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주지역 대표 만감류 가운데 하나인 '레드향'에서 열과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가 제주 농업현장 곳곳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JIBS 김동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귀포시 남원읍의 한 시설 하우스.
나무에 매달린 레드향이 누렇게 변해 썩어버렸습니다.
열매마다 무언가에 베인 듯 쪼개졌습니다.
[이건 어제쯤 열과 된 것으로….]
하우스 내부 온도를 낮추기 위해 올해 처음 차광 페인트까지 칠했지만, 열과 피해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은 극심한 피해에 농민은 할 말을 잊었습니다.
[오경호/레드향 농가 : 수확하기도 전에 이런 실망감이 오다 보니까, 농사짓는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이런 열과 피해는 제주 전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도내 레드향 재배면적의 40%가량에서 피해를 입었는데, 레드향 열과의 주요 원인인 고온과 열대야가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다른 만감류에서도 열과 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오성담/제주만감류연합회장 : 이상기온으로 3~4년 전부터 레드향만 열과 되는 게 아니라, 한라봉, 황금향, 천혜향에도 열과율이 상당히 높아졌어요. 이게 농가에서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요.]
열과 피해가 심해지자 최근 상당수 레드향 농가가 천혜향으로 작목을 전환하고 있는 상황.
일부 품목에 생산이 집중되면 가격 하락 등 연쇄적으로 파장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급변하는 기후변화에 도내 농업 현장 곳곳이 타격을 받으면서 농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메밀 최대 주산지인 제주에서는 기후 변화에 메밀 이삭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피해가 매년 심화되고 있고, 지난해에는 제주 마늘 재배 면적의 60%가량에서 이른바 벌마늘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3년간 제주에서 농업 관련 재난 지원금으로 360억 원이 투입됐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피해는 더 커지고, 곧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얘기입니다.
쪼개진 레드향은 단순한 피해가 아닌, 기후변화의 매서운 칼날이 어디까지 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고의 단면입니다.
(영상취재 : 윤인수 JIBS)
기후 변화가 남긴 흉터, '쪼개진 레드향'의 경고
입력 2025.08.27 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