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올해 예산 얘기가 거의 없었어요. 국회 출입하면서 이런 적이 또 있었나 싶네요."
인사 발령으로 새롭게 꾸려진 2025년 12월 SBS 탐사기획팀 첫 회의. 인사 발령 전 국회를 출입했던 한 동료가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초유의 계엄 후폭풍, 그렇게 이어진 탄핵과 대선까지, 2025년은 치열한 정쟁으로 얼룩졌습니다. 입법과 더불어 국회의 가장 큰 임무인 '예산 심사'는 정치인들 입에서 별로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728조 원' 역대 최대 슈퍼 예산인 만큼 치열한 토론과 심사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됐지만, 국회는 늘 안녕하지 못했고 예산 심사는 그렇게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여러 차례 예산 회의록 전수분석을 통해 국회를 감시해 왔던 SBS 취재팀.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도 예산안 분석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예산은 심사 감시 기능이 유독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지난해 정기 국회, 즉, 예산 국회 당시 347개, 1만 7,111쪽에 달하는 방대한 회의록을 전수분석했고, 꼬박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탐사기획팀의 최종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실 심사, 졸속 심사,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예산은 그 정점을 찍었다."
11월 12일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법사위 관할 정부 부처의 예산 가운데 더할 건 더하고, 깎을 건 깎는 자리입니다.
법사위 소관 부처는 법무부와 대법원,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제처, 공수처 등으로 편성된 예산은 대략 2.7조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회의록을 워드 클라우드로 분석해 보니, 주요 키워드로 '특활'이란 말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특활'은 특수활동비를 뜻합니다. 특활비는 정부 부처 가운데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국정 수행에 필요한 경비입니다. 대부분 현금으로 지급되고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도 돼 쌈짓돈이란 비판이 많았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검찰 특수활동비는 72억 원. 법사위가 다루는 2.7조 원의 0.003%에 불과했지만, 이 돈을 놓고 여야의 거친 설전이 계속됐습니다.
당시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건이 기폭제가 됐습니다. 당시 검찰 수뇌부가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를 지시하자, 일선 검사들의 집단 행동으로 이어졌는데, 민주당은 검사들이 정치 중립을 어겼다, 특활비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특활비를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의힘은 '검찰 재갈 물리기'라고 반발했습니다.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검찰 특활비는 정부안 72억 원에서 40억 원 넘게 깎인 31억 5천만 원으로 의결, 통과됐습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최종 예산은 법사위 감액안이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사실, 특활비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는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대통령실 특활비로 썼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의힘이 특활비 투명성을 문제 제기하며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2025년도 예산안 논의 때에는 민주당이 대통령실 특활비가 투명하지 못하다며, 대통령실 특활비를 전액 깎았습니다.
여야 공수가 뒤바뀔 뿐, 한 쪽이 투명성 문제를 집중 제기하면 다른 한쪽은 정치 보복이라고 맞대응했고, 이번 예산안 논의 때도 그 역사가 쳇바퀴처럼 반복된 겁니다. 그러니까, 특활비 문제, 늘 정쟁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SBS 탐사보도부는 초점을 좀 달리 해봤습니다. 예산 문제는 정쟁보다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판단, 이를 집중 점검했습니다.
먼저, 모든 정부 부처의 5년치 특활비 예산을 분석했습니다.
올해 특활비 예산은 283억 원으로 계산됐습니다. 5년 전의 8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그래도 좀 나아졌나 싶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예산을 분석하다 보니, '정보보안비'라는 항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정보보안비는 최근에 생겨난 예산 항목인데, 올해 예산에 2,400억 원이 넘었습니다.
정보보안비 5년치 예산을 분석해 보니, 2023년 예산안에 처음으로 정보보안비가 생겨난 이후,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보보안비가 뭘까요. 기획재정부가 올 초 배포한 <2026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그 단서가 있었습니다.
정보 활동 및 이에 준하는 직무 수행의 경우 특활비 지침을 준용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특활비랑 쓰는 방법이 거의 비슷한 돈입니다. 이름만 바꿨습니다.
그래서, 특활비와 정보보안비로 분류된 예산들 다 합쳐서 5년치를 다시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379억 원에서 2,713억 원, 5년 동안 계속 증가 추세입니다.
특활비 투명성을 명분으로 내걸며 여야가 그렇게 싸워왔는데, 사실상 이름만 바꿔 늘고 있었습니다. 치열했던 그간의 정쟁이 무색해졌습니다.
여야가 싸울 만큼 싸웠으니, 이젠 특활비 투명성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할 때가 된 것 아닐까요.
여전히 기재부 특활비 지침은 부적절한 집행 말라, 투명성 확보 노력하라, 권고성 문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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