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이른바 AI 규제의 선두에 서 있던 유럽연합, EU에서 규제 완화 흐름이 포착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내년 1월 세계 최초로 AI 법규를 시행하는 국가가 될 예정입니다.
중소 규모 AI 서비스와 콘텐츠 업계는 대기업에 비해 규제 대응 여력이 작다 보니,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앞선 규제를 적용하면서 충분한 현장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AI 관련 자율 규제 방침을 채택한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국내 AI 스타트업이 최근 부쩍 늘어난 것도, AI 기본법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내년 1월 22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이른바 AI 기본법을 시행하며 AI 관련 법규를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됩니다.
AI 법 제정은 EU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EU는 내년 8월부터 고위험 AI에 대한 규제의 상당 부분을 적용할 예정이어서 실제 적용 시점에서는 우리나라가 더 앞서게 됩니다.
게다가 지난달 EU 집행위원회가 규제 완화안을 담은 '디지털 간소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EU의 AI 규제 적용 시기가 2027년 말로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빅테크의 요구와 AI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유럽 내부의 우려가 반영돼, EU가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었다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우리 정부는 EU 각국의 동의가 필요하고 시민단체 반대도 있어 실제 EU 인공지능법 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AI 업계와 전문가들은 AI 규제의 선봉에 섰던 EU마저 속도 조절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규제 적용을 서둘러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정부가 AI 기본법 시행령을 법 시행 한 달여를 남기고 입법예고하면서 준비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입법예고 이후 법제처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까지 거치면 시행령이 법 시행 직전에야 확정될 수 있다며, 대기업은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대응하더라도 스타트업은 막막한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최근 국내 AI 스타트업 101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8%가 사실상 AI 기본법 시행에 대비한 실질적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조사 대상 기업의 절반가량은 내용을 잘 모르고 준비도 안 돼 있다고 답했고, 나머지 절반 역시 법령은 인지하고 있지만 대응이 미흡하다고 밝혔습니다.
AI 업계에서는 최근 일본에서 사업을 구상하는 AI 스타트업이 늘어난 배경 중 하나로 국내 AI 규제를 꼽고 있습니다.
대규모 언어모델, LLM 설루션 기업 올거나이즈와 업스테이지, 자연어 이해 AI 설루션 기업 무하유 등은 일본에 현지 법인을 세웠거나 설립을 추진하며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과태료 부과나 정부의 사실 조사권을 강제한 우리나라와 달리, 업계 자율 규제를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 IITP는 지난 9월 시행된 일본 AI 추진법을 근거로 'AI 적정성 확보 가이드라인' 초안이 발표됐다고 분석했습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딥페이크 규제와 데이터 투명성, AI 리터러시 강화 등 AI 거버넌스 체계가 담겼으며, 사업자와 정부, 국민이 자발적으로 준수하는 소프트 거버넌스 정책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면 굳이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서비스를 할 유인이 커진다며, 현행 AI 기본법 시행 일정이 유지될 경우 국내 서비스가 내년 1월 22일 이후 갑자기 변경되거나 중단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AI 기반 콘텐츠 기업들은 AI 생성물임을 표시하도록 하는 이른바 워터마크 규제가 업계를 가장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딥페이크 등 범죄 악용 사례에 대한 규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콘텐츠 창작 산업 전반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AI 콘텐츠 기업 대표는 AI 콘텐츠 뒤에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이 매달려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며, 그런 노력은 무시된 채 AI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생성물 표시를 해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대표는 AI 생성물이라는 표시가 붙는 순간 소비자가 외면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또 AI 기본법을 보면 AI 생성물 표시 의무에 대한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많다며, 세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 시행을 추진하고 있고, 콘텐츠 제작 환경을 이해하는 당사자들이 법 제정과 의견 수렴 과정에 충분히 참여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U는 규제 완화, 한국은 세계 최초 시행…AI 기본법에 쏠리는 업계 불안
입력 2025.12.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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