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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취재파일] "위험하지만 편리한 전동 킥보드"

[취재파일] "위험하지만 편리한 전동 킥보드"
"편리함을 유지하고 질서를 만들어야"
2023년, 프랑스 파리의 소식이 SBS 8시 뉴스 국제 코너를 장식했다.

내용은 전동 킥보드 대여 서비스를 전면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이 결정은 파리 시 당국의 일방적 조치가 아니라 주민 투표 결과였다. 국내에서도 전동 킥보드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이 많기에 눈길을 끄는 소식이었다.
 

킥보드를 원하지 않는 시민들

파리의 거리(사진=게티이미지)

전동 킥보드 대여 서비스는 2018년 프랑스에 도입됐다. 금지 발표 직전까지 하루 약 1만5천 대가 파리 시내 곳곳을 달리고 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교통 혼잡을 피하려는 직장인들과 관광객들의 이용도 늘면서 산업이 급성장했다. 그러나 문제도 컸다. 킥보드 사용에 따른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2022년 한 해 동안 3명이 사망하고 459명이 다쳤다. 여기에 야간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고까지 늘면서 "대여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90%의 반대, 주민들이 내린 결정
파리시의 안 이달고 시장은 20개 구 주민을 대상으로 대여 서비스 유지 여부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반대 90%. 10명중 9명이 반대표를 들었다. 시민들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수치였다. 이로써 파리는 유럽 주요 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전동 킥보드 대여 서비스를 금지하는 도시가 됐다. 당시 파리에서 '라임(Lime)' 등 3개 업체가 약 1만5천 대의 전동 킥보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적지 않은 규모였다. 투표 결과에 대한 업체들의 강한 항의도 있었지만 파리는 투표 결과를 따르기로 했다.

개인 킥보드는 여전히 허용
다만 모든 전동 킥보드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개인 소유 킥보드는 여전히 이용 가능하다. 성능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파리에서 개인 킥보드 구입비는 1,500유로~4,500유로이다. 싼 가격이 아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2022년 한 해에 70만 대의 개인 킥보드가 판매됐다. 편리성 때문에 직접 구입하는 시민이 크게 늘었다. 개인 소유 킥보드 이용자를 보면 대부분 35세 이상 성인이다. 이들은 킥보드 이용 거리가 길고 보험에 가입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여 킥보드를 이용하는 30대 초반 남성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대여-소유 상관 없이 강력해진 단속
파리시는 금지 결정과 함께 개인 소유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1인용 원칙 위반 시 벌금을 기존 35유로에서 135유로로 대폭 상향했다. 이후 파리는 많이 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전거 도시로 나아가는 파리
대여 킥보드의 감소는 자전거 이용 증가로 이어졌다. 파리시는 2026년까지 시내 전역을 자전거로 100% 이동 가능한 도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도 강력한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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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휴스턴시는 아직 전동 킥보드의 전면 금지를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제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내 중심가에서는 사용 자체를 금지하고, 속도 제한·이용 시간 제한·헬멧 착용 의무화 등의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급증하는 사고와 민원 때문이다. 2021년 3건에 불과했던 휴스턴의 킥보드 관련 사고는 2024년 23건으로 늘었고, 그중 확인된 두건은 사망 사고였다. 도시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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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보드로 사람 치고 뺑소니

인도 위를 마구 달리는 킥보드를 경찰이 단속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행자와 충돌해도 "운이 나빴다"라며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를 몰다 적발된 10대 청소년은 2021년 3,500여 명에서 2023년 2만 명으로 늘었다. 불과 2년 만에 6배 가까이 증가했다. 관련 사고 건수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데도 정부나 지자체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전동 킥보드는 법적으로 '개인형 이동장치(PM)'로 분류된다. 만 16세 이상,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 이상을 가진 사람만 운전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무면허로 운행한다.

전동 킥보드는 도시 교통의 모습을 크게 바꿔 놓았다. 스마트폰 하나로 대여와 반납이 가능하고, 짧은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민이 찾고 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무질서와 안전 불감증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전동 킥보드를 '혁신의 상징'이 아니라 '관리의 사각지대'로 바라봐야 할 때다.

호주는 최근 전동 킥보드 사고가 급증하면서 경찰이 직접 단속에 나섰지만, 성과는 크지 않다. 이용자들이 경찰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달아나거나, 강제로 제지하면 2차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경찰은 대여 업체에 이용자 교육을 강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인도 주행 금지, 헬멧 착용 의무화 등을 앱을 통해 안내하라고 촉구하지만, 실효성은 아직 낮다. 법과 제도가 있어도 실행되지 않으면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전동 킥보드는 '어디서나 탈 수 있고 어디서나 세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이제는 그 자유로움이 도시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인도 한복판, 버스정류장, 아파트 출입구,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까지 킥보드가 아무렇게나 방치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횡단보도 위에 쓰러진 킥보드가 보행자의 통행을 가로막고, 점자 블록을 덮어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시민이 인도 위를 걸으며 달리는 킥보드를 피하고, 세워진 킥보드를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은 이미 일상이 됐다.
 

조금씩 변하는 우리 모습

전동 킥보드

남양주시는 전동 킥보드 주차 금지 구역 17곳을 지정하고 내년부터 단속에 들어간다. 보도 중앙, 자전거 도로, 점자 블록, 소방시설, 지하철 출입구 등이 모두 금지 구역이다. 위반 시 견인 비용을 업체에 부과하고, 업체는 이용자에게 청구하도록 했다.

서울에서도 변화가 있다. 조사 결과 시민의 98.4%가 '킥보드 없는 거리' 확대를 찬성했고, 서초구와 마포구는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일부 구간을 시범 운영 중이다. 운영 이후 시민 10명 중 7명이 "보행 환경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현장에 나가보면 달라진 모습을 느낄수 있다.

이제는 단속과 규제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이용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유럽 주요 도시들은 이미 킥보드 전용 주차장 설치, 속도 제한(15~20km/h), 헬멧 착용 의무화, 1인 탑승 원칙, 음주 운전 금지, 인도 주행 금지 등 세부적인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우리도 단순히 "조심해서 타라"는 말로 끝낼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전동 킥보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편리함을 유지하면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책임 있는 이용과 적극적인 행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 '스마트한 이동'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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