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굴욕 외교 논란에도 71% 지지율
도쿄입니다. 오늘은 최근 미일 정상회담과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일본 국내 평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20일 새벽 워싱턴에서 미일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전해드렸지만, 회담장 밖에서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 성과와는 별개로 국가 정상으로서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트럼프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설치한 사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또 엑스재팬의 곡을 연주하는 군악대 앞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에 일부 네티즌들은 "차라리 AI 조작이었으면 좋겠다" "저건 외교가 아니다"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회담장에서 했던 이 발언도 국회에서 공개 비판을 받았는데요.
[다카이치 사나에/일본 총리 (지난 19일) :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는 건 도널드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바 신이치/입헌민주당 의원 (지난 23일) :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많은 인명 이 희생됐습니다. 총리의 발언에 저는 강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옳소!)]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에서도 미국의 이란 공격은 국제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전범 국가였던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 이런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란 공격을 용인하는 듯한 다카이치의 발언은 2차 대전 후 유지되어 온 일본의 공식 입장을 번복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트럼프를 추켜세우다 선을 넘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회담 자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평가는 후한 편입니다. 지난 23일자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평가한다'(긍정적)는 답변은 69%로 19%에 그친 '평가하지 않는다'는 답변에 비해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가 회담 직후 밝힌 이 입장에 대해선 무려 82% 가 평가한다고 답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일본 총리 : 일본 법률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자세하고 확실하게 설명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71%로, 2008년 요미우리가 전화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요미우리는 이번 정상회담도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습니다.
2. 다카이치 지지율 고공행진, 이유는?
정상회담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음에도 다카이치에 대한 지지는 왜 이렇게 고공행진하는 걸까요? 시간을 넉 달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다카이치가 미일 정상회담을 서둘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지난해 11월 말쯤입니다. 당시는 다카이치의 타이완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중일 갈등이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럼프가 동맹 일본을 당혹하게 하는 행동을 합니다. 11월 24일, 트럼프는 시진핑과 전화 회담을 하고 미국은 타이완 문제가 중국에게 중요하다는 걸 이해한다고 밝혔습니다. 동맹인 일본과 갈등 중인 중국의 손을 보란 듯이 들어준 겁니다. 그리고 이때 4월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하죠. 그 다음 날인 11월 25일, 트럼프는 이번에는 다카이치에게 전화를 합니다. 다카이치는 당시 통화 사실은 공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는데요.
[다카이치 사나에/일본 총리 : 조금 전 트럼프 대통령 제의에 따라 전화 회담을 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답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때 바로 미국 언론 보도가 나옵니다. 트럼프가 다카이치에게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겁니다. 말이 좋아서 조언이지 사실 압력을 가한 거죠. 일본 정부는 부인했지만, 이후 다카이치의 발언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국회에서 자신의 타이완 유사시 발언에 대해서 해명하는가 하면 타이완과 거리를 두는 듯한 이야기까지 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일본 총리 : (타이완과는) 비정부 간 실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타이완의 법적 지위나 인정 여부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다카이치로서는 미중 정상회담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럼프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동북아에서 중국의 패권을 일정 정도 용인하고 일본에 양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중이 만나기로 한 4월에 앞서, 3월에 트럼프를 만나려고 외교력을 총동원한 겁니다. 그런데 석 달 만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겁니다. 트럼프에게 급선무는 이제 중국이 아니라 이란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베네수엘라와 달랐습니다.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미국 국내 여론도 나빠졌죠. 미국과 이스라엘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한 트럼프는 이제 동맹국들의 참여를 요청합니다. 일본과 한국 등을 직접 거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함선을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선뜻 동맹들이 나서지 않자 속된 말로 있는 대로 짜증을 냅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건 당신들인데 왜 나서지 않느냐고 말이죠. 문제는 미리 잡아둔 미일 정상회담 날짜가 트럼프가 이렇게 억지를 부린 직후였다는 겁니다. 다카이치 입장에선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트럼프 앞에서 무작정 함선을 안 보내겠다고 할 수도 없고 또 이란 미사일의 타깃이 될 게 뻔한데 보내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칫 했다간 앞선 여러 정상들처럼 카메라 앞에서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고요. 또 관세 보복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다카이치로서는 이 정상회담,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이제 미일 정상회담의 목표는 단 하나, 트럼프 기분 상하지 않게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참 어려운 일인데요. 더군다나 트럼프라는 인물이 이란에 필사적인 만큼 사실상 어렵다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맥락을 보면 회담장에서 다카이치가 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트럼프를 추켜세웠는지, 또 그걸 본 일본 국민들은 "차라리 AI 조작이었으면" 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래도 고생했다"하고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이런 결과는 다카이치의 스킨십만으로 가능했던 건 아닙니다. 미국산 원유에 거액을 투자하는 트럼프 맞춤형 선물 보따리를 마련했고요.
3. 트럼프 요구 막아낸 방패, '평화헌법'
또 하나 재미있는 건 다카이치가 그렇게 개정하고 싶어하는 '평화헌법'이 이번엔 트럼프의 요구를 막아내는 방패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법률 안에서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겠다" 이렇게 말한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건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좀 다른 건데요. 일본 헌법과 자위대법에 따르면 함선을 파견하거나 다른 나라 군대를 후방 지원하는 건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았거나 또 그럴 만한 명백한 위험이 있어야 하는데 이란 전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일본 정부 판단입니다. 미국 측이 바라는 기뢰 제거 작업도 마찬가지로 일본법에 따라 전투가 끝났다는 게 확실해져야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설명도 트럼프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이걸 보면서 어쩌면 일본의 이런 집단 경험이 개헌 논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권 자민당은 다음 달 당 대회에서 조기 개헌 방침을 재확인할 예정입니다. 자민당은 최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서 단독 개헌 발의선을 넘겼습니다. 물론 발의가 되더라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지만 개헌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에는 전에 없이 근접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 이란 사태를 거치면서 평화헌법이라는 틀이, 불필요한 전쟁에 개입되는 걸 막아주는 완충장치가 될 수 있다는 걸 정치권과 국민들이 목격한 겁니다. 당장 일본 야당에서도 평화헌법이 트럼프의 요구를 막아내는 데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서 자민당이 주도하는 개헌 움직임에 변수로 작용할지 한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취재 : 문준모,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 한철민, 문현진, 영상편집 : 나홍희, 디자인 : 양혜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
[AFTER 8NEWS] 71% 역대 최고지지율 다카이치 노림수…'눈엣가시' 평화헌법이 되레 '방패'됐다
입력 2026.03.2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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