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프 핵심요약
1966년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 취임 후 서울의 골격을 만드는 대규모 개발과 함께 서민용 시민아파트 및 중산층용 주택 정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동부이촌동·여의도·강남 등 중산층 아파트 단지 개발이 성공하면서 1980년경부터 강남과 여타 지역 간 땅값 격차가 본격화되었고, 국가는 "집을 사면 중산층"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주택을 투자 수단으로 유도했습니다.
수십 년간 국가가 조성한 이 프레임 속에서 내 집 마련을 꿈꿔온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단순히 욕심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부동산 투자 중심의 구조를 정상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 주도 부동산 대책, 언제부터 발표하기 시작했나
이승만 정권 시기에도 부동산 대책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규모도 작았었고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았었고,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정도 수준의 큰 대책, 국가 방향성에 맞는 대책'이 만들어졌었던 건 1966년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중반이 되었을 때 서울로의 인구 집중이 그 이전에 비해서 가시적으로 높아져요. 물론 서울은 한 번도, 심지어 6.25 전쟁 때도 인구가 줄어든 적은 없습니다. 서울시의 인구는 계속 느는데 그 속도가 말도 안 되게 가팔라지기 시작하는 게 1960년대 중반이거든요. 도시화율이 올라가고 서울이라고 하는 공간에 대한 기대, 아메리칸 드림처럼 서울만 가면 무엇인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욕망이 들끓기 시작하고, 한편에서는 농촌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었던 시점이 60년대 중반이거든요.
이 무렵인 1966년에 서울시장이 바뀌어요. 김현옥 서울시장.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거든요. 이 불도저 김현옥 시장이 부동산 대책이라고 하는 걸 언론과 국회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합니다.
Q. 불도저, 어떻게든 다 밀어버리고 거기다 짓겠다. 이런 거예요?
맞습니다. 서울의 골격을 만든 사람이라고도 불릴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의 서울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까 서울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노골화되기 시작했었던 시점도 이때부터라고 보는 거죠. 도시 빈민 몰아내고 새 건물 지어서 돈 있는 사람들 들어오게 하는 것들이 본격적으로 이때부터 만들어지고요.
김현옥 서울시장이 1966년부터 1970년까지 4년 동안 서울시장을 하는데 했었던 일이 여의도 만들기, 강변북로, 강남 개발 시작, 한남대교, 경부고속도로 중간에 서울에서 출발하게 되는 거, 지금 있는 웬만한 간선도로, 육교, 지하도, 고가도로, 지금은 많이 철거됐지만 4년 동안 다 이 사람이 혼자 합니다. 지금 서울의 골격을 만들었다고 보시면 돼요. 이런 것들 속에 주택 정책도 포함되어 있었고 부동산 대책도 포함되어 있었던 거죠.
지금 이런 얘기를 언론이나 국회 가서 했다가는 매장당할 텐데, 본인 시정의 방향성을 이야기하라는 질문에 대해, 이때 서울시장은 국회에서 시정 보고를 해야 됩니다. 1966년 올 한 해 내가 서울시장일 때 이렇게 서울시 만들 거라고 보고하는 자리에서 주택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앞으로 서울 시민은 서민과 중산층으로 나누겠다'
자기 돈으로 혹은 자기 돈 더하기 서울시 혹은 국가의 융자로 집을 살 수 있으면 중산층, 그것조차 되지 않으면 서민으로 구분을 하고 '서민용 주택, 중산층용 주택을 따로 짓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민용 주거 대책으로 나왔었던 가장 유명한 주거 대책이 시민아파트라고 혹시 아시나요? 지금도 남아있는 게 있거든요. 회현 제2시민아파트.
'시민아파트를 서울시에서 지어줄 거야. 여기에는 영세민과 서민들이 들어오면 돼. 대신 굉장히 싸게 우리가 들어오게 해 줄 테니까 여기에 들어와 살아'라고 했었던 거예요. 시민아파트. 그게 1차 서민용 주거 대책, 부동산 대책이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이죠.
막상 시민아파트를 했는데 서민들이 들어가서 살기에는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집 가격 자체는 쌌던 게 맞아요. 서민들이 조금 어렵겠지만 노력하면 살 수 있는. 그런데 들어갔더니 인테리어는 자가 부담, 도배·장판뿐 아니라 변기·창문까지 자가 부담이 된 거죠. 자가 부담 비용이 좀 더 늘어나죠. 거기에다가 월 얼마씩 또 운영금을 따로 내라.
Q. 찐 서민들은 실제로 살기가 어려운.
그렇죠. 원래는 시민아파트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어떤 공간들이냐면 (사람들이)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아가던 공간을 밀고 그 위에 시민아파트를 지은 거예요. 밀면 쫓겨나야 되는데 '너희 여기서 살 수 있게 해 줄게'가 대책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는 실질적으로는 이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어서 프리미엄을 받고 중산층한테 파는 걸 선택했었던.
Q. 결국 그분들은 쫓겨난 신세가 돼버린 거죠.
그런데 왜 엎어지냐? 그 시민아파트는 결국은 엎어집니다. 1970년에 와우아파트라는 시민아파트가 무너져서 붕괴가 돼요. 그러면서 시민아파트가 엎어지거든요.
