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자료 요구에 취소된 사조위 발표…남은 건 혼란뿐
지난달 초, 무안공항 참사를 조사 중인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참사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언론을 상대로 한 공개 브리핑 일정을 예고했다. 엔진 정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단 건데, 그간 침묵을 지켜오던 사조위가 마련한 첫 기자회견 자리였던 만큼 일찍부터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브리핑 당일, 예정됐던 브리핑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그 직전 비공개로 진행된 유족 상대 설명회에서 강한 반발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① 사조위가 단정적 표현을 써가며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근거 자료는 공개할 수 없단 입장을 보이고 있고 ② 복합적인 원인이 맞물려 발생한 이번 참사를 조종사 과실이란 단일 요인이 부각되게끔 선별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취지였다.
결국, 사조위는 근거 자료 제시 없이 진행되는 조사 결과 발표는 받아들일 수 없단 유족들 항의에 공개 브리핑을 취소했다. 그러나 발표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사조위의 대응은 혼란만 키웠고 되레 의혹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이날을 기점으로 '사조위의 잠정 결론', '중간 결과는 조종사 과실'이란 제목의 기사들이 잇따랐고 조종사들이 '패닉 상태였다'는 식의 자극적인 추정 보도도 여럿 등장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각종 가설과 억측,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항공학과 교수는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납득되지 않는 건 방식과 시점"이라며 "굉장히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임에도 데이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고, 그 결과 설왕설래만 이어졌다. 우왕좌왕한 대응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채연석 전 사조위원장도 "매우 이례적인 조치"라며 "조사 결과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부 내용을 외부에 공유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회의록 뜯어보니…국토부는 왜 사조위를 놓지 못하나

사실 유족들의 반발, 그리고 이번 논란은 근본적으로 사조위 독립성에 대한 구조적 불신에서 촉발됐다고 보인다. 현재 사조위는 국토부 산하 조직으로, 독립된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다. 조사 기구가 조사 대상 부처에 인적, 물적 자원을 의존해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특히 이번 참사의 경우 국토부가 콘크리트 둔덕 설치, 조류 충돌 예방 등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핵심 당사자인 만큼, 사조위가 사실상의 상급 기관인 국토부 책임을 상대적으로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낳기 쉬운 구조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참사 이후 "정책 집행 책임자가 사고 조사를 수행하는 구조적 이해충돌이 발생한다"며 사조위 독립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내는 등 각계에서 '셀프 조사'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국토부는 귀를 닫고 있는 듯하다. 국회 여객기참사특별위원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내막을 살펴봤다.
지난 몇 달 간의 국회 여객기참사특위 소위원회 속기록을 전부 찾아봤다. 속기록에 따르면 이수진 소위원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들은 비공개로 진행된 논의 과정에서 줄곧 사조위 독립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상 사고조사기관은 철저히 독립돼 있어야 하며 이를 평가하는 기준 지표도 마련돼 있는데, 현재 우리 사조위는 이 기준에 미달하고 있어, 최종 조사 결과가 나와도 국제 사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줄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수진 (여객기참사특위 소위원장)
"만약에 사조위 지금 구조대로 이렇게 갔을 때 별 문제가 없을지. 그런데 사실 그것에 대해서는 즉답하시기가 어렵기 때문에 제가 공청회 때도 ICAO라든지 한번 점검해 보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아마도 실무적으로는 거기에 질문하는 것조차도 우려를 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십분 모르는 바는 아닌데 불확실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조위 관련해서.
