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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2002년 대법원장 국정감사 출석 논쟁 다시보기 [취재파일]

2018년·2002년 대법원장 국정감사 출석 논쟁 다시보기 [취재파일]
▲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내일(13일) 시작됩니다. 내일은 국회에서 국정감사가 진행됩니다. 15일에는 대법원으로 자리를 옮겨서 국정감사가 한번 더 진행됩니다. 최대 쟁점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출석 및 답변 여부입니다. 대선을 앞둔 지난 5월 1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 유죄 취지 판결을 선고한 일과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장 등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던 민주당 측이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대법원장을 상대로 반드시 이에 대해 추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인사말만 하고 증인 신분으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던 관례를 이번에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지난 10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불출석한다면 일반 증인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며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가능성까지 시사했습니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관례를 깨고 대법원장 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사법부 겁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자제력을 잃고 대법원장을 불러내 답변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대법원장을 쫓아내겠다는 것"이라며 "헌법 질서를 깨는 무리한 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논쟁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물론 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이유, 즉 대법원장이 참여한 구체적 재판에 대해 질문하겠다는 이유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 시도는 처음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할지 여부 자체는 과거에도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양 쪽 모두 지금과는 정반대…2018년 국정감사 논쟁

2018년 당시 국정감사 기다리는 김명수 대법원장

가까운 사례로는 2018년 대법원 국정감사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는 대법원장 국정감사 증인 출석 여부에 대해 민주당 측과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측이 지금과는 서로 정반대되는 주장을 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민주당이 요구하고 있는 대법원장 국정감사 출석 및 답변을 당시에는 자유한국당 측이 요구했고, 지금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출석 불가 논리를 당시에는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민주당 입장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주장했습니다.

2018년 10월 10일 대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 법사위 간사 김도읍 의원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 질의에 답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도읍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있을 때 공보관실 운영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이 있고,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을 고위직에 잇달아 기용해 사법부를 정치조직화했다는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다며 "김명수 대법원장은 관례에 따라 인사 말씀 이후 퇴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 앉아 위원들의 질의에 직접 답변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 송기헌 의원은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증언에 반대했습니다. 우선 송 의원은 "지금까지 대법원장이 직접 질의응답에 응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대법원과 국회 그리고 행정부라는 삼권분립의 큰 원칙에 따라서 대법원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 같은 경우는 대법관 전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재판을 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략] 이런 전례가 생긴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해 가지고 전체 재판 관계에 대한 문제까지도 다 질의응답을 해야 되는 사태가 될 수 있는 그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라며 대법원장에게 직접 질의해 답변을 요구하지 않는 관례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2018년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장이 증인 자격으로 질문에 답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한때 국정감사장을 떠나는 등 갈등이 있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관례대로 서두 인사말 이후 국정감사장을 떠났다가, 국정감사 마무리 인사말 등을 통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종합적으로 발언하는 선에서 논란을 봉합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국정감사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전형적인 '내로남불'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7년 전에는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강력하게 요청"했던 국민의힘 측은 이번에는 헌법 질서 수호를 이유로 대법원장 출석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관례를 깨뜨리면 재판에 대한 문제까지도 대법원장이 답변해야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재판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도 대법원장이 증인으로 답변하는 것에 반대했던 민주당 측은 이번에는 재판에 대해서 질의하겠다며 대법원장의 증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서 양 당 모두 입장을 바꿨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2002년 논쟁이 중요한 이유 - '정초적 사례'와 '느슨했던 정파 논리'