시민아파트를 애초에 지을 때 부실 공사도 물론 문제가 됐지만, 서민들을 살게 하겠다는 대책으로 만들어진 아파트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시공사가 하중을 계산할 때 서민들의 세간살이에 맞게끔 계산을 합니다. 그럼 철근이 이 정도만 있으면 되겠다고 계산한 거죠. 그런데 막상 여기에 들어와서 살았었던 사람들은 중산층들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세간살이가 많았겠죠. 그래서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거예요.
같은 서울에서도 극과 극 집값, 이때부터 시작됐다?
Q. 같은 서울 안에서도 집값이 엄청나게 차이 나고 지역별로 다른 것이 그때부터 시작으로 봐야 되는 건가요?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들이 어디 어디 중심으로 만들어지느냐가 동네 간의 차이로 시작되는 거죠. 최초에 지었었던 게 동부이촌동 공무원 아파트, 지금 한강맨션 같은 데들이 1차적으로 만들어지고 두 번째로 만들어지는 게 여의도입니다.
원래 동부이촌동은 늪지대라서 사람이 살기 어려웠었던 땅인데, 강변북로를 만들면서 홍수가 나도 범람하지 않게 되면서 땅이 된 거죠. 국가 땅이잖아요. 아파트 시공사만 결정하면 국가가 편리하게 중산층들한테는 주거를 공급할 수 있는 거죠. 똑같은 방법으로 여의도에 윤중로를 만들면서, 거기도 원래는 홍수 나면 잠기는 땅이었는데 넓은 국가 땅이 된 거죠. 거기도 똑같이 시범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중산층들한테 만들었죠.
그 두 개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걸 보고, 중산층들은 거기에 들어가 살기 편하기도 하거니와 일단 국가 입장에서도 땅값이 비싸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게 장사가 좀 되네' 라고 하면서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이거를 크게 하자. 크게 한번 우리가 동네를 옮겨볼까?'라고 해서 강남이 시작되는 겁니다.
강남에 똑같이 국가가 조금씩 땅을 사기 시작하는데, 국가가 땅을 사기 시작하기에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던 건 68년에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고속도로의 주변 땅을 국가가 사거든요. 기업들한테 팔고 거기에 아파트를 짓게끔 만들면서 땅값을 키우기 시작하죠. 이때부터 땅값이 조금씩 격차가 나기 시작합니다. 강남과 여의도, 동부이촌동과 나머지 다른 땅들이 격차가 벌어졌었던 시점은 보통 1980년 정도로 봅니다.
Q. 요새 와서 계속 뉴스가 되지만 시작은 1980년.
1980년 당시 신문기사나 잡지들을 보면 이슈가 돼요. 강남이 강북의 땅값을 눌러버린 것에 대한. 본격적으로 강남이 신흥 부유층의 주거지라는 이미지도 만들기 시작합니다.
Q. 그때부터 시작된 차이가 세월이 가면서 더 벌어지는.
그렇죠.
Q. 지금 집은 거주 공간을 넘어서 투자의 목적도 있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도 되는데, 그 시작을 1980년 정도로.
1966년부터 시작해서 1980년에 굳어지기 시작했던 것이고. 중요한 것은 계층의 사다리로써의 역할, 주거의 목적이 아니라 투자의 한 방법으로 굳어지게 됐었던 거는 다 국가가 유도한 겁니다. 정부 정책이 그랬어요.
사람들에게 '집 한 채 사라' '집 한 채 사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 '땅값이 비싼데요?' '걱정하지 마. 국가가 빌려줄게' 주택은행 만들고 땅값이 오르면 '상관없어. 너네 어차피 이걸로 투자하는 거야. 돈 빌려줄 테니까 여기 땅값 오르는 거 신경 쓰지 마' '갖고 있는 땅값 올랐지? 너네 중산층이야'
이런 프레임을 계속 만들어온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강남, 동부이촌동, 여의도 같은 공간들이었기 때문에, 국가가 1966년에 부동산 정책을 만들 때부터 사실 이런 메커니즘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Q. 다시 돌려놓겠다고 하면서 지금 정부가 다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거잖아요. 투자의 목적으로 삼지 말아라, 살기만 해라. 정부가 이렇게 끌고 왔다가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건데, 될까요?
저는 돼야 된다고 봅니다. '중산층은 집을 사. 돈을 빌려줄 테니 이걸 투자로 써'라고 시작했던 이 방식 때문에 196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거든요. 애초에 서울에서 살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 서울시는 노동력으로 이들을 필요로 했지만 돈은 없기 때문에 집은 살 수 없어서 2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와서 노동해야 됐었던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지금 청년들도 마찬가지죠. 국가 정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모든 기업들이 판교, 강남, 종로에 다 몰려 있으면서 청년들에게 여기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도 정부였는데 이 두 개가 공존하고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몇십 년째 이어지고 있었던 거잖아요. 하나의 축을 무너뜨리고 정상으로 돌려야 되는 것은 필요한 거라고 봅니다.
이건 또 욕먹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그 꿈을 꿨었던 다주택자들 말고 서울에 내 집 한 채 갖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사람들, 서울에 내 집 마련 하려던 사람들의 욕망을 욕심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 프레임은 국가가 만든 거고, 그 프레임에 맞게 살아갔었던 사람들일 뿐이거든요.
'이렇게 해야 중산층이 될 수 있고 성공한 인생이야'라는 걸 평생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었던, 서울에 집 한 채 갖고 있는 50대 이상의 분들은 억울할 수도 있어요. 집 한 채가 유일한 재산이고 이것마저 무너진다면 나의 삶이 무너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거든요. 국가가 만든 프레임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거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그 욕망마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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