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시작은 널리 알려진 대로 DVD 대여 사업이다. 1990년대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가 물린 연체료 40달러가 아까웠던 창업자 헤이스팅스가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보고 떠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빨간 봉투에 DVD를 담아 개당 4달러에 우편으로 빌려주고 회수하던 사업이 정기구독 모델로 발전했고, 오늘날 온라인 스트리밍 세상의 대표 기술기업이 됐다. 가내수공업과 다를 게 없던 회사가 720억 달러에 할리우드 상징 워너브러더스 영화·TV 스튜디오와 HBO를 인수한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요즘 테크 기업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마트폰 넷플릭스 앱에서 영상을 내려받아 보면 두 가지에 놀란다. 생각보다 작은 파일 크기에 놀라고, 그럼에도 선명한 화질에 다시 놀라며 새삼 이 회사가 테크 기업이란 걸 떠올리게 된다. 테크 기업의 본질은 특히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때 유감없이 발휘된다. 평소 시청자들이 어떤 콘텐츠를 어느 대목에서 얼마나 몰입해 봤는지 알고 있는 넷플릭스는 데이터를 분석해 '데이빗 핀처 감독에 케빈 스페이시 주연인 정치스릴러(<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내다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어려운 영화계는 두 회사의 결합이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스트리밍을 우선하는 거대 독점 기업이 극장 산업에 "전례 없는 위협"이 될 거란 주장이다. '데이터' 기반 콘텐츠 기업의 지배가 창의적 예술과는 상극이라 믿는 창작자들의 반발도 나온다. <로마>나 <아이리시 맨> 등 기존 스튜디오가 주저한 유명 감독의 프로젝트에 거액을 댔던 넷플릭스로선 억울한 노릇이지만 그 조차 '영화제 수상'과 '거장 섭외' 목적이었다는 혐의가 있는 건 사실이다. MGM을 인수한 아마존이 007 시리즈 재활용으로 논란을 빚었듯, 102년 역사의 워너 명작들을 넷플릭스가 어떻게 돈벌이에 이용할지 우려하는 영화팬도 있겠다.
넷플릭스의 워너 인수에 비견할 만한 대규모 인수합병이 지난 2019년 있었던 디즈니의 폭스 스튜디오 인수다. 디즈니 밥 아이거 회장 자서전엔 당시 713억 달러짜리 깜짝 거래의 뒷이야기가 나온다. 폭스 머독 회장이 개인 와이너리로 아이거를 초대해 먼저 인수를 제안했고, 둘은 잔을 함께 기울이며 거대 기술기업 위협에 공감했다는 내용이다. 폭스뿐 아니라 픽사, 루커스필름 등을 인수한 뒤 내놓은 일련의 디즈니 콘텐츠에 대해선 호오가 분명하지만, 적어도 '콘텐츠 쟁이'끼리는 인수합병을 논할 때도 '전통과 유산은 이어가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비판을 의식한 듯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서랜도스는 이번 인수로 "워너 영화에 대한 접근 방식이 변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워너가 계획한 영화의 극장 개봉도 당분간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훨씬 소비자 친화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덧붙여 '넷플릭스화' 여지는 남겨뒀다. '광고 없는 정주행'을 내세워 가입자를 유치하고 그 과정에서 계정 공유까지 권장했던 넷플릭스가 이내 지배적 사업자가 된 뒤 어떻게 변했는지 아는 소비자가 많다. 각국의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논란이 길어질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A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