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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스포츠 만능 원더우먼 자하리아스 [스프]

[별별스포츠+]
자하리아스올림픽 여자 육상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딴 선수가 있습니다. 그 선수는 몇 년 뒤 골프에 입문해 세계 여자 골프를 평정했습니다. 그리고 야구 농구 등 무려 10개가 넘는 종목에서 엄청난 재능을 뽐냈습니다. 20세기 스포츠 사상 최고의 여자 선수로 꼽히는, 신이 내린 스포츠 만능 원더우먼 자하리아스이었습니다.


공부만 빼고 다 잘했던 자하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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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리아스는 1911년 6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났는데요, 1980년대에 8년간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나이가 같습니다. 자하리아스의 부모는 노르웨이 출신의 이민자였습니다. 어릴 때 이름은 밀드레드 엘라 디드릭슨. 디드릭슨이 성입니다. 야구에 소질이 있었는데요, 한 경기에서 5개의 홈런을 치자 당시 최고 스타였던 베이브 루스의 이름을 따 '베이브 디드릭슨'으로 불렸습니다. 1934년 3월에는 메이저 리그 스프링 캠프 기간에 열린 시범경기 3경기에 나와 총 4이닝을 투구했다고 할 만큼 투타 모두 발군의 실력을 갖췄습니다. 27살 때인 1938년 프로 레슬링 선수인 조지 자하리아스와 결혼하면서 이때부터 남편의 성을 따서 '베이브 자하리아스'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자하리아스는 스포츠를 위해 태어난 여성이었습니다. 천부적인 운동 신경에 강인한 체력까지 갖춰 엄청난 재능을 뽐냈습니다. 공부는 그렇게 잘하지 못해 고등학교 때 1년 유급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구, 농구를 비롯해 테니스, 복싱, 수영, 다이빙, 볼링, 롤러스케이팅 등 거의 모든 종목에서 빼어난 실력을 뽐냈습니다. 안 해본 운동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 인형 놀이요"라고 말할 정도로 운동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20살이던 1931년 야구공을 90.2m나 던지는 괴력을 발휘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여성이 던진 가장 긴 거리였습니다. 의외로 체격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키 170cm에 체중은 57kg.

그런데 스포츠만 잘한 게 아니었습니다. 바느질에도 뛰어나 골프 복장을 포함하여 많은 옷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1931년 댈러스에서 열린 재봉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고요, 노래도 잘 불러 가수로도 데뷔했습니다. 하모니카 연주자이기도 했던 자하리아스는 여러 곡이 담긴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I Felt a Little Teardrop" 같은 히트곡을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1932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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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1살이던 자하리아스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합니다. LA 올림픽 당시에는 한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 최대 세 종목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요, 그는 80m 허들, 창던지기, 높이뛰기의 세 종목에 출전합니다. 자하리아스는 여자 창던지기에서 43m 69cm를 던지며 올림픽 신기록과 함께 자신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80m 허들 결선에서는 멋진 질주를 보여주며 또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11초7의 세계 신기록까지 작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목, 높이뛰기에 참가한 디드릭슨은 또 한 번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세계 기록과 타이인 1m 65.7cm를 뛰어넘으며 은메달을 받았는데요, 지금까지도 남녀 통틀어 올림픽 육상에서 달리기와 던지기, 그리고 도약 경기에서 모두 메달을 따낸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골프 입문하자마자 여자 골프 평정
자하리아스는 거의 모든 종목을 다 해봤습니다. 이 가운데 그를 사로잡은 것은 단연 골프였습니다. LA 올림픽 기간에 처음 골프 배웠다고 합니다. 휴식기에 스포츠 기자들과 라운드를 하면서 골프를 알게 됐는데 첫 라운드에서 91타를 쳤고 드라이브샷 거리는 약 230m나 됐다고 합니다. 이후 목숨이 걸린 것처럼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1956년 사망 기사에 "매일 14시간에 걸쳐 1,000개의 공을 쳤고 손이 아파서 붕대를 감아야 할 상황까지 골프를 쳤다"고 썼을 정도입니다. '땀은 결코 배반을 하지 않는다'라는 격언이 있는데요, 그는 첫 대회인 텍사스 아마추어대회부터 우승하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마추어로 17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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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47년 8월에는 브리티시 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최고의 화제를 뿌렸습니다. 1893년, 이 대회가 창설된 이래 미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자하리아스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엄청난 파워를 선보였는데 약 493m의 파 5홀에서 드라이버샷에 이어 4번 아이언샷으로 투온에 성공했다고 하는데요, 그때 골프채와 골프공은 지금보다 최소 10% 이상 거리가 덜 나갑니다. 그런데도 현재 남자 프로 선수들에 버금가는 장타력을 거의 80년 전에 여자 선수가 선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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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 데뷔해서도 승승장구하며 믿기 힘든 위업을 달성합니다. US오픈 3회 우승을 포함해 메이저대회 10승을 차지하는 등 모두 41번이나 정상에 올랐습니다. 1950년이 최전성기인데요, 자하리아스는 당시 여자 메이저 3대 대회인 US 오픈, 타이틀홀더 챔피언십, 여자 웨스턴 오픈을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고, 그해 상금 리스트에서도 선두를 달리며 여자 골프계를 평정했습니다. 모든 대회를 합쳐 82회 우승이라는 불멸의 신화를 쌓으며 육상 무대에서와 똑같이 골프 코스에서도 경이로운 능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암 수술을 받고도 최고 권위의 US오픈을 제패했다는 것입니다. '철의 여인' 자하리아스는 1953년 봄 대장암 수술을 받고 15개월 만에 컴백을 했는데요, 1954년 대회에서 베티 힉스를 12타차로 제치고 이 대회 세 번째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43세. 대회 사상 최고령 우승자이었습니다. 우승 직후 그는 "다시는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석에 누워 하느님께 다시 골프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우승할 수 있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자하리아스는 다음 해 불행하게도 암이 재발해 타이틀 방어전에 나오지 못했고 45살이던 1956년 아주 이른 나이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하리아스는 여자 프로골프 협회, 즉 우리가 아는 LPGA의 창설에도 기여한 여자 프로골프의 최고 전설임이 틀림없습니다.


사상 최초로 남자와 맞대결해 컷 통과
여자 골프계에서는 더 이상 상대가 없었던 자하리아스는 남자 골프에 문을 두드립니다. 1938년에 처음 도전했지만 81타와 84타를 쳐 3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캘리포니아의 리비에라 골프장에서 열린 PGA 투어 로스앤젤레스 오픈에서 새 역사가 창조됐습니다. 남자 프로대회에 유일한 여성인 자하리아스가 등장하자 갤러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취재진들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76타와 81타를 쳐 3회전에 진출했습니다. 사상 최초로 여자가 남자 대회에서 컷을 통과한 것입니다. 3라운드에서는 79타로 부진해 4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자하리아스는 이후에 열린 피닉스 오픈에서는 4라운드까지 진출해 합계 33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당시 자하리아스는 감나무로 만든 드라이버로 평균 270야드를 날렸다고 하는데 요즘 장비(티타늄 드라이버)로 치면 300야드, 즉 약 270m가 넘는 엄청난 장타를 친 것이지요. 남자 선수에 전혀 뒤지지 않은 거리였는데요, 참고로 자하리아스가 드라이버샷을 가장 멀리 보낸 기록은 299m로 이는 당시까지 여자 선수로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폭발적인 장타로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린 그는 당시의 여성골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윌슨사와 10만 달러의 광고 계약을 최초로 맺기도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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