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취재파일

중·러와 외교채널 다졌다…닻 올린 김정은의 '당중앙' 외교 [취재파일]

북한도 '국익 중심 실용외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왕이 중국 외교부장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9~10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왕이 부장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김 위원장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다극 세계 건설' 등 중국 정부의 '모든 대내외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이 명시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북한 매체가 이를 보도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 때만 하더라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언급했다는 기록은 북한 매체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을 보다 가까이 끌어당기기 위한 전략적 수사로 풀이됩니다.

왕이 부장은 9일에는 최선희 외무상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외정책기관들 사이의 전략적 의사 소통과 지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입니다. 김 위원장은 왕이 부장에게 여러 급의 왕래와 접촉을 심화해 나가는 것은 지정학적 형세, 두 나라의 전략적 이익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중 외교장관 회담은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9월 베이징 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열렸습니다. 대외기관들 간 소통 강화에 '합의'했다는 것은 당시에는 없었던 표현입니다. 미중 정상회담과 중동 전쟁 등 외교 현안들이 각국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가운데 북중 간 외교채널은 전보다 원활하게 작동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북러 정상회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북한은 러시아와도 이러한 관계를 만들어 놓은 바 있습니다. 북러 양국은 2024년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하며 밀월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러는 조약에 서명한 이후 외교장관 회담을 '전략대화' 이름을 걸고 개최하고 있습니다. 1차는 재작년 11월에 모스크바에서, 2차는 지난해 7월 북한 원산에서 개최됐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개최 이후 '공보문'의 형태로 "상급전략대화를 비롯해 두 나라 대외정책기관들 사이의 의견 교환을 여러급에서 계속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북러 외교당국 간에는 2026-2027년 교류 계획서도 체결됐습니다.

국제 정세가 어느 때보다 요동치는 지금, 북한으로서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채널의 가치가 전보다 커졌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북한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이라는 것이 유엔 상임이사국인 두 나라의 것에 못미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눈과 귀 역할을 얼마나 해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전에 비해 덜 갑갑해진 상황은 분명 맞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고위급 소통 수준을 한층 심화하며 북한이 외교 공간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해 보입니다.

북한 외교의 전반적인 경과를 보면, 고립에서 탈피하는 흐름이 뚜렷하게 감지됩니다.

2017년 핵·미사일 고도화가 정점에 달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집중됐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도 그 어느 때보다 깊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지만, 담판이 실패했고 이후에는 돌발 변수가 불거지면서 고립이 한층 심화됐습니다. 코로나19가 덮치면서 북한 내 해외 공관 활동까지 사실상 전면 중단된 겁니다. 북한이 공관 폐쇄를 사실상 자초한 것이긴 하더라도 평양의 눈과 귀가 닫혔던 시기였습니다.

이후 코로나19의 종식과 함께 북한 외교는 서서히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2023년 우간다·앙골라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스페인 등 유럽 공관, 홍콩 공관을 폐쇄했습니다. 북한은 당시 "외교적 역량의 효율적 재배치 차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즈음 새롭게 공관을 개설한 곳들도 소수이지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7월 중남미의 대표적 반미 국가인 니카라과는 북한과 상호 대사관 개설에 합의했고, 이듬해 7월 신임 대사가 평양에 부임했습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첫 정상회담을 한 벨라루스와도 공관을 열었습니다. 지경수 벨라루스 주재 북한대사가 지난 10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인데, 상당히 속도감 있게 대사 파견이 진행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평양 안의 외교 활동도 조금씩 복원되고 있습니다. 통일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북한 내에서 대사관을 운영 중인 나라는 19개국, 총영사관 2곳입니다. 2024년에는 인도와 스웨덴, 폴란드, 이란, 나이지리아가 평양으로 복귀했고, 2025년에는 인도네시아와 불가리아, 팔레스타인, 체코가 문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의 공관 숫자(대사관 25개국, 총영사관 2곳)에 비하면 줄어든 숫자이지만 완전히 가동을 멈췄던 시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회복된 상태입니다.

북한 내 운영 중인 대사관 및 영사관 현황. 파란색은 보도 등을 통해 추정
2020년 7월 기준 북한 내 공관 현황(2020년 7월 국회 제출). 빨간색은 미복귀 또는 폐쇄
(자료 제공 :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신감에 가득찬 듯 보이는 지금의 북한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외교를 구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지난 시기의 낡은 기준, 낡은 자대(잣대)에 맞추어졌던 외교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격과 국위에 상응한 외교전술과 대외활동 방식을 구사하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선대 때부터 이어져 온 관습적 우호 관계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익이 될 나라들을 중심으로 외교를 재편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얻을 게 없는 국가들과의 관계에선 비용을 줄이고, 이제는 전략적으로 필요한 곳에 자원을 집중하자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국익'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모든 대외활동을 철저히 국익 수호의 원칙에서 전개해 나가야 한다(2월 20~21일, 당대회 사업총화보고)"고 못 박았고, "국익은 오늘날의 치열한 국가경쟁시대에서 국제 관계를 대하는 사고와 관점의 기준"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또 "국제 관계구도와 정세 변화를 예리하게 면밀히 주시하고 정확한 분석평가에 기초하여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며 그것을 능동적으로 구사하여야 한다"고도 지시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내세우고 있는데, 공교롭게 북한이 요즘 '국익 중심의 외교'를 외치기 시작한 겁니다.

방식은 최고지도자가 외무성 관료들에게 위임하는 형식이 아닌,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지시를 내리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의 모든 대외활동은 철두철미 당중앙의 직접적인 지도와 관여 밑에 실행되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김 위원장 스스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당중앙은 김 위원장을 가리킵니다. 물론 과거에도 중요 사안들은 최고지도자의 결심이 있어야 가능했지만, 굳이 '당중앙의 직접적 관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외무성이 김 위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할 사안들이 잦아질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리일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월 26일 '북한 9차 당 대회 평가 및 향후 정세 전망'을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소위 '4강 외교' 외엔 김정은이 크게 관여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김정은 본인이 다 틀어쥐고 '수뇌 외교'를 많이 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본다"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외무성 인사들만 따로 모아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김 위원장이 외무성 조직과 별도 사진을 찍어 공개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닙니다. 북한이 대외 정책에 다시 한 번 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는 아닌지 주목해 볼 일입니다. 고립의 시대가 지나고, 북한 외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운전대를 직접 잡겠다는 김정은의 역량이 어디까지 발휘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뉴스 그 뒷이야기 '취재파일'더보기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