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의 수치적 목표는 손익분기점인 260만 명. 시작은 미약했다. 개봉 첫날 11만 명으로 출발했던 '왕과 사는 남자'는 시간이 갈수록 관객수가 느는 '개싸라기' 흥행 끝에 설 연휴를 정복했고, 입소문의 힘을 지렛대 삼아 3,4,5주차까지 주말 1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이같은 놀라운 레이스 끝에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3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천만 돌파 이후부턴 기세가 꺾일 법도 하지만 영화를 향한 관객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33일 만에 1,100만, 36일 만에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6주 차에 접어든 현재에도 평일 20만 명에 가까운 일일 관객을 모으고 있어 업계에서는 1,500만 흥행까지 예상하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온다웍스'와 '비에이(BA)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로 유명한 비에이 엔터테인먼트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온다웍스는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설립한 신생 제작사다.
CJ ENM 출신의 임은정 대표는 창립작으로 천만 흥행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흥행은 하늘의 뜻이라지만 과정의 치열함 없이는 달콤한 행운도 찾아오지 않는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대기업을 뛰쳐나와 회사를 차리고, 사람을 모았고, 영화를 제작했다. 과감한 결단력과 사람을 알아보는 눈 그리고 끈기와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Q. 천만 흥행을 축하드린다.
A. 감사함밖에 없는 것 같다. 감독님, 배우님, 같이 영화를 제작한 장원석 대표님 모두 만나서 하는 말이다. 관객 수가 가장 의외였어요. 개봉 전에 우리끼리는 손익 분기점(260만 명)을 1차 목표로, 명절 연휴를 앞두고 BEP의 두 배 정도 되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얘길 나눴다. 첫날엔 기대보다 적었다가, 갈수록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르게 가서 '이게 뭐지' 했어요. 그 이후론 다양한 리뷰와 반응들. 관객분들이 이런 것도 알아봐 주실까 했던 것들을 다 캐치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서 '다 가서 닿았구나'라고 하면서 기쁜 순간들이 많았다. BEP 두 배가 2차 목표, 연휴 때 채웠고, 6주 차인 현재 일일 스코어도 예상보다 선회하는 터라 감사할 따름이다.
Q. 이 작품을 CJ ENM에서 준비했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로 중단됐고, 제작사를 만들면서 이 작품을 가지고 나오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A. CJ ENM에 입사해 투자팀에서 꽤 오랜 기간 일했다. 회사에 자체 제작 기조가 있어서 기획제작팀에서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준비하던 세 작품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2021년 개봉한 '연애 빠진 로맨스'였고, 다른 하나는 원작이 있는 공포 영화였으며, 나머지 하나가 '왕과 사는 남자'였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준비하던 중 정지훈 작가의 원안을 보고 기획개발을 시작했다. 어떤 사건 옆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타인의 삶'이나 '킹스스피치'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제겐 엄흥도라는 인물이 '타인의 삶'의 비밀경찰 같았다. 보수 주인인 엄흥도는 유배온 왕의 음모를 고발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단종의 다른 모습을 보며 내적 갈등과 성장을 하는 인물이다. 신인 작가와 작업하다 보니 초고까지 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트리트먼트 단계에서 원안으로 마무리하고 황성구 작가('박열', '리틀 포레스트' 등 집필)에게 시나리오 집필을 부탁드리게 됐다. 2020년 초에 초고가 나왔다. 그러나 팬데믹 시기였고 몇몇 이유로 제작이 중단됐다. 황 작가님에게 시나리오 권리를 드리고 다른 회사에서 기회가 된다면 진행하시라고 했다. 황 작가님은 제 제안으로 시작한 시나리오라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았다. 그러면 제가 5년 안에 (제작) 타이밍을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제가 제작사를 차려 독립을 했고, 창립작으로 이 작품을 준비하게 됐다.
Q. 역사에 엄흥도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영화적이기는 하지만 창작한 설정 중에서는 유배지 선정을 둘러싼 유치전이 인상적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고, 발전시켰나?
A. 황성구 작가와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설정이다. 몇 차례 회의를 하면서 황 작가님께 제주도에 있는 추사 김정희 박물관 이야기를 듣게 됐다. 조선 시대 때 제주도는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양반이 유배를 갔다가 복권이 됐을 때 전화위복으로 해당 마을에 좋은 일이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이걸 현대적으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유배지 유치를 위해 마을 간 경쟁을 하는 설정이 초고부터 들어가게 됐다.
Q. 한국 영화로는 2년 만에 나온 천만 영화다. 제작자가 생각한 대형 흥행의 비결은?
A. 극장에 대한 그리움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2세 관람가라 후 토크를 다양한 사람과 할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웃기도, 울기도 할 수 있어서 극장을 처음 경험한 어린 친구들에게는 '그래, 극장이 좋은 거지' 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어린 친구들의 N차 관람 놀라웠다. 극장에 미래 세대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어린 친구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뿌듯했다.
