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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죽인 사람 더 있다" 연쇄살인마 강호순 자백 영상 최초 공개…아직 밝히지 못한 진실은?

[꼬꼬무 찐리뷰] "죽인 사람 더 있다" 연쇄살인마 강호순 자백 영상 최초 공개…아직 밝히지 못한 진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3일 방송된 '특집 : 더 리얼' 3부작 중 두 번째 '연쇄살인마 강호순의 곡괭이' 편입니다. 특별히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이야기꾼으로, 장현성이 이야기 친구로 나섰고, 방송인 장예원과 야구 레전드 김태균 또한 리스너로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상 최악의 범죄자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보여줄 게 있어.
꼬꼬무

이 곡괭이는, 범죄자와 관련이 있는 물건이야.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면담한 범죄자들이 거의 1000명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뻔뻔하고, 오만하면서도, 아주 기분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놈이 바로 이 곡괭이의 주인이라고 해. 범행부터 검거, 그리고 자백까지 무려 1200일에 걸친 검거 풀스토리를 들려줄 거야.

게다가 '꼬꼬무'의 '특집: 더 리얼'답게 방송 사상 최초로, 범인이 실제로 자백하는 진술 영상도 공개될 예정이야. 프로파일러 권일용과 함께 들려주는, 더 리얼한 오늘의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할게.

때는 2005년 10월 30일 일요일 새벽. 안산 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접수됐어. 불이 난 곳은, 방이 두 개 딸린 다세대주택의 반지하 집. 119가 곧바로 출동했고, 다행히 불길은 금방 잡혔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명 피해가 있었어. 안방에서 잠을 자던 노모와 그녀의 딸이, 숨진 채 발견된 거야.

잠시 후, 소방관이 모녀의 시신을 수습해 반지하 계단을 오르던, 그때였어. 한 남자가 달려오더니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해. 바로 사망한 딸의 남편, 강 씨야. 강 씨는 이날 같은 집 작은방에서 어린 아들과 잠을 자고 있었어. 그러다 매캐한 연기에 눈을 떴고, 필사적으로 방범창을 뜯은 끝에 아들만 데리고 겨우 탈출을 했던 거야. 한순간 사랑하는 가족을 둘이나 잃은 강 씨,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데, 현장을 조사하던 경찰이 슬픔에 잠겨 있는 남편을 보면서 이상한 얘길 해.
꼬꼬무

"뭐지? 내가 잘못 봤나? 아니 아까 시신 수습할 때요. 저 남편이란 사람이 안방에 들어와서 시신을 빤히 보고 있길래, 제가 현장 들어오면 안 된다고 내보냈거든요? 근데... 왜 지금 처음 보는 사람처럼 우는 걸까요?"

알고 보니까, 경찰이 현장 조사를 할 때 남편이 안방에 들어와서 시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도 아내와 장모의 시신이 나오자 마치 사망 사실을 처음 안 것처럼 뒤늦게 오열을 한 거지. 좀 행동이 이상하지?

석연치 않은 점은 또 있어. 그날 화재 현장을 찍은 건데, 보면서 이상한 점을 찾아봐.
꼬꼬무
꼬꼬무

"주로 많이 탄 게 거실 부분이 많이 탔었고. 남편이 있던 방은 연기만 들어가 있던 상태였거든요. 화재를 먼저 보고 본인이 연기를 많이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탈출해서 그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보는 거죠."
-현장 출동한 소방관

거의 전소가 된 안방에 비해 남편이 있던 방은, 불이 났나 싶을 만큼 깨끗해. 게다가 남편 강 씨는 부상도 심하지 않았대. 그런데도 안방에 있던 아내와 장모를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거야.
꼬꼬무

"왜 그 소리를 안 하냐고. (옆방에)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사람이 있다고 했으면 그걸 뜯어서 어떻게든 구했을 거 아니에요."
"부인이나 장모님 있으니까 소리를 질렀다든가 하면 가봤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목격자들

근데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건 이거야.
꼬꼬무
꼬꼬무

남편이 뜯고 나왔다는 방의 방범창을 찍은 건데, 창틀을 고정하는 나사를 한 번 봐봐. 나사가 반만 고정이 되어 있지? 마치 미리 풀어놓은 것처럼. 어쩌면 남편은 불이 날 걸, 미리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남편의 행동, 좀 수상하지 않아?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까 남편 강 씨,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냐.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의 이야기를 들어봐.
꼬꼬무

