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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성지' 종로·제기동도 옛말…서울 어르신 행선지 보니

'노인의 성지' 종로·제기동도 옛말…서울 어르신 행선지 보니
▲ 종로 탑골공원에 오락 행위 제한했다.

서울 종로구청과 종로경찰서는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국가유산 사적인 탑골공원을 보호하기 위해 바둑, 장기 등 오락 행위를 제한했습니다.

특히 장기판 자진 철거를 유도하면서 무질서한 행위가 크게 줄고 공원 환경이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노인들이 갈 곳을 잃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탑골공원 인근의 종로3가역을 중심으로 제기동역과 청량리역 등 서울 지하철 1호선 일대가 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 지하철의 무임 승하차 데이터를 토대로 노인들이 가고 있는 곳을 확인해 봤습니다.

올해 7월을 기준으로 서울 지하철 무임교통카드 보유자 중 84%는 만 65세 이상 노인이고, 나머지 16%는 장애인입니다.

이를 통해 대략적인 노인들의 행선지를 유추해 보면 무임하차 장소 중 종로3가·제기동·청량리 등 전통적인 '노인의 성지'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고속터미널이나 사당, 잠실 같은 번화가로 향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임하차역 1∼3위는 오랫동안 종로3가, 청량리, 제기동역이었습니다.

그러다 2021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서울 지하철 무임 승하차 인원을 분석한 결과, 전체 하차역 가운데 이들 세 역의 비중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2018년에 서울시가 공개한 무임교통카드 이용 현황에 따르면 당시 무임승차자의 하차역 1위는 종로3가역으로, 1.7%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어 청량리역(1.5%), 제기동역(1.2%)이 뒤를 이었습니다.

종로3가역은 2015년 이후부터 '부동의 1위'입니다.

그러나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무임하차역 중 종로3가역 비중이 2.44%였지만 2021년에는 1.99%로 줄어들었고 지난해에는 다시 1.82%로 감소했습니다.

'노인의 강남'이라 불리는 제기동역과 청량리역은 감소세가 더 눈에 띕니다.

제기동역의 경우 전체 하차 인원 중 무임교통카드 이용자가 절반에 달할 정도로 노인 비중이 높은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무임하차역 순위는 2015년 3위에서 지난해에는 5위로 떨어졌습니다.

제기동역과 청량리역 대신 상위권에 오른 역은 고속터미널, 사당, 잠실역입니다.

올해 1∼8월에도 지난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달 무임하차역 1위는 종로3가로 1.65%로 1위를 기록했고, 이어 고속터미널(1.56%), 잠실(1.21%)이 2, 3위를 기록했습니다.

무임하차 인원으로 보면 종로3가에 42만 2천여 명이 내렸고 고속터미널에 40만 명이 내렸습니다.

잠실역에서 하차한 무임교통카드 이용자는 30만 8천 명이었습니다.

무임하차역 중 종로3가역 비중이 줄어든 데는 우선 서울시의 꾸준한 탑골공원 정비 사업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올해 시행된 오락 금지행위 외에도 2000년대부터 탑골공원은 여러 차례 탈바꿈을 시도했습니다.

한국조경학회의 '탑골공원의 장소 정체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01년 처음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노인들의 행동이 제한됐습니다.

이 사업으로 공원에 녹지공간이 확대됐고 여유 공간은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2010년대에는 문화재 조사 등으로 공원 한쪽을 막기도 했고 종로구청은 2022년 탑골공원 개선 사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습니다.

2010년대 '노인의 강남'으로 떠올랐던 제기동·청량리 일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발길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일대에서 노인들이 많이 찾았던 콜라텍들이 불황을 겪고 있는 점도 제기동·청량리 지역의 인기가 시들해졌음을 방증합니다.

제기동의 한 콜라텍 직원은 "2018년 전성기 때는 하루에 1천 명씩 왔지만, 요즘은 150명 정도 온다"며 "60∼70대 '젊은 고객'이 유입이 돼야 하는데 손님이 없다. 지금 단골은 80대와 90대가 대부분이라 코로나19 이후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청량리에 있는 대형 콜라텍 사장도 "3년째 운영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청량리에 노인이 많다고 하는데 유흥을 즐기러 오는 경우는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콜라텍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오후 4시부터 무료입장을 내걸었습니다.

제기동과 청량리역에서 내리는 노인들이 줄어들었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최근 몇 년간 무임교통카드 이용자들이 내리는 곳 중에서 고속터미널·사당·잠실과 같은 번화가 비중이 증가했습니다.

고속터미널역은 2015년 전체 무임하차역 중 1.34%를 차지했지만, 꾸준히 비중이 늘면서 지난해에는 1.53%를 기록했고 전체 순위 2위에 올랐습니다.

또 제기동역과 청량리역 순위가 내려간 대신 사당역이 3위로 올랐습니다.

사당역은 유임하차 순위보다 무임하차 순위가 높은 곳으로, 노인들 사이에서도 '약속의 장소'로 통합니다.

지난 11일 오후 사당역 인근 대형 쇼핑몰에는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휴게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등산모임 친구를 만나러 사당에 온 임 모(82) 씨도 2년 전부터 종로3가역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임 씨는 "나도 노인이지만 노인들 많은 곳이 싫다. 사당, 선릉역처럼 젊은 사람들 다니는 번화가에 있고 싶다"며 "사당역은 교통의 요지라 친구들 만나기도 편하고 거리가 깨끗해서 선호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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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빡!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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