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상황인데?
1400원대 환율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데다, 원화 약세로 인한 원자재비용 증가 등 후폭풍이 가시화할 조짐을 보입니다. 경상수지 흑자 흐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달러화 강세와 한미 간 금리 차이, 또 주식 등 해외투자의 급속한 증가세, 관세협상에 따른 미국 현지투자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환율을 밀어 올리는 형국입니다. 정부는 지난주 주요 수출기업들과 만나 수출로 확보한 달러화를 환전해 외환시장에 풀어줄 것을 요청한 데 이어, 달러화 동원력이 있는 국민연금, 또 서학개미 투자자들의 환전이 이뤄지는 증권사 담당자들을 잇달아 만나 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먼저 국민연금이 움직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8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1천322조원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고 이중에 절반 이상(약 58%)인 771조원을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 중입니다. 또 해외 자산의 5% 안에서 달러화를 사고파는 외환 거래도 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관 중에 한국은행 다음으로 가장 달러화 자산이 많은 국민연금이 자산을 일부 매각해 달러화를 공급하는 방식이 우선 거론됩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계좌 환전 시스템을 점검하고 나선 것입니다. 서학개미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거래 규모가 워낙 커지다 보니, 계좌 내에서 원화 예수금이 달러로 환전되는 액수가 커졌는데, 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의 대규모 달러매수 주문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환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외 주식투자가 자유화된 시스템 안에서 이런 관행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이번 주 들어 정부가 더 바빠진 이유는 어제(24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의 자료 때문입니다. 한국 원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이 있는지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10월 말 기준 89.09를 기록했는데, 2009년에 기록한 88.8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 겁니다. 원화 구매력이 이렇게 떨어졌다는 것은 당장 달러화 결제가 필수인 원유 수입비 등 필수 원자재 수입비용부터 급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원화 가치 약세로 인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는 것입니다.
정부가 동원하는 몇 가지 대응 방안들을 살펴보죠. 먼저 국민연금은 정부가 요청하면 외화 자산의 최대 10%까지 이른바 '환 헤지'를 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보유한 통화의 가치가 급변할 때 외환거래를 통해 손실을 막는 게 필요합니다. ⓵국민연금이 보유한 해외 자산의 일부를 팔아서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⓶또 어차피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를 위해 시장에서 달러화를 사야 하는데, 이 거래를 외환시장에서 하지 않고, 외환을 보유한 한국은행에서 달러를 직접 사는 '직거래 방식'으로 하면 달러화 수요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은 '통화 스와프'계약을 체결해놓고 있는데, 올해 말 만료되는 계약을 연장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 중입니다. ⓶ 또 하나는 아예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려서 원화 가치를 높이는 직접적인 방식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걸리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선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미래 노후 자산인 만큼, '수익률'이 가장 중요합니다. 환율 방어에 기금이 동원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을 수 있고 또 수익률에 영향을 준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국민연금이 원화 자산도 많이 보유한 만큼, 수익률 자체를 위해 환율을 방어할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결국 수익률을 적절히 관리한다는 것을 전제로 국민연금의 지원이 가능합니다. 또 하나는 국제적 감시 문제입니다. 미국은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하는 등, 인위적인 환율 관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추세입니다. 다만 현재의 원화 약세에는 미국발 요인도 작용했다는 점에서 외교적 방어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게 정부의 생각입니다.

한 걸음 더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주식 매수를 위해서, 올해 들어 9개 주요 증권사에서 환전한 금액이 157조 6천억 원을 기록했는데, 2023년에 97조원에서 60% 넘게 급증했습니다. 증권 계좌에서 해외주식을 사면, 원화 예수금이 달러로 환전되면서 사게 되고, 이걸 팔더라도 거래대금은 자동으로 달러화로 계좌에 남아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달러화 수요가 높아지는 흐름이 강화됩니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증권사 관계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이런 환전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증권 계좌에 적용 중인 '통합증거금'시스템은 개인 계좌의 원화 자산과 함께 달러 등 외화 자선도 모두 합산해서 '주문 가능금액'으로 설정해주고 있습니다. 일반 투자자 입장에선 해외주식 투자를 할 때, 달러화 예수금이 부족하면 원화 자산이 자동 환전되니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이 마감되면 증권사들은 밤사이에 거래를 정산하면서 부족한 달러화를 사야 하기 때문에, 이튿날 오전 외환시장 개장 직후 일제히 매수주문을 내게 됩니다. 당국은 이 시점에 달러 매수가 대규모로 쏠리면서 환율이 상승해 출발하는 압박이 강해진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튿날 몰아서 외환거래를 하지 말고, 거래가 이뤄지는 시점에 실시간으로 환전하거나, 개장 직후 같은 특정시점이 아닌 하루 평균 환율로 정산하는 등의 대안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일반 투자자가 외화가 부족하면 주식 주문 시점에 환전을 해서 거래하거나, 증권사가 야간시간 환전을 해야 하는데, 이미 시스템이 정착한 상황에서 비용과 불편이 커질 수 있습니다. 증권사들도 일단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