"그(사건) 당시에 여러 자료들을 저희가 신속하게 모아서 과연 살인인지 사고인지 라는 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규명했습니다. 그 결과 99년부터 차량 도난, 화재, 그리고 운영했던 순댓집 화재 사건을 비롯해서 총 여섯 일곱 차례 정도 (화재) 보험금을 많이 받았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방화가 발생한 2005년 10월경에 부인이 사망했을 경우에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갑자기 들기 시작합니다. 수억 원의. 그리고 주말에 (사고가 발생하면) 또 보험금이 더 나오는 그런 상품으로 했고. 심지어 본인이 사고나 화재가 난 것을 위장해서 (어떻게) 보험금을 탔는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도 몇 명이 확인됐습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검찰이 수사를 통해 남편 강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와 장모를 방화로 살해한 사실을 밝혀낸 거야. 게다가 아내 장례 직후, 남편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문의한 녹취도 확보했어. 그 녹음 파일엔 이런 대화가 담겼어.
꼬꼬무

남편: 저희 집사람이 무배당 **보험 우량체에 들었거든요. 근데 지금 그 사람이 사망했거든요?
상담원: 죄송합니다만, 어떤 이유로 사망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남편: 처가 집에 불이 나서요.
상담원: 주 계약 5천만 원과 재해 사망 보험금 5천만 원 해서 1억, 그리고 종신보험에서는 1억 1800만 원과 사망 특약에서 5900만 원 지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남편: (밝아진 목소리로)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 몇 가지가 나오는 거예요?
상담원: 두 가지에서 받아 보실 수 있는데요. 죄송합니다만 배우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남편: 강호순이요.
-보험회사 녹취 파일 中

남편의 이름은 강호순. 이 이름 들어봤지? 아마 이 사진도 본 적 있을 거야.
꼬꼬무

강호순은 2009년, 대한민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야. 그의 손에 희생된 피해자만 무려 10명. 그중엔 하루 간격으로 살해된 피해자들도 있었어. 계획부터 실행까지 아주 철저하게 범행을 준비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범죄자야.

그런데 말야, 피해자 10명. 정말 이게 다일까? 놀라지 마. 강호순의 희생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두 명의 여성'이 더 있어.
꼬꼬무

"숨긴 게, 하나 있습니다."
-강호순

10+2, 아직 풀리지 않은 강호순의 살인 미스터리. 그가 오랜 기간, 꽁꽁 숨겨왔던 범행의 흔적이, 아까 봤던 그 곡괭이에 남아 있어. 지금부터 강호순의 살인 미스터리를 파헤쳐 볼게.

▲ 사라진 여인들

사건은 스산한 겨울바람과 함께 시작됐어. 2007년 1월, 경기도 화성. 한 여성이 퇴근길을 서두르고 있어. 인근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50대 박 씨야. 해는 또 왜 이리 짧아졌는지 아직 6시도 안 됐는데 벌써 어두컴컴해. 괜히 으스스한 기분에 박 씨가 걸음을 서두르던 그때, 딸한테서 전화가 왔어.

"여보세요? 아~ 딸! 엄마 버스정류장 거의 다 왔어. 금방 갈게~ 기다려~"

그런데, 금방 집에 온다던 엄마가... 안 와. 버스가 늦나 싶어 딸이 다시 전화를 걸어 보는데, 전화를 안 받아. 결국 그날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엄마가 실종된 거야.

곧바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어. 일단 휴대전화 위치추적부터 해봤지. 그랬더니 버스정류장으로부터 약 1시간 반 떨어진 거리에서 배터리가 분리된 채 버려진 휴대전화가 확인됐어. 근데, 그게 다야. 카드내역, 통신 기록, CCTV... 그 어디에도 흔적이 전혀 없어. 버스정류장에서 연기처럼 증발해 버린 박 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런데 3일 뒤 새벽, 경기도 화성에 이어 안양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이번엔 노래방 종업원으로 일하는 30대 김 씨. 놀랍게도 김 씨 역시, 실종 이후 휴대전화 배터리가 분리된 사실이 확인됐어. 이 두 사건, 관련이 있을까?

근데 이번 김 씨 사건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어. 바로 목격자. 동료 직원이 말하길, 김 씨가 노래방 손님으로 온 30대 남자를 따라나선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는 거야. 하지만 이번에도 이렇다 할 흔적은 없는 상황이야.

