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실 모니터 속 숙제
지난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실. 신년 간담회를 마친 김성환 장관이 기자들을 방으로 초대했다. 벽면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 한국전력거래소의 '일일 전력수급 현황판'이 띄워져 있었다. 시간대별로 태양광, 풍력, 가스, 석탄, 원전의 출력이 색깔별로 쌓여 올라가는 그래프였다.
김 장관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오늘은 다행히 구름이 많이 안 껴서 낮에 태양광이 최대 피크로 생산됐다." 그러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런데 이 시간대는 어떡할 거냐. 해가 지는 시간대를 어떻게 할 거냐. 이게 숙제다."
2040년, 석탄의 퇴장
간담회에서 김 장관이 꺼낸 카드는 여러 장이었다. 발전 공기업 5사 통폐합,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재생에너지 100GW 확대. 하나하나가 수년짜리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들은 서로 맞물려 있다.
출발점은 석탄이다. 이재명 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시한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법정 기한과 일치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는 61기. 절반 이상이 충남에 몰려 있다. 2024년 기준 석탄은 전체 발전량의 28.1%를 차지하며 원자력(31.7%), 가스(28.1%)에 이어 3위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기저전원의 한 축이다.
석탄발전을 운영하는 공기업이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 5개 발전사다. 모두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들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김 장관은 "곧 정식 연구 용역이 발주된다"며 "2~3가지 경로를 놓고 장단점을 분석하겠다"고 했다. 4~5월이면 선택지가 압축될 것이라는 일정도 제시했다.
노조는 "하나로", 장관은 "글쎄"
경로는 크게 세 갈래다. 5사를 하나로 합치는 안, 현 체제를 유지하며 경쟁 구도를 가져가는 안, 발전원별로 나누는 안. 노동조합은 첫 번째를 밀고 있다.
김 장관은 노조의 입장을 이렇게 전했다. "기왕에 할 거면 하나로 통폐합하자는 게 다수 의견입니다. 전환 과정에서 교섭력, 협상력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거죠."
하지만 장관 자신은 열어두는 쪽이었다. "5개 회사가 비슷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약간의 경쟁이 필요할지, 통폐합하고 그 안에서 체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하는 게 효과적인지, 정밀 검토가 필요합니다."
경로가 압축되면 국민 공론화를 거치고, 최종적으로 12차 전기본에 담는다는 구상이다. 김 장관은 "정의로운 전환 대책도 포함해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탄이 멈추면 일자리도 멈춘다. 발전소가 곧 지역경제인 충남, 경남, 강원의 고용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가 통폐합 논의의 이면에 깔려 있다.
전기요금, 지역으로 쪼갠다
석탄을 줄이면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발전소가 수도권 밖에 더 많이 깔린다. 그런데 기업은 인재가 몰린 수도권을 떠나지 않는다. 이 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의 취지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전국 단일 가격이다. 서울이든 충남 당진이든 같은 금액을 낸다. 그러나 전기를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은 다르다. 수도권의 전력 자급률은 낮고, 비수도권은 높다. 원거리 송전에 드는 비용은 전 국민이 나눠 부담한다.
김 장관은 이 구조를 바꾸겠다고 했다. "기업이 수도권에서 멀리 갈수록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면, 전기요금이라도 싸야 기업들이 지방으로 갈 유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다만 전 국민에게 적용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반 국민까지 지역차등요금을 적용하면 배전비용 계산 문제가 따라붙는다"며 대규모 전기를 소비하는 기업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선을 그었다. 송전비용 중심으로 설계하되, 배전비용 반영 여부는 추가 검토 대상이라고 했다.
스웨덴은 성공했다, 그런데
해외에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는 낯선 제도가 아니다. 미국은 변전소 단위로 가격을 매기는 '노달 프라이싱'을, 유럽과 일본은 구역 단위의 '조날 프라이싱'을 운영한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는 스웨덴이다. 수력·풍력이 풍부한 북부와 수요가 집중된 남부 사이에 전력 불균형이 극심하자, 2011년 전국을 네 구역으로 나눠 도매가격에 차등을 뒀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북부 지역은 저렴한 전기요금 덕에 순인구유출에서 유입으로 전환됐고, 산업시설 유입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한국과 스웨덴의 조건은 다르다. 스웨덴은 발전·송전·배전·판매가 분리돼 있다. 한국은 한전이 전국을 독점 커버하는 구조다. 한 회사가 지역마다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까. "해외의 경우 회사가 달라 요금이 다른 것이지, 지역이 달라 요금이 다른 건 아니다"라는 지적이 이전 정부 시절부터 나왔던 이유다. 김 장관이 "공론을 거치겠다"고 반복한 것은 이 난관을 의식한 표현으로 읽힌다.