하지만 2018년 국정감사 사례와 달리 의미 있게 검토해 볼 만한 논쟁도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막바지인 2002년 국회 법사위에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입니다. 2002년 논쟁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2002년 사례는 1987년 헌법 개정으로 국정감사권이 회복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국회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시키려고 본격적으로 시도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도 대법원장 국정감사 출석을 놓고 여야가 논란을 벌인 적은 있지만, 양 당 간사가 출석에 대해 합의까지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때 국회에서 벌어진 논쟁 과정에서 대법원장 등의 국정감사 출석 여부와 관련된 핵심 찬반 논리가 이미 제출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2002년 논쟁은 2018년이나 2025년보다도 사법의 정치화 또는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훨씬 덜했던 상황에서 진행됐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대법원장의 인사나 특정 판결이 여야 간의 핵심적 정치 쟁점이 되는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약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강성 지지층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여야 의원들도 소속 정당의 입장이 아니라 자신들의 평소 소신을 상대적으로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토론 내용을 살펴보면 법사위 여야 간사의 입장은 일치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증인 채택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만만치 않은 주장을 쳤습니다.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리가 좌우되는 경향이 덜했다는 점에서도 2002년 토론을 조금 더 깊이 있게 검토할 가치가 있습니다.

당시 논쟁은 2002년 9월 2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있었던 새천년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순형 의원 발언에서 시작됐습니다. 국정감사계획안을 채택하는 자리였던 이날 회의에서 조 의원은 "이제까지 대법원하고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장하고 헌법재판소장은 인사말만 하고 출석‧답변 안 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전에도 몇 번 출석 문제가 거론이 되고 여야 간에 논란도 있었고 그랬는데, 그런대로 해 왔는데 이제는 이것 한번 본격적으로 우리가 검토해야 되지 않느냐"며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 등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이 출석 안 하는 것은 유신 이후에 형성된 잘못된 관행입니다. 유신체제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선서까지 하고 출석‧답변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것은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흘 뒤인 9월 6일, 함석재 국회법제사법위원장(한나라당)과 여당인 민주당 함승희 법사위 간사, 그리고 야당인 한나라당 김용균 간사는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모두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해 답변을 듣기로 합의합니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고 인사말만 했던 관행을 깨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독립성 훼손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대한변협 등도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여러 언론이 비판 보도를 이어가자 국회 법사위는 9월 10일 전체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합니다.

 

2002년 법사위 여야 간사 "대법원장·헌재소장 답변해야"

한나라당 김용균간사(왼쪽)와 민주당 함승희간사(오른쪽)

2002년 9월 10일 오전 10시 47분에 시작된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는 먼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증인 채택을 합의했던 여당과 야당의 간사가 출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민주당 간사였던 함승희 의원은 "이 문제는 원칙의 문제"라며 "헌법 및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 국가기관이 국정감사 대상이고, 기관장이 그 국가기관의 장으로서 감사를 받는 것이 법의 규정인 동시에 법의 정신에 맞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정감사의 대상 중에 재판업무는 안 된다는 것은 접근이 잘못됐다."라고 주장하며 "계속 중인 재판이나 계속 중인 수사에 관여하지 못한다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의 그 근거 외에는 왜 재판업무에 관여를 못 합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함승희 의원: 예컨대 작년에도 여러 분이 질의하셨습니다. 대전에서 어떤 판사가 '윤락행위는 필요악이다'라면서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성매매는 가급적이면 인권이라든가 윤리적 차원에서 엄하게 규제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우리나라 추세인데 '윤락행위는 필요악이다'라고 하는 입장에서 일종의 재판행위인 영장기각행위를 했습니다. 이것이 국민정서에 맞는가라는 것을 따지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의 본질적인 의무이고 국정감사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해당 법원장 또는 전체 법관의 업무를 관장하는 대법원장이 거기에 대해서 답변을 하거나 적어도 그런 의견이 있었다는 것을 전국 법관회의라든가 법관교육이라든가 법원장회의 때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면서 그것을 참고하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또 국정감사를 내실 있게 하는 유효적절한 방법이라고 저희들은 판단을 했고...
 
