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환율에 해외 유학 길에 오른 가정의 한숨이 늘고 있다.
"H-1B 비자 추첨에서 두 번 낙방하고 나니 대안이 없더라고요."
2023년 미국 한 주립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 모(28) 씨는 지난해 7월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자에게 주어지는 3년의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기간이 있었지만, 기업들이 비자 스폰서를 꺼리면서 취업 문이 좁아진 탓에 짐을 싸야 했습니다.
이 씨는 "작년 하반기부터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해고를 단행하면서 신입 비자 스폰서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였다"며 "중소 IT 기업에 합격했지만 H-1B 추첨에서 두 번 떨어지자 더 버틸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고환율과 비자 불확실성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한국 학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진학·취업 계획을 접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대학에 아들을 유학 보낸 박 모(55) 씨는 최근 아들의 귀국을 결정했습니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아들을 대학원까지 진학시키는 것이 목표였지만, 치솟은 환율 탓에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 씨는 21일 "노후 자금으로 생각해 둔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학사만 마치고 돌아오라'고 설득했다"며 "아들도 현실을 이해하고 귀국을 택했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4월 기준 해외 고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은 12만 9천713명입니다.
2011년 정점(26만 2천465명) 이후 1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유학·연수 관련 해외 지급액도 감소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유학·연수 지급액은 2010년 44억 8천800만 달러(약 6조 5천37억 원)에서 작년 30억 5천270만 달러(약 4조 4천233억 원)로 줄었습니다.
한국은행 국제수지팀 김준영 과장은 "유학·연수 지급은 우리나라 거주자가 해외 교육기관에 지급한 비용을 집계한 것으로 유학생 수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2010년 약 45억 달러 수준이던 지급액이 작년 약 30억 달러로 줄어든 것은 유학생 수 감소 영향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2020년 이후에는 고환율 영향으로 유학생 수 감소 폭에 비해 지급액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습니다.
과거 중국 유학생 비중이 높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미국·호주·캐나다 등 상대적으로 학비와 물가가 비싼 국가로 떠나는 유학생 비중이 늘어난 영향이라는 분석입니다.
김 과장은 "비자가 나오지 않아 유학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국제수지 통계상 지급액 감소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요인으로는 기본적으로 유학생 수 변화가 가장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뉴욕에 위치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김 모(24) 씨는 3학년을 마친 뒤 지난해 6월 휴학을 택했습니다.
김 씨는 "처음 유학을 갔던 해에는 환율이 1천200원대였는데 어느새 1천400원을 넘나들면서 연간 학비와 생활비를 합치면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원화 기준으로 1년에 4천만 원 이상이 더 들어가는 셈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월세를 아끼기 위해 외곽 지역으로 이사까지 고민했지만 통학 시간과 안전 문제를 생각하면 쉽지 않았다"며 "결국 부모님과 상의 끝에 잠시 한국으로 돌아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초 대학원 진학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환율 변동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졸업까지 하고 싶었지만 가족 부담을 생각하면 더 버티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주립 커뮤니티 칼리지(CC)에 다니던 박 모(23) 씨도 비슷한 이유로 학업을 접었습니다.
박 씨는 "2023년 초 환율이 1천200원대일 때만 해도 생활비를 아끼면 충분히 유학 생활이 가능하다고 봤다"며 "하지만 1천400원을 찍고 내려올 기미가 없으니 CC 학비조차 한국 사립대 등록금보다 비싸졌다"고 말했습니다.
1년에 1억 원 가까이 들 학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결국 한국 대학 편입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LA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김 모(26) 씨 역시 지난 학기 고환율 여파로 급등한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룸메이트를 구했지만, 대학원 진학 계획을 유보하고 작년 8월 귀국했습니다.
그는 "유학비 부담이 커지면서 대학원 진학은 사실상 포기했다"고 밝혔습니다.
종로구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고환율이나 비자 문제 때문에 유학을 연기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나 아예 유학 계획을 접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며 "유학 시장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다"라고 밝혔습니다.
더반포유학 그룹의 벤자민 유 대표는 "고환율과 비자 불확실성 영향으로 미국 대신 뉴질랜드, 호주, 일본, 캐나다, 유럽 등 다른 국가로 방향을 선회하는 사례가 지난해부터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 대표는 "미국 주립대라 하더라도 학비와 생활비를 포함하면 연간 1억 2천만 원가량이 필요하고, 4년 기준으로는 5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간다"며 "환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가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환율을 현재 시세보다 최소 5~10% 높게 가정해 예산을 짜는 것이 안전하다"며 "학비뿐 아니라 렌트비와 식비 등 현지 체류비도 인플레이션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여유 자금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비자 변수에 대한 대비도 필요합니다.
유 대표는 "최근 일부 학생들에 대한 비자 취소 사례나 심사 강화 움직임이 있었고, 인터뷰 예약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며 "입학 허가서(I-20)를 받는 즉시 비자 신청을 진행하는 등 준비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미국 국제교육연구소(IIE)가 작년 미국 내 828개 고등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신규 국제학생 등록이 줄었다고 응답한 기관이 약 57%였으며, 그중 96%는 감소 요인으로 '비자 신청 관련 우려'를 지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환율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유학생들의 시름이 깊어집니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상수지 흑자만 놓고 보면 달러가 국내로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환율이 내려가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해외 투자 등 자본수지까지 함께 보면 1천400원대가 하나의 균형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매년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미국 주식시장 호황이 이어질 경우 달러 수요가 늘어나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김 교수는 "환율이 1천400원대에 머문다는 것은 같은 달러 금액을 쓰더라도 한국 가정이 부담해야 할 원화 비용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의미"라며 "학비와 월세, 생활비를 모두 달러로 지출해야 하는 유학생들의 체감 부담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유학을 계획하던 학생이 진학을 미루거나, 재학 중인 학생이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일정 부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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