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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임종은 순간이 아닌 긴 과정"…내 집에서 죽을 권리

허정숙 씨 가족
허정숙 씨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2주 만이었다. 면회를 갔더니, 휠체어를 타셨던 어머니가 침대에 실린 채 나왔다. 머리는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 없이 짧게 깎여 있었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가족들은 결정을 바꿨다. 병원에 계속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남 4녀 모두 찾아오기 편한 중간 위치에 집을 새로 마련하고, 어머니를 모셨다. 밤낮으로 형제자매가 순서를 정해 들르며 94세 노모를 정성껏 돌보고 있다. 허 씨 가족의 어머니 돌봄은 이렇게 시작됐다. 병원을 벗어나려는 결심이 있었고, 그 결심을 버틸 수 있는 가족의 시간과 노동이 투입됐다. 가족들은 가급적 어머니가 집에서 임종하실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이정미 씨가 어머니의 마지막을 집에서 보낸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 없는 시점이 오자, 다섯 형제자매들은 논의 끝에 방문진료와 방문간호, 요양보호 서비스를 신청했다.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시간이 없도록 촘촘히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했다.
 
이정미 씨/3년 전 모친의 재택 임종 경험
"방문진료 선생님이 어머니 바이탈 체크하고 가고, 주마다 방문 간호사가 오고, 또 하루 4시간씩 요양보호사 분 오고. 그러다 오후에는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제가 퇴근하면 그때부터는 제가... 의료진과 저희 모두 협조가 잘 됐어요. 어머니는 집에서 모신 지 4개월, 5개월 넘어갈 무렵에 임종하셨어요.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의 입이 마르고, 물도 안 넘어가고, 그때부터는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드렸어요. 방문진료 의사 선생님이 어머님이 가시는 과정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에 숨이 딱 멎기 직전에 가족들이 전부 다 귀에 대고 엄마 사랑했다고 우리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뉴스토리 이정미 씨 어머니
재택 임종은 개인의 바람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의료진의 방문과 돌봄이 끊기지 않고, 가족 등 보호자가 자신의 시간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임종이 어느 한순간에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최소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이정미 씨 가족이 어머니의 임종을 집에서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몇 달의 체계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권역별호스피스센터장이 "우리 사회에서 재택 임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집에서 죽고 싶다'는 염원은 곧바로 다른 질문을 호출한다

누가 환자가 집에 머무는 시간을 떠받칠 것인가. 임종 단계의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동거가 아니다. 통증과 호흡 곤란, 의식 변화, 섬망, 불안, 수분 섭취 감소, 욕창과 감염,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에 대한 대응이 동시에 요구된다. 병원에서는 이 기능이 의료진과 병동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지만, 집에서는 보호자가 역할을 해야 한다. 환자를 집으로 옮긴다는 것은 병원의 기능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이 비공식적 돌봄 노동으로 전환된다는 뜻에 가깝다.

재택 임종의 성공 여부는 따라서 보호자(주로 가족)의 자원에 따라 달라진다. 김대균 센터장은 "의료진이 방문한다고 해도 하루에 길어야 30분 정도이고, 나머지 시간은 환자와 보호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독거 가구나 노노(老老) 가구에서는 돌봄이 곧바로 노동과 판단의 문제로 이어진다. 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는 여기에 경제적 차원을 덧붙인다. "집에서 돌본다는 것은 결국 비용 문제이기도 하다. 병원에 있을 때는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일정 부분 해결되지만, 집으로 오면 돌봄 비용이 개인에게 넘어온다." '임종돌봄 휴가'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재택 임종의 실질적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보호자에게 전가되는 마지막 집중돌봄의 시간과 소득 손실을 제도적으로 보전해야 한다.
김대균 | 인천성모병원 권역별호스피스센터장
게다가 그 시간은 길어지고 있다. 김현철 교수는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아픈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기간이 굉장히 길어졌다. 이제 죽음은 긴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이 노인 인구 증가를 넘어 사망자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연간 사망자 수는 2024년 35만 8천 명 수준이고, 2053년에는 71만 8천 명까지 늘어 지금의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죽음을 둘러싼 문제가 더 이상 가족 내부의 사건으로만 남기 어려운 이유다.
    

다른 나라가 먼저 손댄 것도 바로 이 구간이다

영국은 지난 2008년 국가 차원의 생애말기돌봄 전략을 세운 뒤,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한 '다잉 매터스(Dying Matters)' 캠페인을 벌였다. 말기 돌봄은 임종 직전의 의료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미리 준비해야 할 삶의 마지막 단계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작업이었다. 동시에 현장에서는 환자를 조기에 식별하는 '당신의 1% 찾기(Find Your 1%)'와 사전식별지침(PIG), 전자 완화의료 조정 시스템(EPaCCS)이 작동한다. 주치의와 지역 간호사가 상태 변화를 보고 생애말기 환자를 일찍 찾아내면, 환자의 선호와 상태 정보가 의료·돌봄 체계 전반에 공유된다. 초기 단계에선 지역 주치의(GP)와 지역사회 간호사가 통증 관리와 증상 완화, 응급 대처, 정서 지원을 담당하고, 상태가 악화되면 지속 돌봄과 비용 지원이 붙는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호스피스나 자선단체 전문팀이 개입해 자택 임종과 사별 지원까지 이어진다. 영국의 핵심은 "임종 직전에 왕진을 더 많이 한다"가 아니라, 임종이 가까워진 환자를 조기에 파악해 그 정보와 선호를 여러 서비스가 동시에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일본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를 다뤘다. 지역 기반 재택의료를 장기적으로 키우고, 생애말기 환자를 방문하는 1차 의료기관에 강한 수가 가산을 붙였다. 방문진료가 일부 선의의 기관에 맡겨진 서비스가 아니라, 제도 안에서 유지 가능한 업무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김대균 센터장이 "일본은 1차 의료기관들이 생애 말기 환자를 방문할 때 그런 방문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주 강력한 수가 가산 제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사례의 시사점으로는 방문진료 인프라의 조기 확충, 의료·돌봄·장기요양의 연계 체계 구축, 24시간 대응 가능한 방문진료·방문간호 체계 제도화, ACP 보급과 법·제도 정비 등이 꼽힌다. 영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공통점은 분명하다. 환자가 집을 원한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그 뜻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기록 체계에서 끝까지 이어받을 것인가,가 이미 제도 안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김현철 | 연세대 의대 교수, '인구와인재' 연구원장
허정숙 씨 가족과 이정미 씨 가족이 보여준 가능성은 분명하다. 다만 그 가능성은 가족의 숫자와 시간, 의료진의 방문 가능성, 비용을 감당할 여력, 행정 절차를 버틸 힘이 맞아 떨어질 때에 겨우 유지된다. 같은 바람을 말해도 누구는 집으로 돌아오고, 누구는 다시 병원으로 실려 간다. 그 차이를 개인의 효심이나 준비성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재택 임종을 가르는 것은 의지보다 구조에 더 가깝다.

참고 문헌
'내 집에서 생을 마감할 권리'를 위한 자택 임종 활성화 방안- 초고령 사회와 다사(多死) 사회 시대 자택 임종의 쟁점과 향후 과제, 이윤경 | 입법조사관(보건복지여성팀)

[뉴스토리] 내 집에서 죽을 권리 : 좋은 죽음의 조건 (554회)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849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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