함승희 의원은 그러면서도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서 질의한다면 답변을 안 하면 그만이고요"라며 계속 중인 재판에 대한 질문 자체는 적절하지 않지만, 이에 대해서는 대법원장 등이 답변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정감사에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야당인 한나라당 간사 김용균 의원도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국정감사 출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습니다. 김용균 의원은 국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답변을 한 사례가 과거에도 이미 3번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김용균 의원: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한 예를 보면 제7대 국회 때인 67년 12월 9일입니다. 그때 대법원장 조진만(趙鎭滿)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선서를 하고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했습니다. 또한 7대 국회인 68년도 10월 1일에 대법원장이 출석을 했으나 그때는 증인선서를 하지 않고 위원의 질의에 답변을 했습니다. 제7대 국회 1970년도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대법원장 민복기(閔復基)가 증인선서를 하고 위원의 질의에 답변을 했습니다. [중략] 그 이후에 유신헌법 등이 제정됨으로 인해 가지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없어지는 역사적인 변화를 겪다가 제13대 국회 1988년도에 국정감사가 부활되면서 국정감사의 관행으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감사장에 나와서 인사만 하고 퇴장을 하는 그러한 관행이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에 정해진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김용균 의원은 또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증인출석문제에 대해서 권력분립을 침해한다든지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든지 하는 차원에서 논란을 벌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을 밝혔습니다. 법원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을 증인으로 소환했을 때 그것이 국회나 행정부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국회에서 대법원장이 증인으로서 꼭 필요하고 헌법재판소장이 증인으로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충분히 그 기관장을 증인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차례로 발언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증인출석문제는 각자 법적인, 이론적인 근거를 다 갖고 있다"며 다음날 법사위 회의에서 대법원과 헌재 등 관계기관 의견을 듣는 편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습니다.

 

김학원 의원과 이상수 의원의 출석 반대론


그러자 자유민주연합 소속 김학원 의원이 출석 반대론을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네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3권 분립이라는 문제는 상호 견제를 중요시 여기고 있지만 또 그 내부적으로는 상호 상대 부(府)를 존중하는 일면도 있어야만 서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법부에서도 행정에 관해서 통치행위 내지 정치문제에 관련된 것은 되도록 재판을 자제해 왔고 국회에 대해서도 국회의 자율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되도록 재판을 자제"해왔다면서 별다른 사정 변경이 없으니 "관행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둘째, 과거 유신헌법 이전에 대법원장들이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것은 지금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먼저 당시에는 법원행정처장이 법원행정처 본부 소속 직원에 대한 행정만 총괄하고 있었고 법원행정 일반을 총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에는 법원행정처장이 법관이 아니라 일반직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달리 재판과 관련된 행정적 업무에 대해서도 답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럼 점에서 1968년과 1970년에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것을 현재의 전례로 삼는 것은 "사정이 약간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셋째, 국정감사법 8조에 보면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서 국정감사 및 조사를 자제하자는 조문을 명문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재판 업무에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계속 중이든 아니든 간에 입법부에서 국정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별로 적절치 못하다고 하는 것을 상당한 학자들이 사법권 독립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주장"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 업무 외의 법원행정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장을 불러서 조사함으로써 국정감사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학원 의원은 - 이후 2025년에 민주당이 출석 요구의 근거로 제시하는 - 국회법 121조에 대해서도 "이 규정이 과연 온당하냐 하는 데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헌법 62조에는 국회가 국무총리나 국무위원 등의 출석을 요구해서 질문할 수 있다는 규정이 되어 있지만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을 출석요구해서 질문할 수 있다는 근거규정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설사 실정법으로서 국회법 121조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김학원 의원: (국회법 121조의) 이 규정은 국정감사 일반에 관해서 적용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특정한 사항에 대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을 그 특정한 문제에 관해서 출석요구해서 질문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거기서 구체적으로 예를 상정한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서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의 개인적인 비리문제라든지 개인적인 특정한 문제에 대해서 질문할 때는 법원행정처장이나 헌법재판소사무처장을 불러 가지고 묻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그런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 그 사람들을 불러서 요구할 수 있는 길을 트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정감사 때 이 규정을 원용해서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을 출석요구해서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발언자로 나선 민주당 이상수 의원 역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상수 의원은 이 문제는 "적법성의 문제는 아니고 타당성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법적으로는 국회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이나 헌재 소장도 부를 수 있지요. 그런데 과연 우리가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하는 행위가 타당하고 합리적이냐, 온당하냐, 이런 차원에서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상수 의원은 "재판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는 국정감사권이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법관의 독립" 침해라는 것입니다.
 
