감이 있는 거죠. 러우 전쟁에서 트럼프는 이전에 바이든과 달리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어쨌든 지구촌을 이끌어가는 국가가 G7, 그들의 공통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나라들 중에 선진국 이거였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은 아무리 경제력이 높아도 못 들어갔었던 거죠. 그런데 트럼프는 ‘가치, 이념 이제 상관없어 힘센 사람 순’ 이러면서 C5(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 얘기하는 거거든요. 체제와 상관없이 강한 나라끼리 모이자, 이게 강대국 정치인 거고요.
 
이 전쟁, 그리고 트럼프 2기 집권 전만 하더라도 어쨌든 규칙 기반 질서에 의해서 국제관계, 국제질서가 이루어져 왔는데 이제는 규칙이 힘이 되는 게 아니라 힘이 규칙이 되고 있는 거죠. 트럼프의 말이 법이고, 센 나라가 룰이 되는 것이고요. 이건 정말 너무 우리가 알던 세계와 너무 다른 겁니다.
이문영 서울대 교수
물론 그 이전에도 사실 국제관계는 강대국의 뜻대로 좌지우지되긴 했죠. 그래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대국도 최소 명분이 있었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조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도 ‘대량살상무기를 없애러 간다’ 아니면 ‘독재 국가를 민주화해야 된다’ 이런 식의 명분은 가지고 간 거고, 안전보장이사회의 허락을 받으려고 노력은 했어요. 결국 허락은 못 받았지만요.
 
그런데 트럼프 보세요. ‘UN 됐고’ 이런 거고요.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를 체포할 때도 ‘석유 때문이야’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민주화 이런 얘기 안 해요. 이란에 대해서도 트럼프가 고백했던데요. ‘내가 이란에서 정말 원하는 건 이란 석유야’ 예전처럼 자유니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이런 얘기 안 한단 말이에요.

정유미 기자 : 그동안에는 좋은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대놓고 속을 드러내는 거군요.

이문영 교수 : 그렇죠.

정유미 기자 : 그래서 더 국제사회 앞날이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문영 교수 : 정말 적자생존, 정글의 법칙? 위선이라는 게 나쁜 점도 있지만 그게 문명화 과정이기도 한 거잖아요. 자기의 벌거벗은 욕망이나 본능을 누르고 숨기려고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런 제어 장치가 사라졌어요. 우아한 위선이 끝나고, 본능이 그대로 노출되는 시대가 온 겁니다.
 
우리가 알던 세계, 우리가 알던 미국은 이제 없는 거죠, 적어도 트럼프가 있는 동안은 그렇습니다. 거기다 이란 전쟁이 그 변화에 말하자면 쐐기를 박은 거죠. 러우 전쟁이 세계의 변화를 열고 트럼프가 막 끌어올렸는데, 이란 전쟁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이란 전쟁으로 득을 보는 사람으로 네타냐후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꼽히는데 교수님도 동의하실까요?

이문영 교수 : 그렇죠. 지금 제일 웃고 있는 사람이 아마 네타냐후와 푸틴일 겁니다. 러시아의 주된 재정의 원천은 석유·가스를 판 돈이잖아요. 그런데 작년만 해도 원유 가격이 굉장히 낮어요. 2차 제재 세게 들어가고 이러니까 러시아의 재정인 석유·가스를 판 돈이 25%가 줄었어요. 이란 전쟁 나기 전에요. 러시아 원유는 우랄유라고 하거든요. 그게 한 52불, 57불 이랬는데 제가 (3월 30일 기준) 확인해 보니까 105불이에요. 배가 된 거에요.
 
그러면 일단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그런 재정적인 여유를 다시 확보하게 되는 거고, 또 하나 중요한 게 푸틴이 이란 전쟁을 통해서 일종의 셀링 포인트 (Selling point)를 찾은 거예요. ‘우리 러시아가 아시아에 파는 석유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 안 해 우리 거 사’ ‘우리 건 안전해’

정유미 기자 : 우랄유의 안전성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거군요.

이문영 교수: 그렇죠. 당장 필리핀이랑 말레이시아도 러시아 원유 계약을 한 거예요. 그런 이점이 있는 데다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수도 있게 된 거에요. 이제까지는 주로 중국이랑 인도에 팔았잖아요. 또 하나의 이점은 뭐냐면 이제 러시아만 욕할 수가 없어요. 그전에는 러시아가 전쟁 일으켰다고 막 욕을 했는데 ‘아니 미국도 전쟁을 일으켰잖아’ 이렇게 되는 거죠

정유미 기자 : 바이든 정부 때는 미국이 ‘러시아가 전범이다’ 이렇게 얘기했는데요.

이문영 교수 : 그렇죠. ‘국제법을 위반했다‘ 이렇게 얘기를 했죠.

정유미 기자 :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그 말을 할 수 없는 자격이 된 거네요.

이문영 교수 : 그렇죠. 러시아 입장에서는 도긴개긴이다, 이렇게 된 거죠.
 
Q. 이란 전쟁으로 러시아가 전쟁을 할 재정적인 여유를 얻게 됐다고 하셨어요. 그 외에 또 이란 전쟁이 러우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문영 교수 : 사람들의 관심이 이동을 하고 지원이 옮겨가잖아요. 그래서 예전 같으면 우크라이나로 올 무기가 지금 중동으로 다 가고 있는 거예요.
 
정유미 기자 : 미국이 원래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했었는데 그 무기가 지금은 우크라이나 대신에 중동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요?

