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영국 공영방송이자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언론사인 BBC가 9일(현지시간) 정치적 편향 논란 속에 사장과 보도 부문 총책임자를 동시에 잃는 전례 없는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직접적 원인은 BBC가 지난해 다큐멘터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했다는 의혹이지만, 수년간 누적되다 올해 들어 부쩍 고조된 '편향' 논란에 BBC 수뇌부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지난달 방송규제 당국인 오프콤(OfCom)은 BBC가 가자지구 관련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하마스 관리의 아들에게 맡긴 사실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아 방송 규정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정했습니다.
올해 7월에는 글래스턴베리 록 페스티벌에서 가수들이 공연 도중 "IDF(이스라엘군)에 죽음을"과 같은 과격한 구호를 외쳤는데 BBC가 중계를 중단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습니다.
성소수자 관련 논조도 늘 논란이었습니다.
BBC 내 성소수자 기자들이 타고난 성별과 다른 '젠더 정체성'에 비판적인 보도를 거부하면서 사내 '검열'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 수뇌부가 이를 철저히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기관 전체가 편향성 논란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는 자성은 BBC 내부에서도 나옵니다.
케이티 라잘 BBC 문화·미디어 에디터는 'BBC 수뇌부의 균열을 보여주는 지진 같은 순간'이라는 해설 기사에서 트럼프 연설 조작 의혹과 관련해 BBC가 대중을 오도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다시 살펴보니 시청자에게 연설의 두드러지는 부분을 확실히 알리려 몇 가지 처리를 했다는 내용으로 사과문을 준비했다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사회가 1주일간 사과문 발표를 막았고 이에 보도 부문 책임자인 데버라 터네스 BBC 뉴스·시사 총책임자(CEO급)는 점점 좌절하게 됐으며, BBC 안팎의 많은 이가 이런 대응 실패를 중대한 실수로 본다고 라잘 에디터는 전했습니다.
적절한 대응에 실패하면서 BBC 저널리즘 전체를 위해 싸울 기회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사의를 표명한 터네스 CEO는 오늘(10일)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에게 "책임지고 사임하지만 BBC 뉴스에 제도적 편향성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며 "우리 기자들은 부패하지 않았고 공정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보수 성향 정치 지도자들은 BBC 사장과 보도 총책임자 사임을 환영하면서 BBC 전체의 편향성을 고치려면 갈 길이 멀다고 주장했습니다.
제1야당 보수당의 케미 베이드녹 대표는 "훨씬 깊이 흐르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두 명의 사임으로 제도적 편향성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익 성향 영국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도 이번이 BBC의 마지막 기회라며 이번 사임이 대대적 개혁의 시작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성향이나 논조를 이유로 BBC를 흔들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라는 의구심도 제기하지만,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일련의 사건으로 논란을 자초한 만큼 BBC가 자체 노력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