이상수 의원: 지금 헌법에도 법관의 독립이라는 것이 명백히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 독립해서 재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법관이 일단 재판한 내용에 대해서는 상급심에서 논란을 할 수 있지만 제3자인 국회가 나중에 사후적으로 당부를 따지는 것은 이론상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적인 공분이 일어나 가지고 그 재판이 문제가 있다고 여론에 환기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법적으로 우리가 국정감사 기간 동안에 재판의 내용에 대해서 당부를 따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보고, 설사 과거에 감사를 하는 동안에 특정사건에 관해서 묻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민원성 질문도 하는 것을 제가 봤지만 그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법에 의해 심판된 내용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관행이 잘못된 것이지 과거에도 재판의 내용에 대해서 따진 적이 있으니까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은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

이상수 의원은 모든 법적 권한을 극한까지 사용하겠다는 경향이 강해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발언도 합니다.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온당"하지 않은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의원 주장의 요지입니다. 이상수 의원이 보기에는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국정감사에 출석시키는 일도 "온당"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상수 의원: 우리 사회가 너무 지나치게 모든 문제를 원칙대로 하겠다, 법대로 하겠다 해 가지고 극한적인 상황까지 몰아붙여서 전부 다를 실현하려고 할 때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 서로 간에 여지를 남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간에 균형을 취하면서 견제하는 자세가 옳지 않을까, 좋은 관행을 쉽게 고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저는 실익도 없고 불필요한 마찰만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대법원장을 증인으로서 신청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법적으로는 적법하지만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르지 않는 것을 동의합니다.
 

조순형 의원 "국정감사의 범위·한계 정립해야…국회의 의무"


뒤를 이어 이 문제를 공론화한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조순형 의원은 이번에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의 범위라든가 한계라든가 본래 의미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립해야 된다"라며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출석이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라는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먼저 조순형 의원은 '외국에서는 대법원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사례가 없다'는 법원 측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세계에서 3권 분립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국정감사를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기 때문에 외국에서 대법원장이 국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조순형 의원은 과거에도 대법원장이 세 차례 증인선서를 하거나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들 질의에 답변한 일이 있다고 국회 회의록을 통해 확인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이 언급한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고 만약 일부 위원들 주장처럼 국정감사가 재판을 제외한 사법행정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면 사법행정책임자인 대법원장이 출석해야 할 이유는 더욱 명확하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셋째, 법관과 재판에 대한 국정감사는 3권 분립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 다시 말해 법원행정이 아니라 법관과 재판에 대해 국정감사하는 것은 3권 분립 침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습니다.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 안 되고 또 동시에 사법정의가 실현되도록 국정감사를 통해서 실태를 파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당연한 책임이며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조순형 의원: 아직도 상당수 국민들이 재판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서 불신하고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것을 국민들이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입증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사법부는 어떻게 보면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되어 있어요. 재판의 독립, 사법부의 독립에 가로막혀 가지고 누구에게도 비판을 안 받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안 지는 성역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정감사가 아니면 국민들의 이러한 불신과 불만을 사법부에 전달하고 시정을 요구할 통로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대법원 측에서는 지금 반대하고 있습니다마는 대법원장 증인 채택에 대해서 법리적 찬반, 지금 이 자리에 훌륭한 법률가이신 여러 위원께서 찬성, 반대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대법원장도 이러한 찬반 차원을 떠나서 국정감사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통해서 주권자인 국민의 생생한 소리와 소망을 들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정당이라도 엇갈린 의견…증인 채택 안 하는 것으로 정리