(...) 사조위 법 개정을 위해서 국토위에서 법안을 몇 개 내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20년 간 발의만 됐고 논의가 안 됐어요, 그래서 관련해서 정부의 의지라든지 국토위가 곧 입법을 추진할 것인지 이것에 대해서 저희가 좀 확실하게 들을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명확하지 않으면 저희가 특별법에 사조위 구성과 관련해서 담고 갈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국토부가 책임 있게 명확하게 얘기해 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백원국 당시 국토부 2차관
"(...) 예산과 인력 부분은 약간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토부 예산으로 일단 항공사 내의 예산에서 사조위 예산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산편성의 독립성 또 인력도 국토부에서 사조위로 넘기고 사조위에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완전한 독립이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그런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방안을 지금 강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에게 좀, 정부에 맡겨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위원 2명을 국회에서 요청을 해서 반영하도록 하는 것은 지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존에 운영해 왔던 체계가 있는데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 위원을 이렇게 추가하고 하는 부분들이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그런 우려가 있습니다."
이수진 (여객기참사특위 소위원장)
"어떤 오해인 거지요? 왜냐하면 여야가 합의해서 위원을 추천하는 건데..."
<국회 여객기참사특위 소위원회 속기록 발췌>
이어 특위는 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조위 독립에 대한 국토부의 의지와 입장을 명확하게 얘기해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역대 국회에서 관련 법 추진이 번번이 좌초돼왔단 점을 꼬집었다. 국토부는 그간 관련 법 논의에 각종 검토 의견을 달며 개정안을 사실상 반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국토부가 "예산과 인력 부분은 독립성에 약간 미흡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정부에 맡겨주시길 바란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믿어 달라", "알아서 하겠다", "사고 조사는 공정하게 잘 되고 있다"는 국토부 발언에 특위 위원들은 "당연히 믿고 싶지만, 믿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수진 (여객기참사특위 소위원장)
"그러니까 행정적인 절차들을 말씀하시는데 어쨌든 예산이든 인사든 사조위의 독립성을, 사조위 구성과 관련해 국토위에서 준비하고 있는 법안을 통해서 그것을 다 보완하시겠다는 의미의 말씀이시고, 그렇게 되면 ICAO의 기준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후 1년 반 뒤에 이 사건 조사가 어떤 결론이 나도 이 결론에 대해서 다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그렇게 보시는 건가요?"
백원국 당시 국토부 2차관
"예, 그렇습니다. 지금 사조위가 아주 객관적이고, 저희가 전혀 조사에 관여할 수도 없고요.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지금 조사 중에 있다는 말씀 드립니다."
이수진 (여객기참사특위 소위원장)
"그러니까 그것은 저희가 계속 들어 봤기 때문에 그 말씀은 당연히 믿고 싶고, 그리고 그것을 믿어야 될 사람들은 프랑스나 미국이나 이 사고와 관련해서, 참사와 관련해서 보험사도 마찬가지고 지불해야 되고 책임을 져야 되는 영역에서 인정을 해야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쪽에서 인정할 만큼 우리가 준비를 하고 곧 국토위에서 통과시킬 것이다, 국토위에 올려서 통과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특위에 분명하게 보고가 돼야 됩니다."
<국회 여객기참사특위 소위원회 속기록 발췌>
계속되는 국토부의 고집에 특위는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수준의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걸 국토부가 특위에 분명히 보고해야 할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이 때문에 국회와 업계에선 국토부가 참사 이후 내놓겠다고 공언했던 항공안전혁신 방안에 사조위 독립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는데, 국토부가 지난 4월 발표한 대책에 이 내용은 빠져있었다.
NTSB 전문가들이 바라본 무안참사…인터뷰 전문 공개

항공 사고조사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상적 모델은 미국의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NTSB는 미국 내 항공 사고조사를 전담하며, 그 전문성과 객관성을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NTSB는 원래 연방항공청(FAA) 산하 기관이었지만, 사고조사 과정에서 독립성 문제를 겪은 끝에 1975년 독립 기관으로 분리됐다. 참고로 NTSB는 이번 무안공항 참사 조사에도 일부 참여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SBS는 NTSB 전 위원장과 전직 조사관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미국에서는 사고 조사가 어떤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지, 또 조사 기관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확보해왔는지 들어봤다.
이들의 진단과 제언이 단순한 비교나 비판을 넘어, 우리의 항공 사고조사 시스템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방송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인터뷰 전문을 <취재파일>을 통해 내일부터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