3일 간격으로 경기도에서만 두 명의 여성이 실종됐어. 게다가 단순 가출로 보기엔 생활 반응도 전혀 없고. 어쩌면 이거, 강력 사건일지도 몰라.
꼬꼬무

곧바로 경기지방경찰청에 수사팀이 꾸려졌어. 수사 지휘를 맡은 이는, 박학근 경무관. 그는 연쇄살인마 정남규 사건의 형사과장을 맡았던 분이야. 그리고 박 경무관은, 정남규 검거 당시 도움을 받았던 자신의 경찰 후배에게 또 도움을 요청해. 누군지 만나볼게.
꼬꼬무

"프로파일링이라는 수사 기법은 그 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하는 작업들입니다."
-젊은 시절의 권일용

맞아. 국내 프로파일러 1호, 권일용 교수야.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프로파일링 기법을 수사에 도입해 유영철과 정남규의 자백을 이끌어 냈던 분이야. 연쇄살인마 둘을 잡아넣고, 이제 겨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그때 딱! 이 실종 건이 터진 거지.
꼬꼬무

"2000년 초반에 유영철 사건과 정남규 사건을 거치면서 정말 필요하다라는 것이 대두되어 경찰청으로 확대가 된 팀이 프로파일링 팀이에요. 이제 팀이 꾸려지고 사무실이 만들어졌으니까 전국에 있는 미제 사건들을 수집해서 우리가 분석할 내용들을 찾아보자라고 문서 작업을 막 하고 있는데, 경기경찰청에 있는 박학근 경무관이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내가 수사부장으로 왔는데, 이상한 실종 사건이 있다. 네가 와서 분석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권일용

다음 날,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실종사건 수사본부가 있는 경기지방경찰청으로 향했어. 그리고 최근 관내에 접수된 여성 실종 사건이 있는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다른 실종 사건부터 살펴봤어. 바로 '케이스 링크(Case Linkage)'를 찾기 위해. 케이스 링크는 쉽게 말해 사건들의 연쇄성을 말해. 비슷한 사건이 동시에 벌어졌을 때, 사건들 사이 연결고리를 찾고 같은 범인의 소행인지 공범이 있는지 확인하는 수사기법이야.
꼬꼬무

그렇게 내용을 쭈욱 살펴보는데, 순간 몸에 쫙 소름이 돋아. 2006년 12월 14일 새벽, 군포에서 실종된 40대 배씨. 12월 24일 새벽, 수원에서 실종된 30대 박씨. 그리고 이듬해 1월, 3일 간격으로 실종된 두 여성까지. 한 달 새 발생한 여성 실종 사건만 4건이야. 게다가 4명 모두 실종 직후 휴대전화 배터리가 분리됐는데, 그 위치가 어디냐? 바로, 경기도 화성이야.

근데 '경기도 화성' 하면 떠오르는 사건 없어? 맞아, 영화 '살인의 추억'의 실사판 '화성 연쇄 살인 사건'. 2019년에 범죄자 DNA 대조로 이춘재가 진범으로 밝혀졌지만, 이때는 2007년이야. 당시만 해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미제로 남아 있을 때야.

그럼 혹시 이 4건의 실종 사건 역시, 놈이 저지른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범행 패턴이나 수법이 많이 달라. 그래서 이번에는, 실종 사건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보기로 했어.
꼬꼬무

일단 실종자가 모두 여성이지? 그리고 지역은 경기도고. 실종자 직업을 보고, 처음엔 노래방 종업원을 노리나 싶긴 했대. 근데 또 세 번째 실종자는 회사원이야. 퍼즐이 안 맞지? 연령대도, 실종 시간도 제각각이고. 그럼 혹시 동일범의 소행이 아닌 걸까?

그런데 그때! 박학근 경무관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어. 경기도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실종된 거야. 실종자는 스무 살, 대학생. 실종 장소는 버스정류장. 게다가 이번에도 역시나, 휴대전화 배터리는 분리됐어. 어때? 이전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어 보여?

만약 이 모든 실종 사건의 범인이 한 명이라면, 그는 어떤 사람인지, 또 왜 이 지역에서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알아봐야 해.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사건이 발생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어. '직접 범인이 되어 보자'는 마음으로.

