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박강현(36)은 스스로를 "지독한 경험주의자이자 도전을 통해서 성장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힘든 작품이 될 것'이라는 주변의 걱정을 뛰어넘는, 낯선 방식의 '힘듦'을 요구한다면서도 "이 무대가 자신을 '단단'이 아니라 '딴딴하게' 만들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최근 GS아트센터에서 취재진을 만난 박강현은 "기존에도 힘든 작품들을 많이 해봤는데, 사실 큰 겁 없이 도전을 했다.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확실히 다른 힘듦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했던 뮤지컬들이 노래로 장면을 정리해 주는 장점이 있다면, 이 작품은 에너지·대사·움직임으로 표현해 나가야 해서 확실히 더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굉장히 값진 도전 중이라고 생각해요."
2017년 연극 '나쁜 자석' 이후 박강현은 안정적인 노래 실력으로 성장하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그런 그에게 '노래가 없는 무대'는 '라이프 오브 파이'가 9년 만이다. 박강현의 강점이 '노래'라면, 이 작품은 그 장점을 일부러 내려놓게 한다. 노래로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움직임과 에너지, 대사와 시선으로 140분을 끌고 가야 한다.
그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왜 한다고 했지" 싶은 날도 있고, "이래서 한다"는 확신이 드는 날도 있다. "끝나면 진짜 녹초인데, 그 녹초가 된 상태가 싫지는 않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가장 큰 매력으로 박강현이 꼽은 건 단연 퍼펫이다. 이 작품에는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비롯해 다양한 동물들이 무대 위에서 배우와 같은 존재감으로 '살아' 움직인다. 박강현은 퍼펫과의 연기가 낯설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인형에 인격을 부여하며 놀던 경험이, 무대 위에서 퍼펫을 '진짜'로 믿는 감각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인형 가지고 많이 놀잖아요. 인형에 인격을 부여해서 놀고. 그때는 그게 진짜라고 믿고 하듯이 놀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으면 퍼펫들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요. 어느 순간 퍼펫 티어들이 안 보이고 퍼펫만 보이게 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퍼펫만 보이는 순간"은 연습과 팀워크의 결과다. 리처드 파커는 머리·몸통·다리를 세 사람이 나눠 조종한다. 호흡이 조금만 어긋나도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퍼펫 티어 분들은 오전 10시 연습이면 8시 반쯤 와서 몸 풀고, 팀끼리 따로 맞추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연습 과정이 있어서 퍼펫이 더욱 완벽하게 보여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두 가지 이야기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리처드 파커와 함께한 거의 신화에 가까운 생존기, 다른 하나는 재난 속에서 충분히 벌어졌을 법한 인간 군상의 처절한 이야기다. 함께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진실은 무대 위에 나란히 놓이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가.
박강현은 "어떤 이야기를 믿는 건 배우의 몫"이라는 연출진의 말을 전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배우 역시 매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연출님이 어떤 이야기를 믿는 거는 배우의 몫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답은 없다고. 첫 번째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둘 다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엔 논리적으로 말이 될 법한 걸 믿고 가자 했는데, 어쩌면 그 생각을 가로막는 게 이 작품의 의도 아닌가 싶더라고요. 선택을 못하겠어요. 매일 달라요."
그는 기본적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관객을 설득하려고 출발한다. 그러나 공연은 늘 그 확신을 흔든다. 관객의 분위기와 상대 배우의 에너지에 따라서도 믿음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했다.
"제가 그렇게 설득을 해도, 스스로도 두 번째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어지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오늘은 정말 첫 번째 이야기가 진짜 같다'고 느끼는 날이 있고요. 결과는 매번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99명이 아니라고 해도 한 명이 맞다고 하면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게 '라이프 오브 파이'의 질문과도 닮아있어요."
이번 시즌 파이 역으로 함께 캐스팅된 배우 박정민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박강현은 박정민의 성실함과 에너지에 대해 "몇 시간 전에 연습실에 와서 모든 걸 쏟아낸다"고 말했다. "'이렇게 에너지를 남김없이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열정이 느껴졌어요. 성실함을 많이 배웠죠."
마지막으로 박강현은 관객에게 "정답을 찾지 않아도 되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맞고 틀림이 아니라, 각자의 믿음을 꺼내 보게 만든다. "굳이 정답을 찾으려고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냥 보고 나서 각자 느끼는 대로, 각자 믿고 싶은 이야기를 믿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뮤지컬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내년 3월 2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SBS연예뉴스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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