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연극을 연극이라 부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요즘 공연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형 연극 제작사들이 연극이라고 하지 않고 뮤지컬이라고 표를 팔고 있는 겁니다.
김수현 문화예술 전문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영화를 무대로 옮긴 '라이프 오브 파이'는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뮤지컬로 분류돼 있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본 관객들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전하은/관객 : 딱히 넘버(노래)가 나오지 않은 것 같아서.]
[유준우/관객 : 연극에 가까운 편이어서.]
맞습니다, 뮤지컬은 노래가 서사를 이끄는 장르지만, 이 작품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노래가 없습니다.
연극과 뮤지컬을 구분해 시상하는 토니상과 올리비에상에서도 모두 연극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일본 제작사가 연극이라고 명시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내한 공연 역시 한국에서는 뮤지컬로 둔갑했습니다.
[존 케어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연출가 : 이건 판타지입니다. 노래가 없으니 뮤지컬보다는 연극에 가깝습니다. 뮤지컬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관객이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며 관람하는 '슬립 노 모어'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인데, 한국에서는 뮤지컬로 판매됩니다.
왜 연극을 연극이라 하지 않는 걸까.
뮤지컬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뤄진 한국 시장에서는 '뮤지컬은 볼거리 많은 비싼 공연, 연극은 영세하고 싼 공연'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최고가 15만 원 이상의 대형 연극들이 관객의 관심을 끌고 가격 저항을 줄이기 위해 뮤지컬의 외피를 두른 겁니다.
이런 '장르 세탁'은 관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공연 시장 통계까지 왜곡합니다.
[고희경/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 기초 데이터가 잘못돼서 정책을 잘못 수립할 수도 있고, 또 아주 기본적으로 관객들이 이걸 뮤지컬인 줄 알고 갔는데 연극이었다라고, 잘못 판단하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오류가 있었다.]
비싸면 다 뮤지컬이 되는 한국식 공연 분류법, 공연의 본질 대신 가격표에 매몰된 우리 공연계의 씁쓸한 현주소입니다.
(영상취재 : 한일상, 영상편집 : 최혜영, VJ : 오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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