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인권유린 사건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대상 인권유린 사건이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러 한국으로 온 31살 이주노동자의 부푼 꿈은 수개월간 이어진 동료 노동자들의 괴롭힘으로 서서히 무너져갔습니다.
스리랑카 국적의 피해 이주노동자는 수도 콜롬보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누이의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 역할을 자처한 그는 2021년 초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서툴던 한국어는 2년간 준비한 끝에 어느 정도 능숙해졌고, 고용허가제 선발시험을 통과해 2024년 12월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번 많지 않은 급여를 고향으로 부치며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의 미래도 꿈꿨습니다.
시키는 일을 가리지 않고 벽돌을 쌓고 옮기는 고된 노동을 묵묵히 견딘 것도 모두 이역만리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조롱과 무시가 뒤섞인 '짐짝 취급'이었습니다.
한국인 동료 노동자는 업무 처리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이주노동자를 나무랐고, 그 책임을 대신 지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그를 지게차 화물에 매달아 조롱했습니다.
5개월간 이어진 피해자의 사례는 결국 타 지역의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에 어렵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올해 초에도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사례가 전남 영암군 돼지 농장에서 발생했습니다.
4천 마리 돼지의 새끼를 돌보던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는 농장 관계자들로부터 장기간 폭언과 폭행을 당했고, 결국 농장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이주노동자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지난해 12월 6일 입국했으며, 입국한 지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아 생을 스스로 마감했습니다.
인권침해 사례가 잇따라도 이주노동자들이 도움을 요청한 곳은 고용노동부나 전남도, 경찰 같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었습니다.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이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이들에게 손을 내민 곳은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지역 시민단체가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무관심 분위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침해를 엄단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게시글 이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확 달라졌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사건이 불거진 뒤 해당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시작했고, 이주노동자 지원에 소극적이던 전남도도 취업 알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가해자를 입건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나주 벽돌공장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주노동자라는 신분은 출생이나 국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1960년대 빈곤이 일상이던 시절 우리나라 청년들도 독일로 건너가 광부·간호사로 외화를 벌었고, 1970년대 중동 건설 현장에서는 수많은 한국인 노동자가 땀 흘려 일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산업 일꾼들 역시,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느 이주노동자와 다르지 않던 이주노동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