다음 발언자는 민주당 신기남 의원이었습니다. 신 의원은 "논리적으로, 법률적으로는 증인 채택이 물론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법 121조도 그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해서 3권 분립 논리를 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법부 수장의 위신 같은 것도 고려"해줄 필요 등을 고려해 기존의 관행이 성립되어 온 것 같다며, "특별히 꼭 불러서 증언을 시켜야만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때가 아니라면 그런 관행대로 좇아서 채택을 면제시켜 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사법부 측에서 정중히 그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굳이 그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이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출석시키는 것은 법률적으로 가능하고, 실제로 필요한 경우는 있겠지만, 이번에 꼭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발언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 순서였습니다. 유신헌법 기초 작업에 참여했고, 노태우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바로 그 김기춘 의원입니다. 김기춘 의원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권위와 독립성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예우해야 된다고 본 위원도 확신"하고 있다면서도 "사법부 수장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 채택 문제가 이 시점에서 국회에서 제기된 자체를 사법부는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표결로 처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 오늘 토론을 바탕으로 위원장과 양 당 간사가 협의해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민주당 최용규 의원이 다음 발언자로 나섰습니다. 최 의원은 대법원장이 인사말만 하고 퇴장하는 것은 "존중해야 할 권위"가 아니라 "묵은 권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원칙에 의해서 와서 선서를 하고 국회에서는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해서 답변 부분에 관한 융통성을 두는 정도로 절충을 하더라도 사법부의 권위는 충분히 산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에는 민주당 이상수 의원이 한 번 더 발언했습니다. 이 의원은 어떤 문제가 있다면 대법원장을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정감사를 하면서 언제나 대법원장을 부르자, 대법원장을 불러야만이 국감이 활기 있게 될 수 있다, 이런 논리에는 저는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법에 있다고 다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실제로 저는 강한 회의를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법에 나와 있다고 뭐 해야 된다, 저는 이런 논리도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원행정처장이 출석해도 감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대법원장을 출석하라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고 다시 한번 지적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결론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법사위원장을 포함한 참석자 12명 중 9명이 발언했는데, 출석 찬성 4명(함승희, 김용균, 조순형, 최용규), 출석 반대 3명(김학원, 이상수, 신기남), 유보적 의견 2명(최연희, 김기춘)으로 갈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002년 9월 12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함석재 위원장(한나라당)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지는 않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증인이 아닌 신분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해 서두에 인사말을 하기로 했고, 여기에 더해서 법원행정처장과 헌재 사무처장의 답변이 모두 끝난 후 다시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인사를 겸한 답변"을 하기로 "대법원장 그리고 헌법재판소장과도 의견 조율"이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전까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국정감사 서두에만 인사를 하고 퇴장했지만, 이때부터는 국정감사를 마무릴 할 때도 "증인이 아닌 신분"으로 다시 나와서 "인사를 겸한 답변"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22년 동안 이어진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국정감사 출석 방식이 이때 확립된 셈입니다.

 

2002년에는 모두가 합의하고 있던 지점


2002년 당시 국회 법사위원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대법원 국정감사를 둘러싼 최근 논쟁의 핵심 쟁점이 대부분 다뤄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장 등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 출석 요구가 3권 분립 위반에 해당하는지, 국회법 121조가 대법원장에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요구할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재판이 국정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출석 전례가 있는지 등입니다.

당시에도 찬반양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 당시 논쟁에 참여했던 모든 의원들이 합의하고 있던 지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두 가지를 꼽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출석 여부는 동일선상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국회의 국정감사 권한의 본질과 한계를 기준으로 해서 그동안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시키지 않았던 두 기관장, 즉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출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정치적 이슈에 따라서 특정 기관장의 출석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다른 기관장에 대해서는 관행을 그대로 지켜주겠다는 식의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계속 중인 사건의 재판에 대해서는 질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도 모두가 합의하고 있었습니다. 재판 업무 자체에 대해서도 대법원장에게 질의할 수 있다고 주장한 함승희 의원조차도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한 질의가 나온다면 대법원장이 (일단 국정감사장에는 출석한 후) 답변을 거부하면 그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상수 의원은 종결된 사건의 경우에도 구체적 재판의 결론에 대해서 대법원장에게 질문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지금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출석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2002년 논쟁에 비춰봤을 때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앞으로 20년 뒤, 아니 200년 뒤에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발언자들 이름과 함께 기록으로 남아 전해질 것이란 사실, 그리고 이번 국정감사에서 벌어질 사건들이 앞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중대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대법원장과 국회의원들 모두 헌법과 역사를 의식하는 판단을 하기를 바랍니다. [끝.]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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