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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올림픽에서 제자를 채점…황당한 금메달 작전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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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는 피겨 스케이팅처럼 심판이 채점을 하는 경기입니다. 이처럼 채점을 하는 종목은 심판의 주관적 판단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다른 종목들에 비해 논란이 많이 생깁니다. 특히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여자체조에서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련 감독이 자신의 제자인 소련 선수를 채점해 사실상 금메달을 만들어주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해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설의 선수가 제자를 채점해 금메달 선사(?)

당시 여자 체조의 강력한 우승 후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차슬라프스카 선수였습니다. 그는 4년 전인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냈던 체조 여왕이었는데요,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소련 선수들과 금메달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균대 심판 구성에서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평균대 예선전의 심판위원장은 헝가리 사람이고 다른 심판 4명의 국적은 소련, 폴란드, 동독, 그리고 미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5명 가운데 미국 심판 1명을 빼고 4명이 동구 공산권 국가 출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정말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적대적 감정이 팽배할 때였습니다. 소련이 동구 공산권의 맹주였기 때문에 헝가리, 폴란드, 동독 심판은 체코슬로바키아보다는 소련 선수를 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당시 평균대 심판진에는 소련 심판까지 들어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소련 심판이 예선전에서 소련 선수를 채점하게 된 것인데 더군다나 이 사람이 보통 소련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이 심판의 이름은 라리사 라티니나. 올림픽 여자 체조에서 금메달 9개를 비롯해 무려 18개의 올림픽 메달을 따내 최고의 전설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현직 소련 여자 체조팀 감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소련 감독이 올림픽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소련 선수를 채점한 것입니다. 소련 감독이 자신의 제자인 소련 선수를 채점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요, 당시에도 논란이 컸습니다.

이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정황상으로 보면 라티니나가 1966년에 은퇴한 뒤 심판이 먼저 됐고 이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앞두고 소련대표팀 감독이 됐는데요, 당연히 국제체조연맹이 올림픽 심판 배정에서 현직 소련 감독인 라티니나를 배제했어야 했는데 그만 묵인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당시 국제 체조는 소련이 거의 주도하고 있어서 영향력이 무척 강했습니다. 게다가 라티니나가 올림픽 금메달 9개를 비롯해 18개의 메달을 따낸 최고 스타였어서, 국제체조연맹이 그냥 눈감아 주고 말았습니다. 라티니나가 소련 사람이 아니었고 슈퍼스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4년 전 도쿄 대회에서 라티니나가 여자 개인종합에서 체코의 차슬라프스카에 밀려 은메달에 그친 점입니다. 라티니나의 시대를 마감시킨 선수가 바로 차슬라프스카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자신의 제자인 소련 선수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고 대조적으로 라이벌이었던 체코의 차슬라프스카에게는 점수를 깎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이었습니다. 예선 점수에서 소련의 쿠친스카야는 9.800, 체코의 차슬라프스카는 9.725를 받았고 결선에서는 두 선수가 9.850으로 같았습니다. 결국 소련의 쿠친스카야가 예선과 결선 합쳐서 19.650으로 금메달, 차슬라프스카는 19.575으로 은메달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결선에서 소련의 쿠친스카야가 원래 9.850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 심판들이 점수를 다시 높게 수정했다고 합니다. 차슬라프스카로서는 금메달을 도둑맞은 셈이 됐습니다.


소련 선수 점수 뒤늦게 수정해 공동 금메달 만들기
심판들의 장난은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마루운동에서도 큰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차슬라프스카가 거의 완벽한 연기로 결승에서 9.9점을 받으며 금메달을 확정했습니다. 소련의 라리사 페트릭도 9.9점을 얻었지만 예선 점수에서 뒤져 2위가 됐습니다. 그런데 시상식 직전에 심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뒤 깜짝 놀랄만한 발표를 했습니다. 소련 페트릭의 예선 점수가 잘못 채점됐다며 뒤늦게 점수를 더 올렸습니다. 결과적으로 19.675점으로 두 선수가 공동 금메달이 됐습니다. 차슬라프스카의 단독 금메달이 공동 금메달로 바뀐 것입니다.

체코 대표팀과 차슬라프스카는 엄청난 불만과 함께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미국 체조의 전설이자 1984년 LA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냈던 바트 코너는 이를 두고 "체조에 정치가 개입했다"며 격렬히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시상식 맨 위에 두 선수가 나란히 섰습니다. 차슬라프스카는 시상식에서 소련 국가가 울리자 고개를 숙인 채 외면했습니다. 두 달 전 자신의 조국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소련과, 소련 선수의 금메달을 위해 심판들이 편파 판정을 한 것에 강하게 항의한 것입니다.


정치적 희생양 된 차슬라프스카

당시 차슬라프스카는 소련에 의해 시쳇말로 '위험인물'로 찍힌 상태였습니다. 1968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위성국가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초부터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프라하의 봄'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동구 공산권 종주국 소련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두면 다른 동구권 국가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련은 1968년 8월 체코를 무력으로 침략해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켰습니다. 이때 소련 최고지도자였던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들고 나온 게 '제한 주권론' 즉 사회주의 전체 이익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주권은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브레즈네프 독트린'이라고 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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