Q. 실제로 1020 관객들이 단종 신드롬을 주도하고 있다. MZ세대가 이렇게 뜨겁게 반응할 거라 예상했나?
A.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 영화가 나이는 어리지만, 계급이 높은 왕과 나이는 많지만, 계급은 낮은 촌장과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라 기획만으로 잘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유해진, 박지훈 배우의 결합으로 인한 효과가 컸다고 생각한다. 특히 박지훈 배우가 단종역을 맡으면서 길이길이 남은 단종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Q. 박지훈의 캐스팅을 주도적으로 했다고 들었다.
A. 그렇다. '약한 영웅'을 인상적으로 봤다. 그 작품을 만든 제작사 쇼트케이크 대표님하고 친분이 있어서 촬영 현장에도 갔었는데 현장에서의 모습도 좋았다. 가수 출신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이 되게 크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종에 어울릴 것 같았다.
Q. 장항준 감독에게 직접 연출 제안을 한 걸로 알고 있다. 이 작품 전까지만 해도 흥행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던 연출자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극 경험이 없었는데 장항준을 적임자로 본 이유는?
A. 영화의 주안점이라는 게 있지 않나.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시선이 중요한 영화고, 두 인물을 어떻게 접근하는가가 중요했다. 흥도의 입장에서 홍위를 바라보는 시선과 홍위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했는데 이 두 인물의 정서를 따뜻하게 그릴 감독이 필요했다. 그때 '리바운드'를 보게 됐다. 일각에서는 장항준 감독님이 연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감독이 아니냐고도 하시는데 저는 투자팀 생활을 오래 해서 장 감독님의 글을 많이 접해서 다르게 생각한 지점이 있었다. 황 작가님과 준비한 시나리오를 3년이 돼서 만들어 나가야 하는 미션이 있었을 때 이걸 쓰고 연출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장 감독은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했고, 준수한 연출자라 생각했다. '리바운드'도 좋게 봤고, 방송 활동에서 보여준 성실함, '꼬꼬무' 등에서 보여준 역사에 대한 자세를 보면서 이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실 것 같았다. 어른으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주시길 기대했다.
Q. 유해진이 이 영화 성공의 팔할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캐스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그렇다. 유해진 씨는 원래도 업계에서 영화 출연을 장고(長考)하는 스타일로 유명하시다. 우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는 짧게 걸렸다.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장항준 감독님께서 연출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당시 유해진 선배님께서 영화 '도그데이즈' 홍보차 장 감독님의 유튜브에 출연하셨다. 촬영이 끝나고 장 감독님이 '내가 최근에 이런 영화의 연출 제안을 받았는데...'하고 우리 영화 이야기를 하셨다. 유해진 선배님이 '너무 좋은데 왜 안 해?'라고 했다더라. 그 말을 그린라이트라고 생각하고 출연 제안을 했다. 감독님도 유해진 선배님의 말이 동기부여가 돼 각색 작업을 열심히 하게 됐다. 유해진 선배님께서 시나리오를 보시고 여러 피드백과 아이디어를 주셨고, 다시 고쳐서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다는 확답은 없으셨는데 두 번째 수정고를 보시고는 답을 주셨다.
Q. 비에이(BA) 엔터테인먼트와의 공동제작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A. 제가 먼저 장항준 감독과의 작업을 전제로 비에이 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에게 제안했다. 제가 PD로 일했던 '연애 빠진 로맨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젊은 감독, 배우들과 하다 보니 아주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사극을 제작하기에는 연륜 있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이 있는 베테랑 제작자와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장항준 감독이 장원석 대표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장 대표에게 제안을 드렸다. 장원석 대표가 앞서 장항준 감독님과 '리바운드'라는 작품을 했는데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후 작품은 더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 그런데 제가 제안드린 작품은 사극에 비극인 이야기여서 우려를 좀 하셨다. 그러면서 "시장 판단을 잘 해봐야 해. 아이디어만 가지고 하기에는 난 장 감독에게 진 (마음의) 빚이 있어'라고 하더라. 쇼박스에 '왕사남'에 미친 담당자가 있었다. 그분은 '언제까지 자극적인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면서 힐링이나 의미 있는 것을 찾는 관객도 있을 거라는 판단을 하셨다. 시나리오를 세 번 정도 고쳤을 때 장원석 대표님도 '이건 될 것 같다'고 하면서 공동 제작을 수락했다. 장원석 대표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자로서 드릴 수 있는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말 좋은 협업이었고, 좋은 파트너였다.
