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동전쟁에 군함을 파견해달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청에 대한 미국 동맹국들의 반응은 일단 '회피'에 방점이 찍히고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 내에서 선명한 거부 의사가 나왔고 상호방위조약 동맹국인 일본도 확답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군사작전 동참 요구에 독일은 16일(현지시간) 가장 뚜렷한 거부 방침을 밝혔습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란에 대한 개입이 공동으로 결정되지 않은 만큼 독일이 군사적으로 기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이란 정권은 종식돼야 하지만 폭격으로 굴복을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나토는 방어 동맹이지 개입 동맹이 아니다"라고도 했습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도 "우리 전쟁이 아니다"며 "막강한 미국 해군력으로 달성할 수 없는 일을 유럽의 호위함 몇척이 해낼 수 있겠느냐"고 퇴짜를 놓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평가를 받는 영국마저도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영국은 더 큰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계선을 쳤습니다.
다만 그는 유럽 동맹이 걸프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호르무즈 해협을 보호할 실현 가능한 계획을 마련하기를 원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외교적 해결이 우선"이라고 군사적 개입에 선을 그었습니다.
유럽 내에서 그나마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프랑스조차 이란과의 교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개입에는 미온적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호위 임무는 "분쟁의 가장 뜨거운 단계가 종료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점진적 재개방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 당국자들은 호르무즈 해협 호위와 같은 작전은 교전 중단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동맹국들의 이 같은 반응에는 동맹을 무시하고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동원해 자국 의도를 관철해온 미국과의 긴장된 관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이 뒤따릅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중동정세 석학인 안드레아스 크리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힘을 무기 삼아 동맹을 제 뜻대로 움직이게 강압해왔다"며 "이를 지나치게 남용한 탓에 세계가 가능한 한 미국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WSJ은 미국의 동맹 중 백악관의 압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어느 곳도 없다고도 짚었습니다.
미국이 동의도 없이 전쟁을 일으켜놓고 군사작전을 도우라고 압박하는데도 동맹국들이 단칼에 거절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7개국에 포함됐을 것으로 관측되는 호주는 "군함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거부 했지만, 일본은 일단 신중한 분위기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미국 측에서) 아직 요구하지 않아 대답하기 어렵다"면서도 일본과 관계있는 선박, 승무원의 생명을 어떻게 보호할지, 무엇이 가능할지 등을 법적 관점도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란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고, 자위대 활동 확대에 법리상 상당한 제약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미국과 관계 개선에 매진해온 다카이치 총리가 '전쟁 가능 국가'를 염두에 둔 보수적 안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자위대 파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유럽이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더 정치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됩니다.
나토에서 정책 기획을 맡았던 프랑스 정치외교 전문가 파브리스 포티에는 "유럽이 일방주의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동맹과 협력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을 유럽과 공동의 의제로 묶어두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중동에 군사자산을 배치하는 프랑스 등의 조치가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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