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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보다 더 무서웠던 인종 차별…흑인 최초 테니스 세계 1위 아서 애시 [스프]

[별별스포츠+]
아서 애시
1960년대까지만 해도 테니스는 사실상 백인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1968년 US오픈에서 한 흑인 선수가 혜성처럼 떠올랐습니다. 흑인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정상을 차지한 것입니다. 1975년에는 최고 권위의 윔블던에서 흑인 선수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새 역사를 썼습니다. 극심한 인종 차별을 딛고 흑인의 영웅이 된 전설의 스타 아서 애시를 소개합니다.


"흑인은 테니스 할 수 없다"는 곳에서 성장
아서 애시

아서 애시는 1943년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풀 네임은 아서 로버트 애시 주니어인데 흔히 아서 애시라 부릅니다. US오픈이 열리는 빌리 진 킹 내셔널 센터에 여러 코트가 있는데 가장 큰 경기장 즉 센터 코트 이름이 아서 애시 스타디움인데요, 이것만 봐도 이 선수가 미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정말 심했습니다. 애시가 살던 버지니아 주에서는 "흑인은 테니스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는 법까지 만들어졌습니다. 흑인이 테니스 하기가 무척 힘든 상황에서도 애시는 7살 때 라켓을 잡았는데요, 아버지가 테니스 코트가 포함된 공원의 관리인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 애시의 기량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은 흑인은 대회에 나갈 수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좌절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12살인 저에게 남은 기억은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전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제가 흑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고향 버지니아 주의 흑인 차별에 따라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던 그는 세인트루이스로 이사해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대회에 나가는 길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아서 애시에게 은인이 나타났는데요, 그가 바로 흑인 의사였던 로버트 월터 존슨이었습니다. 존슨은 애시가 좋은 코치에게 지도를 받게 하고 테니스 선수가 가져야 할 정신과 자세를 가르쳤습니다. 쉽게 말해 인생의 멘토였던 것이지요. 은사의 도움으로 그는 명문 UCLA에 흑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남자테니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흑인 금지 규정'을 실력으로 깨부순 첫 번째 흑인이 됐습니다.


1968 US오픈에서 흑인 최초 우승
아서 애시

아서 애시는 1961년, 18살 때 처음으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각종 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1968년 US오픈 이전까지 31승이나 거두며 존재감을 키워나갔습니다. 1968년은 아서 애시 인생의 전환점이었는데요, 이 해는 전 세계적으로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습니다. 미국에서는 1968년 4월 흑인 민권운동의 기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는 비극이 일어나 흑인들이 크게 분노했고 이로부터 두 달 뒤에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당시 대통령후보인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돼 미국 사회가 일대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서 애시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아서 애시는 미국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2주 뒤 열린 US오픈에서도 승승장구했는데요, 결승에서 네덜란드의 톰 오케르 선수를 만났습니다. 25살의 아서 애시는 강력한 서브로 상대를 제압했습니다. 26개의 서브 에이스를 터뜨리며 세트 스코어 3대 2로 이겼습니다. 이로써 애시는 US 오픈 챔피언에 오른 최초의 흑인 남성이자 같은 해에 아마추어 챔피언십과 US오픈을 모두 제패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데이비스컵 출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14,000달러의 1등 상금을 받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아서 애시는 메이저대회인 US오픈을 제패하면서 일약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1975년 최고 권위 윔블던에서 기적의 우승
아서 애시
아서 애시

이후 아서 애시의 테니스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었습니다. 1968년 바로 그해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정상에 오르며 3년 연속 미국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70년에는 메이저대회인 호주 오픈에서 남자 단식을 제패하며 두 번째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긴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무려 5년 동안 큰 대회에서는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요, 1975년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테니스의 본고장 영국에서 열리는 최고 권위의 대회 윔블던 결승에 오른 것입니다. 하지만 우승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상대가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아서 애시는 거의 32살이 된 전성기가 지난 선수로 평가된 반면 결승 상대 지미 코너스는 23살의 디펜딩 챔피언으로 최고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코너스는 결승까지 단 1세트도 내주지 않았고 이전 아서 애시와 3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코너스의 승리가 예상됐던 것이지요.

그런데 경기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깼습니다. 애시는 기존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른바 공격의 완급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했습니다. 빠르게 했다 느리게 했다 하면서 변칙 작전으로 나오자 코너스는 당황했습니다. 애시의 노련한 플레이에 말린 코너스는 성급하게 덤비다 숱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니까 제 기량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지요. 1-2세트에서 애시는 모두 6대 1로 이기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3세트는 7대 5로 내줬지만 4세트를 6대 4로 따내 세트 스코어 3대 1로 승리했습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는데요, 흑인 최초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아서 애시, 이때가 테니스 인생의 절정이었습니다. 애시로서는 윔블던 도전 8번 만에 거둔 우승인데 만 31세 11개월의 우승기록은 2017년 로저 페더러가 경신할 때까지 42년 동안 단식 최고령 우승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1980년 은퇴 이후 인권 운동에 투신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이후에도 아서 애시는 이후 10개 대회에서 더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대회 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그는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요, 1979년 12월 심장 수술을 받은 후 1980년 4월 16일 37살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타임지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하고, 1980년대 초반부터 사망하기 몇 달 전까지 ABC 스포츠와 HBO에서 해설하고, 내셔널 주니어 테니스 리그를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1981년부터 1985년까지 미국 데이비스컵 팀의 단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는데 1985년엔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운동, 인권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미국 곳곳에 극빈층을 위한 유소년 테니스팀을 창설하는 한편 남아공 정부의 인종분리정책과 부시 정부의 아이티 난민정책에 항의하다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평소 "나는 훌륭한 테니스 선수로 기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데 이바지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에이즈 감염 고백, 퇴치 운동에 앞장
아서 애시

애시는 1983년 심장 이상으로 수술을 받았는데요, 이때 수혈을 받다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즉 HIV에 감염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집에 앉아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불우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게 낫다"며 더욱 열성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었는데요, 1992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1988년 9월 뇌 수술 하면서 AIDS에 걸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1983년 심장 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하다 HIV에 감염됐습니다."


애시는 에이즈 퇴치를 위한 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에이즈보다 흑인이라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에이즈는 나의 몸을 죽이지만 인종차별은 나의 정신을 죽인다"는 말까지 했는데요, 병마와 싸우던 애시는 마지막까지도 인종차별 철폐에 자신의 몸을 내던졌습니다. 1993년 2월, 그가 50살의 나이에 에이즈로 인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자 뉴스 앵커가 그의 죽음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고, 당시 미 대통령 빌 클린턴은 "진정한 미국인의 영웅을 잃었다"며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추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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