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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오라는 말도 못해요"…최악 가뭄이 바꾼 추석 풍경

"애들 오라는 말도 못해요"…최악 가뭄이 바꾼 추석 풍경
▲  17일 강원 강릉지역에 폭우가 쏟아졌으나 가뭄으로 맨바닥을 드러낸 오봉저수지에는 아직 가는 물줄기만 유입되고 있다. 

"아무래도 추석 때 애들에게 집에 오지 말라고 해야겠어요. 아니면 차례만 지내고 바로 올라가게 하던지."

최악 가뭄이 계속되면서 오전, 오후 각 3시간씩만 수돗물을 공급받는 강원 강릉시 교동의 한 아파트 주민 오 모(62)씨는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에게 오늘(18일) 이런 뜻을 전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서울 등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분가해 사는 자녀들의 추석 연휴 귀성을 앞두고 기다림에 들떠 있어야 할 강릉의 부모들이 요즘 극심한 가뭄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비가 좀 왔다는데 그러면 이제 수돗물이 잘 나오냐?"는 자녀들의 연락이 이어지고 있지만 다가올 추석 연휴까지 제한급수가 해제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릉시는 지난 6일부터 저수조 100t 이상 보유한 아파트 113곳을 비롯한 123곳을 대상으로 제한급수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각 아파트는 오전 6∼9시, 오후 6∼9시 등 각 3시간씩만 수돗물을 공급합니다.

이후 지난 13일에 이어 17일부터 이틀간 비가 내렸지만, 강릉지역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상수원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아직 23%를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제한급수를 해제할 만큼 오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는 저수율이 25% 이하로 떨어진 지난 8월 20일부터 각 가정의 수도 계량기 50%를 잠그는 제한급수를 첫 시행한 바 있습니다.

오 씨는 "추석 연휴 때까지 저수지 물이 많이 차 하루 종일 물이 나오면 좋겠지만 물이 지금처럼 제한적으로 공급되면 집에 와서 편히 쉬다 가라고 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제한급수가 이어지면 추석 차례만 지내고 바로 올라가라고 할 계획입니다.

오 씨의 딸(32)은 통화에서 "추석 연휴 내내 가족과 함께 모처럼 집에서 편히 쉬다 상경하고 싶지만 물이 나오지 않으면 있는 게 오히려 부모님에게 불편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 갓난아이 손주가 있는 아파트 주민 김 모(67)씨도 아들에게 오라고 해야 할지, 오지 말라고 해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예쁜 손주가 눈에 밟히지만 아무래도 따뜻한 물로 자주 씻겨야 하는 갓난아이 특성상 오전, 오후 각 3시간씩 제한급수하는 아파트에서는 연휴 기간 내내 함께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앞으로 비가 더 많이 와서 추석 연휴 한시적으로라도 제한급수가 해제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며 "수돗물 공급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뒤 아들과 상의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예 자녀의 집으로 역귀성을 계획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 다른 김 모(65)씨는 물 걱정이 없는 춘천의 아들 집으로 가서 추석 연휴를 함께 보낼 계획입니다.

그는 "차례 대신 미리 성묘한 뒤 추석 연휴에는 아들 집에서 손주들과 함께 가뭄 스트레스 없이 보내고 돌아올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재난사태가 선포된 강릉의 최악 가뭄 상황이 추석 귀성 풍경까지 바꿔 놓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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