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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흘린 눈물의 무게…시점도 메시지도 모두 의문 [스프]

[이브닝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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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표 취임 52일 만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묵은 숙제를 끝냈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이뤄진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입니다. 장소를 바꾼 특별 면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일반 면회였고 시간도 10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함께 간 김민수 최고위원은 자신과 장 대표 두 남자가 그 10분의 절반을 눈물로 보냈다고 적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 하겠다던 면회, 과연 적절했나? 이브닝브리핑
장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적절한 시점에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당 지도부 관계자도 17일 면회를 "선거 전부터 했던 약속의 이행"이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예고했던 것처럼 적절한 시점이었는지, 면회의 내용과 이후의 메시지는 적절했는지, 약속 이행이 당 전체에 미친 영향은 적절했는지 따져볼 구석이 많습니다.

지난 17일은 이재명 정부를 상대로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 첫 주말이었습니다. 예로부터 국정감사는 정부여당의 실점을 비판하면서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십분 발휘할 절호의 기회로 여겨져 왔습니다. 일파만파인 캄보디아 범죄조직 대처, 효과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10.15 부동산 대책, 이견을 좁히고 있다지만 여전히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한미 관세협상.. 정부여당의 부담이 가중되는 국면에서 야당 대표는 지도부에도 알리지 않고 구치소로 향했습니다. '왜 이 시점이냐?'에 대한 장 대표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주말 내내 국민의힘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나왔고, 민주당은 반색했습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대단히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처사, 국정감사도 한창인 상황에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
"당 대표가 당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데 대해 책임져야"
정청래 민주당 대표
"공당의 대표가 내란 수괴를 비호하며 응원하다니, 국민에 대한 심각한 배반 행위"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극우 세력의 망동과 다를 바 없다"

면회 후 장 대표가 내놓은 메시지가 더 악성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장 대표는 다음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윤 전 대통령이) 힘든 상황에서도 성경 말씀과 기도로 단단히 무장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로 뭉쳐 싸웁시다. 좌파정권으로 무너지는 자유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국민의 평안한 삶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는 당연히 의도가 있습니다. 장 대표는 현 상황과 다음에 취할 행보의 밑바탕에 여권과의 싸움을 전제했습니다. 또 그 싸움에 임하는 주체로 윤 전 대통령과 자신, 그리고 지지세력까지 결합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면회를 약속 이행의 측면을 넘어 대여 투쟁의 고리로 쓰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시작부터 꼬여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직접적으로 초래한 윤 전 대통령은 어떠한 사과나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본인의 무고함을 주장하면서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사법절차에는 좀처럼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 대표 역시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은 뒷전인 채 강성 지지층을 상대로 대여 투쟁을 강조했습니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여 투쟁의 최종 목표지점은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일 텐데, 그 첩경인 국민, 좁게는 승부를 갈라온 중도층 표심을 향한 메시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약속 파기, 김영삼-노무현 대통령의 사례
정치인이 내놓았던 약속과 나중에 그 약속을 깨면서까지 더 큰 공익을 추구하려 했던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집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당시 농민 표심을 잡기 위해 "쌀 시장은 결단코 개방하지 않겠다"라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가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특히 미국 등은 한국이 쌀 시장을 계속 보호하는 건 WTO 협정 위반이라고 압박했고 보복관세 위협까지 거론됐습니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전면 개방 대신 일정 물량만 수입하는 '관세화 유예(Minimum Market Access·MMA)' 결정을 내립니다.
이브닝브리핑
"쌀은 결코 정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농업만을 고립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농민이 세계와 함께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진정한 보호이고, 더 큰 공익입니다."
- 김영삼 대통령 대국민 담화, 1994년 12월

김 전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세계 경제질서 속 생존전략', 즉 국가 경제와 농민의 장기적 공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설명했습니다. 농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쌀 개방 반대 전국 농민 총궐기대회'에는 10만 명 이상이 참가했습니다. 보수 정권 내부에서도 "공약 파기이자 정치적 자해행위"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부의 관세화 유예가 쌀 시장 전면 개방을 10년 이상 늦춘 완충 장치라는 재평가가 나왔습니다.

2005년 9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선 때 공언했던 "국내 미군기지의 단계적 감축과 자주국방 강화" 기조를 수정했습니다. 그는 평택·오산으로의 미군기지 통합 이전('용산기지 이전계획')을 승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브닝브리핑
"국가의 자주와 안보를 함께 지키기 위해서 선택했습니다. 국민과 한 약속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더 큰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2005년 9월 청와대 브리핑

당시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공약 파기"를 비판했지만, 정부는 주둔비 부담 완화와 한미연합 방위체제 유지를 위한 현실적 조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타격을 감수했고, 실제로 2006년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 중 하나로 '공약 후퇴'가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결정은 '동맹과 자주'의 균형을 모색한 정치적 결단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 면회에 비하면 한참 거창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대의 정치인이 자신의 공약을 어기면서까지 고민해야 했던 더 큰 공익과 후대의 평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윤 어게인 회귀'로는 민심 못 얻어..전대 공약부터 실천해야
당내에서는 장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급함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장 대표 당선 이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네 번 연속 24%였습니다. (9월1주~4주 한국갤럽 자체조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당의 새 얼굴이 들어섰음에도 한 달 넘게 득점 포인트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끈적끈적한 지지율 고착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현실적 해답은 장 대표가 전당대회 당시 스스로 내걸었던 공약에 나와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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