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부분이 보이나요? 여기까지 물이 차 있다는 건 수위가 약 56m 정도라는 겁니다. 암각화가 잠겨있는 거죠."
1일 오전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 일원에서 이윤균 울산광역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대곡천 너머에 있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하 반구대 암각화)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에는 녹조가 가득한 물이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푸른 빛이었을 수면은 마치 물감을 푼 듯 옅은 녹색을 띠었습니다.
스멀스멀 불쾌한 냄새가 올라오자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바위 면을 살펴봤지만 반구대 암각화를 상징하는 여러 마리의 고래 그림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해설사는 "현재 수위가 하루 30㎝ 정도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이런 추세라면 암각화가 완전히 드러나기까지 보름 정도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올해 한국의 17번째 세계유산이 된 '반구천의 암각화' 중 반구대 암각화의 상황입니다.
오래전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바위 위에 남긴 흔적인 '반구천의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정식 명칭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이뤄져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약 6천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지켜야 할 '보물'로 인정받은 것도 잠시, 대곡천변에 자리 잡은 반구대 암각화는 벌써 2주째 물에 잠겨있습니다.
등재 일주일 만인 지난달 19일 울산 일대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물에 잠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한낮 온도가 30도를 넘는 더위 속에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온 관람객들은 '아직 잠겨있네',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라고 말하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약 4.5㎞ 떨어진 상류 지점에 있는 사연댐 수위가 53m가 되면 반구대 암각화는 부분적으로 침수가 시작돼 57m가 넘으면 완전히 잠깁니다.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자연 월류형 댐입니다.
이번처럼 많은 비가 내려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암각화가 침수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1970년대 암각화가 발견된 이후 계속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근에는 너비 15m, 높이 7.3m의 수문 3개를 설치해 댐 수위를 52m 이하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안이 현재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사는 2030년이 되어야 마무리될 전망입니다.
그때까지는 암각화 침수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 탓에 국가유산청이 이날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연 '반구천의 암각화, 울산의 소리를 듣다' 타운홀 미팅(주민 간담회)에서는 암각화 보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김종렬 반구대암각화시민모임 상임대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1960년 준공한 사연댐은 (인근) 대곡댐이 들어선 2005년 전후의 상황을 따져 봐야 한다"며 "평상시 사연댐의 물은 대곡댐 물이라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연댐이 하루 18만t(톤)의 물을 공급한다고 알려졌지만, 여기에는 대곡댐 물이 포함돼 있다. 현재 댐의 역할과 기능, 정확한 방류량 등 사연댐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주민은 암각화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사연댐을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고민해달라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관람객이 많이 오지만, 실제로 머무르는 시간은 길어야 1시간 내외"라고 지적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관람객들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기 어렵습니다.
관람로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바위그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천전리 암각화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또 다른 주민은 "반구대 암각화 걱정만 하지만, 천전리 암각화 역시 풍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며 관계 당국에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종희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국장은 "두 국보 암각화는 (야외에 노출된) 석조 유산"이라며 "풍화 현상 등 혹시 모를 훼손 가능성에 대비해 유의해서 모니터링(관찰)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주민들의 물 문제가 걸렸는데도 이번 간담회에 주무 부처 관계자가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한 주민은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왜 안 왔냐, 협의했는데도 안 온 것이냐"며 꼬집었고, 관할 기관이 오지 않은 '반쪽짜리 간담회'라며 아쉽다는 의견이 이어졌습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싼) 문제는 풀기 어려운 숙제"라면서 "특히 식수 문제, 물 문제와 관련해서는 관계기관, 전문가를 모시고 이런 자리를 다시 만들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환경부 등) 관계기관과 논의한 뒤 국무총리실, 대통령실 등에 의견을 제안하겠다"고 했습니다.
허 청장은 울산시가 건립을 추진 중인 반구천 세계암각화센터와 관련해서는 "단순히 센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전 세계 암각화 연구·교육 등을 집대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습니다.
2주째 물속서 시름 앓는 반구대 암각화…"특단의 대책 필요"
입력 2025.08.0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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