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취재파일

[사실은] 해외 석학도 '샤이 보수' 주장? 직접 물었습니다

[사실은] 해외 석학도 '샤이 보수' 주장? 직접 물었습니다
지난 15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는 당 지지율을 놓고 공개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포문은 양향자 최고위원이 열었습니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여론조사는 과학의 영역"이라며, 국민의힘의 낮은 지지율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중도층이 공감하지 않는 계엄 정당론이 과연 도움이 되겠느냐며, 사실상 지도부를 겨냥했습니다.

그러자 김민수 최고위원이 "이견이 있다"면서 추가 발언권을 요청했습니다. 그간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왔던 김 최고위원은 지금의 여론조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박에 나선 겁니다.
 
김민수/국민의힘 최고위원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표현되고 있는 갤럽, NBS 여론조사의 경우 면접자 설문 방식입니다. 면접자 설문 방식의 경우 수많은 전문 연구 영역에서 샤이 보터 현상, 즉 내향적 응답 효과가 발생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방법론의 교과서로 불리는 로저 투랑조의 연구에서 역시 면접 방식의 조사는 사회적 압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 최고위원이 말하는 '면접자 설문' 방식, 즉, 사람이 전화를 걸어 직접 정당 지지율을 묻는 전화면접 방식에서는 응답자들이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기계음으로 묻는 ARS 조사 결과가 더 신빙성이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김 최고위원은 그 근거로 미국 미시건 대학교의 심리학 석학인 로저 투랑조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사실일까요. 투랑조 교수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SBS '사실은' 팀이 팩트체크 했습니다.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단, 요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화면접 조사와 ARS 조사 간 차이가 비교적 큰 걸로 나옵니다.

지난주 비슷한 기간, 전화 면접으로 조사한 갤럽과 ARS로 조사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수치를 비교했습니다. 갤럽은 12월 9일 부터 사흘간, 리얼미터는 12월 11일부터 이틀간 조사한 결과입니다.

투랑조 교수 관련 김민수 최고위원 발언 팩트체크

국민의힘 지지율을 보면, 갤럽은 26%, 리얼미터는 34.6%였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두 조사 방식 간의 차이를 '내향적 응답 효과'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이 직접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선뜻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계엄 이후 보수 세가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사람이 묻는 조사에서 "나는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게 불편하고, 그래도 ARS는 기계가 물으니까 좀 낫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김 최고위원이 말한 대로,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 석학 로저 투랑조 교수 등의 연구입니다.

투랑조 교수는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란 심리학 용어로 유명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을 밝힐 때는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맞춰 왜곡해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투랑조 교수는 이를 여론조사에도 적용했습니다. 웹 조사나 ARS 조사에 비해, 사람이 직접 묻는 여론조사에서 이런 편향이 커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웹조사 방식은 기존의 전화면접(CATI)에 비해 (응답자들이 답하기 어려운) 민감한 정보의 보고를 증가시켰으며, IVR(ARS)은 이 두 방식의 중간 수준을 보였다.
Web administration increased the reporting of sensitive information relative to conventional CATI, with IVR intermediate between the other two modes
- Frauke Kreuter, Stanley Presser, Roger Tourangeau, Social Desirability Bias in CATI, IVR, and Web Surveys: The Effects of Mode and Question Sensitivity, Public Opinion Quarterly, Volume 72, Issue 5, December 2008, Pages 847–865

투랑조 교수 관련 김민수 최고위원 발언 팩트체크
미국 미시건대 로저 투랑조 교수

그렇다면, 투랑조 교수는 더 나아가, 전화 면접이 '샤이 보터' 현상을 강화시킨다고 주장했을까요. 좀 더 넓게 보면, ARS가 편향을 줄이는 더 정확한 조사라고 언급했을까요.

SBS 사실은팀이 투랑조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진위를 확인했습니다. 투랑조 교수로부터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저는 '샤이 보터' 현상을 믿지 않습니다. 제 연구에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I don't believe in the shy voter phenomenon and nothing in my work supports that it exists."
- 로저 투랑조 교수 이메일 답변, 지난 16일

즉, 심리학자인 투랑조 교수는, 심리학의 일반적인 논의를 했을 뿐, 자신은 구체적으로 '샤이 보터' 현상까지 거론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 현상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앞서 말씀드린 투랑조 교수의 논문을 자세히 보니까, 이렇게 써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어떤 자료 수집 방식도 나머지 두 방식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Considering all our findings, no mode of data collection dominated the other two.
- Frauke Kreuter, Stanley Presser, Roger Tourangeau, Social Desirability Bias in CATI, IVR, and Web Surveys: The Effects of Mode and Question Sensitivity, Public Opinion Quarterly, Volume 72, Issue 5, December 2008, Pages 847–865

투랑조 교수는 전화 면접 조사와 웹조사, ARS 조사를 분석했는데, 어떤 방식의 여론조사가 더 우월하다는 식의 주장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실제, 국내 연구에서도 ARS 조사는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하게 답하기는 하지만, 답하고 싶은 사람만 답하면서 응답률이 현저히 떨어져 '표집 왜곡'이 벌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는 반면, 전화면접 조사는 어느 정도 편향이 생길 수 있지만, 응답률이 높아 표집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투랑조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김민수 최고위원의 발언을 검증했지만, 이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정치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령, 2023년 10월, 당시에는 민주당 지지율이 ARS 조사에서 수치가 높고, 전화면접 조사는 낮은 경향성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때마침 국내 34개 여론조사업체가 가입한 한국조사협회가 '정치 선거 전화여론조사 기준'을 만들고, ARS 조사를 금지하기로 했는데, 민주당 내부에서는 ARS 여론조사 엄호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정청래/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2023년 10월 25일 최고위원회)
(정부가) ARS 여론조사까지 탄압하고 있다. …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지 왜 위장 탓하나. 시험에 합격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왜 볼펜 탓하고 시험지 종이질을 탓하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7일 강원 춘천시 더불어민주당 강원특별자치도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떤 여론조사 방식이 더 적합한가를 두고 전문가들과 여론조사업체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다만, 우리가 여론조사를 볼 때, 얼마가 더 올랐고, 얼마가 더 내렸다는 식의 '수치' 그 자체보다는, 전체적인 추세를 가늠하는 도구로 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작가 김효진, 인턴 황누리)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팩트체크! 사실은? 질문을 남겨주시면  취재인이 직접 검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