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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존재들이 신호를 발신하다…'피터팬'의 잔혹 버전 '렛미인'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배우 안승균, 연출가 이지영
연극 렛미인 (사진 : 신시컴퍼니)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오스카의 만남을 그린 연극 '렛미인'은 단순한 판타지도, 공포물도 아닙니다. 외로운 두 사람이 나와 다른 존재를 배척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서로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연극적 상상력을 동원한 아름다운 무대에서 보여줍니다.
연출가 존 티파니는 '렛미인'을 '피터팬'과 비교하며, 영원한 존재가 짊어진 시간과 이별의 고통까지 이야기합니다. '렛미인' 초연에 이어 9년 만에 다시 출연한 오스카 역 배우 안승균 씨와 협력 연출 이지영 씨가 들려주는 '렛미인'의 깊은 이야기, 함께 즐겨보세요.

김수현 기자 : 제목이 '렛미인'. '렛미인' 그랬더니 옛날에

안승균 배우 : 성형.

김수현 기자 : 아시죠? 그래서 '그걸 보러 간다고?' 이러던 사람도 있었어요. '그게 연극으로 만들어졌어?' (웃음)

안승균 배우 : 10년 전에도 저희 엄마가 "나 '렛미인' 붙었어" (이랬더니) "네가 거길 왜 나가?" (웃음) 그 프로그램이 너무 한국에서 유명해서.

이지영 연출가 : 제목이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성형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원래 제목은 '렛미인'이 아니라 'Let The Right One In'이라면서요.

이지영 연출가 : 소설의 원래 제목이고 스웨덴 영화도 그 제목인데 미국 영화로 바뀌면서 '렛미인'으로 바뀌었고, 저희가 '렛미인'을 쓰게 됐죠. 말씀하신 것처럼 친숙하기도 하고, 'Let The Right One In'이 직역해도 한국 사람들한테는 의미가 딱 오지 않는 뜻일 것 같아서.

'Let The Right One In'이 직역을 하자면 '맞는, 올바른 사람을 받아들여라' 이런 의미. 거기서 '렛미인'이라고 정했을 때는 그런 것도 있어요. 뱀파이어가 저희한테는 친숙하지 않지만 서구권에서는 되게 친숙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뱀파이어가 어디 들어가려면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규칙이 있어서 모두가 아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걸 뜻하는 것 같기도 해요. 나를 들여보내 달라는 의미. 중의적으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갈망이 담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보다 보면 공연 끝쯤에, 일라이가 떠날 때쯤 오스카한테 '빛을 들여보내라' '나는 떠나지만 너의 삶에 빛을 들여보내라'. 영어로는 동음이의어처럼 'Let The Right One In'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나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망, 어떤 존재에게 빛을 가득 채우고 싶은 욕망.

안승균 배우 : 진짜 제목을 잘 지은 것 같아요. 작품 자체인 것 같아요. 모든 인물들이 다 다름과 싸우거든요. 다 외로운 이유인 것 같고, 오스카만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인물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일라이랑 사랑할 수 있지 않나? "들어가도 돼"라는 대사가 1막 엔딩에 나오고 2막 중간에 나오고 마지막 엔딩에 또 나오거든요. 받아들이는 과정 같기도 하고. 제가 엄청 좋아하는 대사거든요. "빛을 들여보내라"


이지영 연출가 : 이 제목이 대사에 조금씩 녹아 있는데 특히 "나 아직도 냄새나?" "상관없어 네 냄새야 그냥. 난 그냥 나야", 일라이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알았어, 그게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든가, 일라이가 마지막에 "내가 너한테 좋은 존재인지 모르겠어"라고 하니까 오스카가 "나도 모르겠어". 저는 그 대사가 정말 가슴을 치거든요. '나한테 필요하고 좋은 존재여야만 내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가?' 이런 물음이 저한테 생겼어요. 근데 오스카는 '나도 모르겠어. 네가 좋은지 안 좋은지. 그러니까 필요한지, 올바르고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냥 난 네가 좋아' 이런 게 작품에 녹아 있어서 그런 거 보시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오스카가 마지막에 하칸처럼 소년 옷을 안 입고 어른의 옷을 입는 거는 성장했다는 건가? 아니면 하칸같은 존재가 되는?

김수현 기자 :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여러 가지로. 결국 하칸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칸과 일라이의 관계, 일라이와 오스카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안승균 배우 :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고 제가 오스카 입장에선 하칸처럼 안 될 자신이 있는. (웃음) 사실 저는 하칸이 제일 안타까워요. 하칸도 자기의 나이 듦으로써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잖아요. 사실 일라이가 하칸이 싫은 게 아니고. 이러니까 지치는 거 아닌가, 계속 집요하게 질투하고 이런 마음들이. 근데 오스카는 순수하게 나를 받아들여주는 느낌이니까 버림을 받는? 근데 사실 일라이도 너무 슬프겠죠. 저는 일라이가 말도 안 되게 외롭고 영생은 최고의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계속 이별을 봐요? 죽음을 계속 봐야 하고. 되게 쓸쓸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소통을 잘 못한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고 다친 것 같아요. 자기 애를 지키려고. 왜냐하면 일라이도 인간이었으니까. 하칸과 오스카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랑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이별해야 되잖아요, 일라이가. 오스카의 마음인 거죠. '너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야'. 하칸도 그랬겠죠. 그리고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어요. 뭐가 해피인지 모르겠지만 일라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김수현 기자 : 존 티파니 연출가 인터뷰 보니까 피터팬에 빗대서 얘기를 했더라고요.

이지영 연출가 : 맞아요. 이 이야기가 '피터팬의 또 다른 환생이다' 이렇게 느꼈대요. 일라이가 피터팬이고 웬디는 하칸이고 웬디의 딸인 제인은 오스카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피터팬이 시간이 지나서 웬디를 찾아오고 웬디는 이미 성인이 됐는데, 웬디가 불을 켜려고 하니까 피터팬이 갑자기 두려워서 켜지 말라고, 웬디가 켜니까 피터팬이 바닥에 앉아서 막 엉엉 울었다는 거지. 그리고 딸 제인을 데리고 네버랜드로 갔다. 존 티파니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얘기라고 하더라고요.

초연 때 이 얘기를 하면서 둘이 엄청 울었어요. 그분은 좀 눈물이 좀 많으셨는데(웃음) '왜 사람은 나이를 먹고 왜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가고 이런 서글픔을 겪어야 하는가' 그거에 대한 슬픔이 서로 느껴져서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불멸의 존재가 느끼는 고통도 비슷하고, 죽음과 영혼 혹은 죽음과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피터팬도 같이 보시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오스카는 그때 떠날 때는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겠죠.

안승균 배우 : 아직은. 온전히.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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