Q. '왕과 사는 남자' 제목은 초고 단계에서부터 확정이었나? 다른 가제가 있었다면?
A. 사실 초기 트리트먼트 단계에서의 제목은 '흥도: 왕과 사는 양반'이었다. 이후 황성구 작가님과 초고를 쓰면서 '왕과 함께 사는 남자'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이후 2고, 3고를 거치면서 '함께'를 뺀 지금의 제목이 됐다. 제목 공모를 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잘 맞는 제목은 없겠다 싶었다. 제목 때문에 어떤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잘 보여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Q. 영화의 옥에 티로 거론된 호랑이 CG를 수정할 계획을 밝혔다. 이미 상영 중인 영화의 CG를 수정하기로 한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A. 관객들이 호랑이 CG를 밈(meme, 온라인 모방·파생 콘텐츠)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보완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배급사에서도 동의해 주셔서 진행하게 됐다. CG 수정 버전이 IPTV에 들어갈지 혹은 OTT에 들어갈지 등을 조만간 회의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Q. 30대 후반에 대기업에서 퇴사해 제작사를 차렸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라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독립을 하게 된 배경과 당시의 마음가짐이 궁금하다.
A.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온 건 아니다. 기획 PD로 일하다 보면, 작가들이 PD만 바라보고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감독, 스태프는 같이 하는 동료들이 많은데 작가는 PD만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 '이걸 영화로 만들어줄 거야' 하는 믿음으로 일을 한다. PD로서의 1차 목표는 '영화를 메이드 시킨다'이다. 회사의 판단이든, 외부요인이든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독립을 결정하게 됐다. 당시 업계가 하도 스산하니 모두가 말렸던 건 맞다. '그래도 해봐야지' 하는 걸 작가들에게 보여줘야 다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Q. 제작사 이름인 '온다웍스'(Onda Works)는 무슨 뜻인가?
A. 개인적으로 서핑이 취미인데 서핑하다 보면 서퍼들이 바다에서 거친 파도가 올 때 '온다! 온다!'하면서 흥분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퇴사를 할까 아니면 이직을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포르투갈에 한달살이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서핑을 하려고 서핑샵에 들렀는데 가게 이름이 '온다'였다. 포르투갈어로 '온다'가 파도다. 온다! 온다! 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온다가 파도라는 뜻을 알게 되니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2023년 '온다웍스'를 창립했다.
Q. CJ ENM으로 업계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영화일을 하게 된 계기는?
A.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고등학교 때부터 했던 건 같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에 본 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영상 PD로 대학 방송국 활동을 했는데 '영화 속 뜬구름 잡기'라는 프로를 만들었다. 그때 내가 스토리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국문학도가 교환학생을 갈 일이 잘 없는데 호주의 한 영화학교로 교환학생을 갈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서 영화에 대해서 배우고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때 내 장점이 '누가 뭘 잘하는지를 잘 아는 거'라는 걸 알았다. 작가도 그렇고, 감독도 그렇고 자기가 천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PD가 되고 싶어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했던 것 같다. 그때 CJ ENM에서 기획개발팀에서 인턴 뽑고 있어 입사하게 됐다.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대만 개봉했고 일본과 동남아는 할 예정? 미국에서의 성적이 좋게 나와서 보통 사극이 그렇지 못할 거라고 들었는데 이 또한 마중물이 되어서 사극이 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 사극은 재미나게 보는데 '라스트 듀얼'도 좋아한다. 현대적인 사극을 좋아한다. 이 룩과 이런 것이 익숙해지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Q. '왕사남'이 전국 1200만 명 넘었다. 6주차 평일에도 20만 명에 육박하는 일일 관객이 들고 있어서 1500만까지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A.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 더 잘되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까에 대한 기대감은 있다. 지금 역대 순위 5위 안에 들고, 3위 안에 들고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스태프들도 그렇고 다음 작품을 너무 하고 싶어 하는데 이 영화가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 첫 영화로 크게 성공해서 흥행에 대한 부담을 언급하시는데 '누구나 미끄러질 때가 있다, 두려워하지 말자'는 장항준 감독의 조언대로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Q. 창립작이 잘되어서 성공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클 텐데 인센티브에 대한 계획도 궁금하다.
A. 물론이다. 혼자 한 게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 거둔 성공이기에 인센티브 지급을 생각하고 있다. 공동제작자인 장원석 대표와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구체화될 것 같다.
Q. 위기의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둔 제작자로서 한국 영화의 생존법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A. 우리 영화에서 단종과 금성대군의 '서신 내레이션'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반드시 교훈이 있어야 해'가 아니라 관객들이 필요한 것을 어떻게 건드리지 했을 때 구체적이고 명확한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나리오 과정에서 치밀하고 처절하게 만들어져야 관객의 테이스트를 맞출 수 있지 않나 싶다.
Q.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들이 궁금하다.
A. 이런 말이 좀 쑥스럽지만 제가 아이템 부자다. 영화로 준비를 하고 있는 것만 말씀드리자면 '죄많은 소녀'를 연출했던 김의석 감독의 신작을 준비 중이다. 경성을 배경으로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또 다른 작품은 황성구 작가님 시나리오에 '올빼미' 안태진 감독이 연출하는 사극으로 조선의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액션 영화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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