노달 프라이싱 (Nodal Pricing, 미국 방식)
전력망의 각 지점(Node), 즉 수천 개의 변전소별로 실시간 수급 상황을 반영해 가격을 결정한다. 송전망의 병목현상(제약)을 가장 미세하게 반영할 수 있어 계통 운영 효율이 극대화되지만, 계산이 매우 복잡하고 인접 지역 간에도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조날 프라이싱 (Zonal Pricing, 유럽·일본 방식)
국가를 몇 개의 큰 구역(Zone)으로 나누고 구역 내에서는 단일 가격을 매긴다. 노달 방식보다 시장 참여자들의 예측 가능성이 높고 가격 안정성이 있다. 현재 김성환 장관이 언급한 '지역별 차등 요금제'는 광역 단위로 가격을 묶는 이 조날 프라이싱 모델에 가깝다.
100GW, 세 배를 뛰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목표는 야심차다. 임기 중 100GW. 현재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약 34.7GW(2024년 기준)다. 세 배 가까이 늘려야 한다.
김 장관은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린다. 가격을 kWh당 100원 수준까지 낮춘다. 발전 수익은 해당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게 한다. 관련 산업 경쟁력을 높인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태양광 시장은 중국이 전 세계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국내 풍력 터빈 기술은 8~10MW 수준인데, 해외 선두 기업은 15MW를 넘어 20MW를 내다보고 있다. 김 장관도 이 격차를 인정했다. "지멘스 등 유럽 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따라잡을 것이고, 20MW 규모는 별도 R&D로 기술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했지만, 뒤처진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태양광에서는 중국과 정면 승부 대신 틈새를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김 장관은 "탠덤셀 등 기술 혁신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래프의 빈자리
장관실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자. 김 장관이 그래프를 읽어주던 대목이 이 기사의 핵심을 압축한다.
"지금은 에너지를 제일 적게 쓸 때가 60GW, 많이 쓸 때가 95GW 가까이 된다. 하루에도 35GW 차이가 나고, 봄가을에는 40GW 아래까지 내려온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25%까지 올라가면, 원전 출력과 충돌한다. 블랙아웃이 올 수 있다."
이 '충돌'을 메울 수단으로 김 장관이 지목한 것은 양수발전이다. 산 위에 물을 퍼올렸다가 전기가 필요할 때 떨어뜨려 발전하는 방식. 그는 "2050 탄소중립을 전제로 할 때 양수발전의 잠재 총량에 대한 종합 조사가 없었다"며 현재 6~7곳의 후보지를 대상으로 경제성을 평가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댐의 하부에 상부댐만 추가하면 되는 곳을 우선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양수발전 전담 기관을 별도로 만들지는 않겠다고 했다. "초기 투자비가 꽤 들어가서 한 곳에서 맡기엔 부담이 있다. 한수원, 수자원공사, 발전자회사가 각각 맡고 기후부가 총괄하면 된다."
39조 원의 그림자
이 모든 전환에는 돈이 든다. 그런데 그 돈을 집행해야 할 한전의 재무 상태가 심각하다. 2021~2023년 연료비 급등으로 쌓인 누적 영업적자는 47조 8,000억 원. 9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2025년 3분기 기준 아직 39조 1,000억 원이 남아 있다. 부채는 별도기준 118조 6,000억 원, 하루 이자만 73억 원이다.
김 장관은 "한전 적자를 일방적으로 떠안으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전기요금 문제는 꽤 오랜 역사가 있어 한꺼번에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시간마다 요금이 달라지는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해 낮 시간 태양광 잉여전력을 활용하면 대부분 기업에 요금 인하 효과가 있고, 24시간 가동하는 업체는 지역차등요금제로 보완할 수 있다는 구상을 내놨다.
두 제도가 맞물려야 석탄을 줄이면서 산업 경쟁력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설계도는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독일이 남긴 교훈
독일은 한국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다. 2020년 석탄전력생산사용종료법(KVBG)을 제정해 2038년까지 석탄발전을 폐지하기로 했고, 석탄지역투자법(InvKG)으로 석탄 생산 지역에 400억 유로(약 60조 원)의 구조전환 자금을 배정했다. 갈탄 발전사에는 개별 보상 계약을, 석탄 발전사에는 경매 방식의 조기 폐쇄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24년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62.7%에 달했다. 하지만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한 결과 전력 순수입국으로 전환됐고, 마이너스 가격 시간이 급증하는 등 계통 불안정 문제가 불거졌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유럽 최고 수준으로 올라 제조업 기반이 흔들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이 독일과 다른 점은 원전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더이상 화해할 수 없어, 그런 문제가 아니고, 자원들을 어떻게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갈 수 있게 할 거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 정부에서 치른 11차 전기본 공론화에 대해 "조금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12차 전기본은 쟁점을 더 꺼내놓고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2040년의 그래프는?
간담회가 끝나고 장관실 모니터 앞에서 김 장관은 한마디를 더 했다. "우리는 땅덩어리가 좁아서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 여건이 아주 좋은 나라가 아니다. 하지 말자가 아니라, 생각보다 여건이 불리하네…."
모니터 속 그래프에서 낮 시간대에는 태양광 출력이 면적을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해가 진 뒤의 빈자리를 양수로 채울지, ESS로 채울지, 가스로 채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 장관은 이 모니터를 계절별로, 시기별로 들여다보며 에너지 정책을 설계한다고 했다. 그러나 2040년의 그래프는 아직 어디에도 그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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