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자와 이치로
일본 정계에서 '정계 개편의 실력자', '킹메이커'로 불렸던 오자와 이치로(83) 중도개혁연합 전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하며 '19선 불패' 신화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최종 개표 결과, 오자와는 지역구인 이와테현 3선거구에서 자민당의 후지와라 다카시(42) 후보에게 완패했습니다.
1969년 첫 당선 이후 57년 만의 첫 낙선입니다.
신당 창당과 연립정권 창출 등 일본 정치사에 남을 기록을 세운 오자와였지만 이번 총선에서 몰아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열풍, 그리고 지역 내에서 비등했던 세대교체 요구를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오자와의 지역구를 '이와테 왕국'으로 표현하고 "이 왕국은 고령화로 지지층이 약화했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지원에 나선 '젊은피' 후지와라 후보의 유세장에는 고교생을 포함한 젊은 층이 대거 몰렸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의 출구조사에서도 오자와는 30∼50대 모두에서 50%대의 지지율을 보인 후지와라에게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민당 간사장을 거쳐 두 번의 정권 교체를 주도했던 오자와는 낙선 확정 후 "지지자들에게 직접 인사하며 나의 의향을 전하겠다"고 밝혀, 정계 은퇴를 포함한 거취 표명이 임박했음을 시사했습니다.
일본 언론은 정계의 풍운아, 선거의 귀재 등으로도 불렸던 노정객의 몰락을 시대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자와 이치로는 일본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었습니다.
1989년 47세의 나이로 자민당 간사장 자리에 올랐지만,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해 호소카와 연립정권을 세우며 '55년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2009년에는 민주당 대표 대행으로 정권 교체를 실현하며 '킹메이커'로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세 번째 정권을 만들어 과감한 정치를 하고 싶다"며 중도 보수와 야당을 아우르는 정계 개편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기반인 조직은 고령화로 힘을 잃었고, 유권자들은 '과거의 거물'보다 '젊은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지역구에서는 "후계자가 없다"며 그의 재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야당 내에서조차 "이제는 누군가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세대교체론이 힘을 얻었습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이라던 노정객의 마지막 도전은 결국 씁쓸한 퇴장으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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