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불법대출' 의·약사 등 280여 명 송치
최근 서울수서경찰서가 의사와 약사 등 280여 명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의료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해 11월, SBS는 '의료계 불법대출'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병·의원, 약국을 차리려는 의료인들이 개원 자금이 부족하자 브로커를 끼고 불법대출을 받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닥터론'이라고 불리는 시중은행 대출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 직군마다 한도가 다를 뿐 아니라 건물 임대료에 인테리어, 의료장비,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일반 은행 대출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원 자금이 일반 대출만으로는 부족할 때 '신용보증기금'의 도움을 받는 게 의료계에선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들이 이용한 건 신용보증기금의 '예비창업보증'이었습니다. 유망 창업자의 성장을 돕기 위해 지난 2014년에 만들어진 제도로, 심사 과정을 거쳐 은행에 대출 보증을 서주는 겁니다. 매년 7-8천억 원씩 운용되는데, 이 중 90% 가까이가 의료 전문직에게 집중 지원되고 있었습니다. 운용 원칙은 자기자본 대비 100%까지만 대출 보증을 서주는 건데, 다시 말해 본인이 1억 원을 갖고 있다면 신용보증기금이 대출도 1억 원까지만 보증을 서주는 겁니다.
사실 처음부터 몇억 원씩 여유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개원의들은 많지 않겠죠. 대출 브로커들은 이점을 노렸습니다. 일정 수수료를 받고 돈을 잠시 빌려준 뒤, 신용보증기금에 '뻥튀기'한 잔고를 증빙해 더 많은 대출 보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한마디로 '허위잔고 증빙'으로, 신용보증기금이 엄격히 금지하는 '사기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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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보도 이후, 서울수서경찰서가 집중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사실 취재하면서 수사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잠입취재를 통해 만나봤던 브로커들은 생각보다 철두철미했기 때문입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차용증이나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의료기기를 렌탈하는 것처럼 꾸며서 거래를 진행했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의사의 가족 등에게 돈을 송금하는 등 '자금 세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취재에 들어가자, 이들이 증거 인멸 작업에 들어갔단 소문도 파다했습니다.
그럼에도, 10개월간 걸친 수사 끝에 경찰은 무려 의·약사 278명을 검거했습니다. 모두 취재진이 접촉했던 대출업체 소속 브로커 A 씨를 거쳐간 고객들이었습니다. 약 3년간 신용보증기금이 이들의 불법대출에 2천억 원 상당의 보증을 서줬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경찰은 1차 송치 후 나머지 의·약사들에 대해서도 수사 중입니다. 게다가, 이는 취재진이 접촉했던 여러 브로커들 중 단 1명을 수사한 결과입니다. 취재에 도움을 준 이 업계를 잘 아는 관계자들도 불법대출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20여 명을 서울 송파경찰서에 고발했는데, 이중 브로커 2명과 한의사 2명도 최근에 혐의가 인정돼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까지 수사가 이뤄진다면 범죄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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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철저했던 만큼, 확보된 증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내부고발자들이 털어놓은 내용을 토대로 불법대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도 후 신용보증기금은 올해 초 예비창업보증제도를 전면 개편했습니다. 자기자본금을 기준으로 했던 기존 방식에서 예상 영업이익률을 토대로 보증을 서주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제도 개편 이후, 적발된 불법대출 사례는 없었다고 신용보증기금은 밝혔습니다.
경찰은 브로커 역할을 한 대출상담사들뿐만 아니라, 이들 뒤에서 거액의 돈을 빌려주고 일정 수수료를 받아갔던 이른바 '쩐주'들에 대해서도 수사 중입니다. 또, 사실상 허위로 잔고 증빙한다는 걸 알면서도 눈감아줬단 의혹을 받는 신용보증기금 직원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불법행위를 도려내고, 또 멈출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어디에나 틈은 있습니다. 이 빈틈을 발견하고 잘못 새어나가는 것들을 막아냄으로써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주시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