이문영 교수 : 정확히 얘기하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는 무기 지원도 끊었어요. 그 대신 판매는 하고 있어요. 그럼 유럽이 유럽 돈으로 미국 무기를 사서 우크라이나에 제공을 했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 그 미국 무기의 우선순위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중동으로 가는 겁니다. 젤렌스키는 거의 울상이 된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도 러시아가 하루에 천 발씩 쏘거든요. 미사일하고 드론 섞어 가지고 하룻밤에 천 발씩 쏘는데 그걸 요격할 수 있는 그 미사일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지금 다 중동으로 가고 있는 거니까 젤린스키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젤렌스키가 요즘에 중동 국가들한테 ‘우리가 이란 드론을 요격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줄 테니까 그 대신 너네한테 가는 패트리엇 우리한테 돌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SBS 정유미 기자
Q. 전쟁의 당사자이기도 한 우크라이나가 또 다른 전쟁에서 플레이어가 된 거군요.

이문영 교수 : 그런데 우크라이나만 그런 게 아니라 러시아도 그런 게요. 러시아가 이란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러시아 역할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몰래 뒤에서 이란을 도와주고 있는 거예요.

정유미 기자 :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죠?

이문영 교수 : 사실 이란 외무장관이 인정을 했죠. ‘러시아랑 이란이랑 친한 게 어제오늘 일이냐, 러시아는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해주고 있어’ 러시아는 아무 말 안 했는데 이란 외무장관이 그 얘길 했어요. 실제로 이란은 미국에 비해서 미사일이나 드론이 한정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쏴야 되잖아요, 낭비 안 되게. 그런데 이란은 자체 위성망이 없거든요. 러시아가 위성 이미지나 위치 정보 같은 거를 다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동에 있는 여러 미군 기지들을 이란이 많이 타격했는데 그걸 정말 정확하게 했거든요. 그게 다 러시아가 위치 정보를 준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드론도 주고 있다고 얘기를 하고요. 사실 식량이나 의약품 같은 인도주의 지원은 지금 13톤씩 가고 있어요. 러시아 정부는 ‘우리는 인도주의적 지원만 하고 있다’ 얘기하지만 사실 도와주고 있는 건 다 하는 거죠.

Q. 러시아가 이스라엘과도 가까운 사이 아닌가요?
 
이문영 교수 : 그렇긴 하지만, 전쟁에서 만큼은 러시아가 양비론은 아니에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굉장히 불법적인 공격이라고 얘기를 하고 이란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해요, 아무리 이스라엘하고 친해도요. 그리고 뒤로 이란을 엄청 도와주는 건데 그거는 단지 러시아하고 이란 간의 친한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푸틴 입장에서는 이란 전쟁이 오래가는 게 나쁘지 않은 거예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미국의 평판이 나빠져서 러시아한테 나쁠 게 없으니까요. 겉으로는 ‘빨리 평화적인 해결, 외교적인 해결을 해라’ 얘기를 해도 속으로는 나쁠 게 없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이란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러시아 역할이 또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하나의 역할을 더 하고 있거든요 중재자 역할도 하고 있어요.
 
Q. 러시아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요?

이문영 교수 : 그렇죠. 전쟁 초반에 트럼프가 푸틴한테 전화해서 1시간 동안 의논했잖아요.
 
정유미 기자 : 또 심지어 트럼프가 먼저 걸지 않았어요?

이문영 교수 : 먼저 걸었어요 ‘나 어떡하냐? 이거 아무래도 물린 것 같다, 좀 도와줘, 너 양쪽 다 친하다며’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가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킨 푸틴한테 전화를 해서 둘이서 서로 의논을 해요. 그런데 또 트럼프는 푸틴의 전쟁에 대해서는 중재자를 자처하잖아요. 푸틴은 트럼프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는 ‘내가 이스라엘하고도 친하고 이란하고도 친하니까 내가 중동 국가들하고도 다 친하니까 내가 중재해 줄게’ 이러고 있는 거예요. 전쟁을 일으킨 두 당사자가 서로 상대의 전쟁에 대해서는 중재자를 자처하는 것, 이게 국제 정세의 현실이고 정직한 야만의 실체인 거죠.

Q. 트럼프와 푸틴,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또 다른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거군요.

이문영 교수 : 트럼프가 러우 전쟁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사실 미국은 중재자 아니거든요. 푸틴이 이란에 미국의 위치 정보를 다 주고 있는 데, 여기에 대해서 미국이 뭐라고 하면 푸틴이 ‘야 미국 너네도 주잖아’ 이렇게 얘기를 해요. ‘너네가 우크라이나에 위치정보 안 주면 우리도 안 줄게’ 이런 얘기인 거죠. 왜냐하면 미국도 무기 지원을 하지는 않고 무기를 팔고만 있지만 우크라이나에 위치 정보는 다 주고 있어요. 우크라이나도 이란처럼 한정된 무기로 러시아의 전략자산을 정밀 타격을 해야 된단 말이에요. 그 위치 정보를 누가 주겠어요? 유럽도 못 줘요, 그건. 미국만 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면 사실 미국은 당사자예요. 그런데 아닌 척하고 중재자인 척 하는 거고 푸틴도 이란한테 정보 다 주면서 아닌 척 중재자인 척 하는 거고 이게 바로 정글의 모습인 거죠.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뉴스 그 뒷이야기 '취재파일'더보기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