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반반' 항소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도 아니고 희한하다. 검찰이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주요 사건 피의자에 대해 항소를 포기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라서다. 항소하면 다 하고 안 하면 다 안 하는 게 일반적인데 (물론 매우 높은 확률로 전부 항소한다) 검찰은 '절반만 항소'라는 초식을 택했다. 특이하고, 이례적이다.
대통령 눈치 보고 '꼼수' 택했나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발언은 이번에 검찰이 항소한 '라임 금품 수수 의혹'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동민 전 의원이나 김영춘 전 장관이나 이른바 '친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기 전 의원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지난해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야당에선 대통령 자신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 정치인들 사건에서 '통무죄'가 선고된 지 나흘 만에 나온 대통령 발언인지라 연관 짓는 해석들이 나왔다. 서초동에선 검찰 수뇌부가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관행대로 전부 다 항소하자니 대통령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모양새가 되고, 안 하자니 대통령 눈치만 봤다는 욕을 먹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안 될 사건을 6년 넘게 붙들고 있었다는 무능을 자인하는 꼴도 된다. 그렇게 진퇴양난에 빠진 검찰이 낸 '묘수'라는 게 '절반 항소'라는 어정쩡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김봉현으로 시작해 김봉현으로 끝난 사건

5년 전, 기자도 이 사건을 취재했다. 여의도 금융맨들이 무리하게 펀드를 굴리다가 위기에 처하자 손을 잡은 전주(錢主)가 바로 호남 조폭 출신 김봉현이었다. 김 씨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금융 사기에서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번졌다. 한때나마 수백억 자금을 굴렸으니 성공한 조폭이라 부를 만도 하지만 기자가 추적한 김 씨의 실체는 '잡범'에 가까웠다. 여기저기 돈을 뿌리며 인맥을 과시하고 한계 기업을 사들여 자산을 홀랑 털어먹는 전형적인 21세기형 조폭이었다. 결국 붙잡혀 재판을 받다 보석으로 풀려난 뒤에는 전자발찌를 끊고 잠적했다가 또다시 검거되기도 했다. (김 씨는 지난 2023년 횡령, 사기, 뇌물공여 등 13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0년 형을 확정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김봉현의 행각도 '기행(奇行)'에 가까웠다. 김 씨는 2020년 10월 돌연 옥중 입장문을 통해 '검찰의 짜맞추기식 수사와 회유, 협박에 의해 허위 진술을 했다'며 기 전 의원 등 피고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주장을 번복했다.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또다시 잡혀 재판을 받던 2022년 이후에는 별안간 위 옥중 입장문이 "허위였다"면서 다시 "돈을 준 게 맞다"고 진술했다. 공교롭게도 2020년에는 문재인 정권 때였고 2022년 이후는 윤석열 정권 때였다. 정권에 따라 본인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조변석개하듯 말을 바꾼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 김 씨는 자신의 변호사들에게 "정치인들 로비 관련하여 검사님에게 정보를 드릴 만한 게 있다. 그렇게 해서 사건에 대한 배려를 받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또, 재판 과정에서 김 씨의 한 측근은 "김봉현의 화법 중에 독특한 것이 뭐냐면 괄호 안에 진실과 거짓을 함께 넣고 괄호를 닫고 곱하기를 100 정도 한다. 그러면 진실이 섞였기 때문에 그게 엄청 커지고 거짓말도 사실처럼 들리게 되는 것이다. 김봉현은 피고인 기동민과 친한 사이라는 것은 수시로 과시했지만 돈을 줬다는 말을 들은 것은 녹취 당시가 처음이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런 김봉현의 입에서 시작된 게 바로 '라임 금품 수수 의혹' 사건이었다. 검찰은 김 씨의 수첩도 증거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했을 때 수첩 내용의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건이 불거진 뒤 김 씨가 도피 과정에서 금품 제공 내역 등을 사후에 일괄적으로 기재한 정황이 있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재판부는 금융 거래 내역 등 직접적인 객관적 물증이 없으며, 김 씨의 진술과 수첩의 내용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김 씨의 입만 바라보고 진행한 수사였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판단인 셈이다.
6년 걸린 수사…정치적 의도 없었나
물론 검찰의 항소 자체를 비판할 순 없다. 1심 무죄가 난 사건이 2심에서 유죄로 뒤집히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심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들만 놓고 보면 과연 항소의 기준이 정당했는지 의문이 든다. 검찰은 기 전 의원과 김 전 장관 2명에 대해 항소하면서 "공여자들의 신빙성 있는 공여 진술 및 이에 부합하는 증거가 존재하는 기동민과 김영춘에 대하여는 항소심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보아 항소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판결문을 보면 김봉현의 진술과 수첩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무죄 이유는 4명 모두 거의 같고, 재판 과정에서 증거 능력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별도의 핵심 증거도 검찰은 제시하지 못했다.

발표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검찰이 항소하려면 판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장을 제출해야 한다. 1심 선고가 9월 26일이었으니 항소 시한은 10월 3일까지였다. 공교롭게도 개천절 휴일이었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검찰은 이미 일찌감치 '절반 항소'라는 결론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 연휴 전에 항소 사실을 알릴 만도 한데, 검찰은 추석 연휴 내내 시간을 최대한 끌다 마지막 날인 10월 10일, 그것도 언론의 관심이 가장 덜한 저녁 6시에 기습적으로 항소 사실을 공지했다. 과거 검찰이나 정부가 불리한 사실을 알릴 때 많이 쓰던 방식이다. 검찰의 이번 항소가 '정치적 항소'가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드는 이유다.
조직 논리 앞세운 정치적 판단이 검찰 망쳐왔다
검찰이 78년 만에 검찰청 폐지라는 운명을 맞게 된 데는 과거 그들만의 조직 논리를 앞세운 정치적 판단을 남용해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의 눈에는 이번 '절반 항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만약 2심도 무죄라면 그때 가서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