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태에 대응하는 쿠팡의 행태가 점입가경입니다. 국민 부아를 돋우는 일만 골라하며 '국민 밉상'이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 믿는 구석이 있나 의아할 지경입니다. 국민 정서를 달래고 우리 정부에 협조하기는커녕 강경하게 맞설 태세입니다.
'어리숙' 모드에서 '맞짱' 모드로 태세 전환
우선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해롤드 로저스 한국 쿠팡 임시 대표의 태도가 사뭇 바뀌었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국회 과방위 주관 청문회에서 로저스 대표는 '어리숙' 모드였습니다. '잘 모른다'는 대답을 반복하며 대부분의 답변을 미적지근한 사과와 시간 끌기,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했습니다. 동문서답도 동원됐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김범석 의장의 불출석 사유를 묻자 "답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 자리에 오게 돼 기쁘다"며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국회 연석 청문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추궁에 고성으로 맞섰습니다. 국회에서 준비한 동시 통역기 대신 개인 통역사를 고집하다 거절당하자 "정상적이지 않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의원들이 단답형 답변을 요구하자 손가락으로 책상을 치며 "Enough(그만하자)"고 맞서기도 했습니다. "쿠팡에서 정보 유출자와 접촉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한국) 정부가 우리에게 지시했다"는 답변만 반복하며, "이 사실을 왜 감추느냐"고 향의했습니다.

'자체 조사' 결과 발표 놓고 정부와 '정면충돌'
어제 청문회의 최대 쟁점은 쿠팡의 '셀프 조사'였습니다. 정보 유출자가 3,300만 개 계정에 접근했지만 저장한 정보는 3천여 개에 불과하다는 쿠팡의 조사 결과 발표를 정부는 정면 반박했습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3,300만 건 이상의 이름과 이메일이 유출된 사실을 민관합동조사단에서 확인했다"며 "추가로 배송지 주소와 주문 내용 역시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청문회에서 밝혔습니다.
쿠팡이 '셀프 조사'가 아니라며 "국가정보원 지시에 따랐다"는 주장을 내놓은 데 대해서도 정부는 부인했습니다. 어제 청문회에서 로저스 대표는 "해당 지시를 한 국정원 직원의 이름을 제공하겠다"며 "국정원에서 피의자에게 연락을 하라고 해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법상 요청에 따라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피의자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자료 요청 외에 쿠팡에 어떤 지시, 명령, 허가를 한 사실이 없으며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다"면서 로저스 대표에 대한 위증죄 고발을 국회에 요청했습니다. 대규모 정보 유출을 범한 쿠팡이 관련 조사와 대응 과정에서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이지고 있는 것입니다.
쿠팡 보상책 발표에 "매만 벌었다" 평가
쿠팡이 내놓은 1조 7천억 원짜리 보상안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피해자 1인당 5만 원 구매 이용권을 지급하겠다고 제시했지만 '꼼수'라는 지적만 불렀습니다. 이용권 5만 원 가운데 80%인 4만 원을 일반인들이 잘 쓰지 않는 알럭스와 쿠팡트래블 할인 쿠폰으로 배정한 데 대해 보상이 아니라 판촉이라는 비난이 들끓습니다. 특히 2만 원의 알럭스 이용권은 해당 온라인 쇼핑몰이 이른바 '명품'만 취급하다 보니 가장 값이 싼 3만 원짜리 양말 한 켤레도 살 수 없는 금액입니다. 보상을 받으려면 '탈팡'을 되돌려야 해 소비자의 쿠팡 탈퇴를 막으려는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어제 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는데 추가 보상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로저스 대표는 "이번 보상안은 전례 없는 규모"라고 자평했습니다. 피해 보상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미국 증권위에 공시 강행
이렇게 우리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셀프 조사' 결과를 쿠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그대로 공시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수사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공식 부인한 내용을 신고한 것입니다. 또 이번 조사 결과가 수사기관 등이 아니라 자신들이 자체 진행한 결과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정부와 협력하며 진행한 조사였다'고 주장했던 보도자료의 번역본을 첨부했습니다. 논란이 일고 있는 보상안도 함께 공시했습니다.
쿠팡이 한국 정부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확정되지 않은 내용의 공시를 강행한 것은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모회사 쿠팡 아이앤씨의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공시 지연에 따른 집단 소송 등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쿠팡의 믿는 구석은…미국? 독점적 지위?
쿠팡은 그룹 전체 수입 가운데 약 93%를 한국에서 벌어들입니다. 창업주가 미국 시민권자이고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지만 국내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기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론과 정서를 외면한 채 정부와도 각을 세우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미국이 뒷배'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쿠팡은 미국 행정부, 특히 국무부와 무역대표부에 대한 로비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50억 원 넘는 돈을 미국 정부 로비에 쏟아부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실제 미국 상공회의소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만 입증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며 우리 국회에 항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또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관련 조치는 통상압력 분쟁이 있을 수 있는 사건으로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렇게 터무니없는 조치를 취하지 말라'는 협박성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김우영 의원은 전했습니다.
미국의 증권 거래 관련 법규제가 한국보다 엄한 점도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입니다. 미 증시 공시나 관련 소송 방어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유입니다. 아울러 소비자 구제 제도의 격차도 엄존합니다. 대표적 사례가 2017년 '아이폰 배터리' 사건입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을 통해 6000억 원대 합의금을 받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5년의 소송 끝에 7명이 1인당 7만 원의 배상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쿠팡으로서는 미국의 제재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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