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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동산과 정치 [취재파일]

부동산과 정치 [취재파일]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2주간 SNS에 부동산 언급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망국적 부동산 정상화는 일은 코스피 5천보다 쉽고 중요하다"며 "부동산 투기로 나라 망하는 걸 보고도 왜 투기 편을 드는 것인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며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이 폭등하던 2021년 국토부를 담당하면서 수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을 취재했습니다. 5년 만에 다시 부동산 분야 담당으로 돌아온 지금 다시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대책을 연이어 내는 것을 보며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의 고점이었던 2021년 연간 서울 아파트값은 6.58% 올랐는데, 지난해는 8.71% 오르며 더 강한 강도로 반복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토지거래허가제와 대출 규제, 수도권 몇 백만 호 공급 목표,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등 정부가 내놓는 카드도 문재인 정부 당시와 비슷해 보여서 그때는 왜 수많은 정책들이 효과를 보지 못했는지, 이번에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문재인 정부 부동산 컨트롤 타워' 김수현 실장의 비망록

그래서 다시 꺼내든 책이 <부동산과 정치>입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23년에 쓴 책입니다. 이 책은 문재인 정부의 집값 잡기가 왜 실패했는지 복기한 기록입니다. 김수현 전 실장은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당사자로 지목됐었는데 이런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용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못 잡았다'라는 솔직한 평가로 시작합니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때 잠깐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것뿐 아니라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있으면서 오랜 시간 도시와 부동산을 고민해왔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내며 종부세 도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참여하며 진보적인 부동산 정책을 펴온 인물의 솔직한 실패기를 담은 책이라 일종의 '기출문제집'을 보는 생각으로 책 내용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김수현, <부동산과 정치><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오월의봄, 2023, 46쪽에서 인용" data-captionyn="Y" id="i202154541" src="https://img.sbs.co.kr/newimg/news/20260206/202154541_50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v_height="720" v_width="1280">
① 주인공은 금리라는 걸 인정하자

집값은 금리와 거의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문재인 정부 집값 급등기는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며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풀리던 시기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 그리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더욱 주택의 금융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서울 아파트는 상품 성격이 더 강화됐습니다.

국토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집값 상승의 60~80%는 금융 상황과 정책에 따라 결정되고 주택 공급의 영향은 10~2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집값 변동에 가장 크고 압도적인(60.7%)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금리였습니다. 대출 규제는 17.9% 영향을 미쳤고, 주택 공급은 8.5%만 집값 변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넘치는 돈이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집값 상승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주택공급이나 세제 등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차적인 요인일 뿐이라는 겁니다. 실제 2022년 들어 미국이 기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치솟던 집값은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전 실장은 전 세계적인 유동성 증가와 주택의 금융화가 집값 상승의 가장 강력한 요인임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② 집값에 따라 세금을 바꾸지 말자

국내에서는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자"는 것이 일종의 부동산 개혁 표어처럼 됐습니다. 역대 거의 모든 정부는 집값이 올라서 민심이 동요하면 보유세를 올리겠다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매기겠다는 식으로 민심을 달랬습니다. 김 전 실장은 보유세를 올린다고 해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미국이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김 실장은 고가 주택, 다주택자를 타겟으로 보유세를 누진적으로 올리는 정책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전 실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가 오르면 다주택자가 집을 매물로 내놓기 보다는 증여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아 문재인 정부 당시 오히려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또한 명목상으로는 다주택자를 엄벌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정작 부자들에게는 회피 방법이 있는 반면, 서민들에게는 상당한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김 전 실장은 부동산 관련 세제를 집값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따라 마구 바꾸는 건 한국 외에는 본 적이 없다고 썼습니다.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바꿔야 할 영역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영역이 있는데, 보유세나 양도세는 되도록 바꾸지 않는 것이 좋고 취득세는 경기에 따라 강온으로 바꿀 수 있다고 봤습니다. 김 전 실장에 따르면 역대 정부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극단적으로 세금 정책을 바꾸는 행동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포장해왔습니다. '불로소득 환수, 세금 폭탄' 등 지지층을 위한 용어를 사용하며 정책적 합리성보다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다독이려는 포퓰리즘에서 이런 정책이 기인했다는 것입니다.

③ 정부가 '집값 잡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자

김 전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도 부동산 문제에 관해 센 표현을 쏟아냈고 문재인 정부도 부동산 문제에 대해 장담하는 표현을 종종 내놓고는 했다고 평가합니다. 집값이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시장 심리를 진정시키려는 발언이 이어지지만, 현실은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처럼 집값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양치기 소년' 식의 학습효과 때문에 정부의 신뢰가 더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고 김 전 실장은 지적했습니다. 정부나 여당도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모면하려고 다주택자 프레임을 활용한 측면이 있다고 봤습니다.

전두환 정부 때 500만호, 노무현 정부 때 임대주택 100만 호, 문재인 정부 때 250만 호 등 역대 정부는 싸고 좋은 집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김 전 실장은 이런 '공급 폭탄론'도 물량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공허한 숫자를 목표로 내세우기보다 주거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좌절을 통해 성찰한 결과 '이제 정부는 집값 잡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자'고 제안합니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집값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가격 안정을 위해서라면 무리한 시장 개입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시장과의 심리전 차원에서 특히 '강남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호언장담이 여지없이 헛말이 되서 정책 리더십과 신뢰가 흔들려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선진국 중에서 정부 수반이 집값을 잡겠다고 얘기하거나 집값을 못 잡았다고 사과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게 김 전 실장의 말입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기에서 배울 수 있을까

김 전 실장의 <부동산과 정치>는 논쟁적입니다. 진보적인 민주당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펴왔으면서도 '강남 아파트, 다주택자, 불로소득'을 때려잡자는 식의 주장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수 진영처럼 정부가 시장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는 식의 '시장만능론'도 아닙니다. 정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인정하고, 그 틀 안에서 현실적으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게 요지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김 전 실장 본인도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를 떠나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30대 청년으로서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정상화되기를 바랍니다. 10년 연봉으로도 살 수 없는 집값에 무리하게 코인에 투자했다 무너진 사람들도, 거주할 아파트를 겨우 마련했지만 대출 이자를 맞벌이로 갚느라 자녀 출산은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남 일 같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주택자도 유주택자도 행복하기는 힘듭니다. 세입자 청년 세대(generation rent)와 집주인 중장년 세대(generation landlord)로 굳어진다면 갈등과 분열은 좁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정부가 김수현 전 정책실장의 부동산 정책 실패기로부터 배워서 부동산 정책의 성공 사례로 남기를 바랍니다.

서울 아파트값 연속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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