▲ 범인을 잡아라
꼬꼬무

"그때 제가 너무 답답해가지고, 도대체 피해자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걸 너무 알 수 없으니까. 현장에 나와서 몇 시간 서 있었던 이런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이렇게 따뜻하고, 차들도 많이 다니지만. 그때만 해도 영하 10도 이하의 아주 추운 날, 이면도로였어요. 거의 차들도 안 다니고 또 뭐 해가 일찍 지니까 되게 스산한 이런 느낌이었죠. 그중에 한 곳은 완전히 정말 그냥 공장 단지여서, 누군가 차를 가지고 출퇴근하지 않는다면 버스를 당연히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 버스가 1시간 2시간에 한 번씩 오는 이런 상황이어서, 딱 그 시간에 나와서 한 번 버스를 놓친다면 굉장히 곤란해지는 그런 상황이었죠."
-권일용 프로파일러

그렇게 매일 정류장에 가서 한 몇 시간씩 앉아있었더니, 이전엔 몰랐던 엄청난 단서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해.
꼬꼬무

"그래서 그렇게 서 있으니까, 뭐 버스들이 오면 '아닙니다' 할 정도로 이제 (장소의) 특성을 알게 됐는데. 트럭이 한 대 서더니 '아 추운데 거기 서 있지 말고 그냥 내가 큰길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타세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니 그냥 타세요, 돈 안 받아요' 이렇게 얘길 하길래. 이게 수법이었구나 이게 수법이고 도구였구나, 피해자들이 교묘하게 속아서 탈 수 있는 방법은 이거밖에 없었구나."
-권일용 프로파일러

범인이 이용한 게 바로, 차량이었어. 교통이 워낙 불편한 지역이다 보니까 가까운 거리는 주민들끼리 서로 태워주는 문화가 있었던 거야. 만약 범인이 이런 상황을 이용했다면? 버스정류장에서의 실종 상황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

근데, 여기서 또 하나 걸리는 게 있어. 아무리 동승 문화가 있다고 해도, 모르는 남자의 차를 선뜻 탈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 그래서, 여성들이 이 차를 타도 위험하지 않겠다, 싶게 범인이 차에 어떤 장치를 했겠구나 싶었어. 예를 들면, 가족사진을 붙여 놓는다든지 아니면 종교 표식이랄지. 이런 걸 '후광효과'라고 해. 그 사람보다 주변의 물건을 통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을 주는 거지.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이 단서들을 조합해 범인을 '차량을 소유한 30대 남성', '그리고 신뢰감을 주는 인상을 가진 자'로 특정했어.

수사는 급물살을 탔어. 차량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도로에 설치된 CCTV를 죄다 끌어 모아 뒤졌어. 인근에 사는 전과자, 또 노래방에 오는 진상 손님들까지. 일단 낌새가 수상하다 싶은 남자들은 죄다 불러 조사를 해 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는 거야. 수사하는 사람 입장에선, 미치는 거지.

그런데, 진짜 이상한 일은 지금부터야. 마지막 실종자가 발생한 2007년 1월 7일. 그날 이후로 활동이 뚝 끊겼어. 놈이 움직이질 않아. 한 달, 두 달,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가도 거짓말처럼 잠잠해. 어떻게 된 걸까?

보통 연쇄 범죄자의 경우 이런 식으로, 공백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 전문 용어로 '심리적 냉각기'라고도 하는데, 수사망이 좁혀올 때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혹은 이전 범죄를 스스로 연구하는 경우에도 냉각기가 찾아올 수 있대. 실제로 유영철은 4개월가량 냉각기를 가진 후 무려 11명을 더 살해했어. 그러니 아직은 안심할 수 없지.

그러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어. 마지막 실종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쯤 되어가던 어느 날.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또 다른 미제 사건들을 분석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였어.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어떤 한 단어가 귀에 확, 꽂히더래.
꼬꼬무

"지난달 19일 경기도 군포시에서 귀가 중이던 여대생 한 명이 실종돼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섰습니다. 이 여대생은 실종 당일 오후 3시쯤 군포시 산본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모습이 확인된 뒤 30분쯤 지나서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고 이어 4시간쯤 뒤 돈이 인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마을버스, 그리고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 게다가 지역은 경기도 군포. 놈이 다시, 나타난 걸까. 일단 관할 경찰서의 협조를 받아 범인의 모습이 찍혔다는 은행 CCTV부터 자세히 확인했어. 과연, 여성 연쇄 실종 사건의 범인이 맞을까?
꼬꼬무
꼬꼬무

일단 남자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점, 비밀번호를 누를 때 손에 뭔가를 끼고 있었어. 바로 남성용 피임 기구야. 지문을 안 남기려는 의도 같은데 하필? 느낌이 좀 쎄하지? 게다가 머리엔 가발까지 썼어. 마치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일부러 변장한 느낌이랄까?

여기서 프로파일러의 심리전이 펼쳐져. 언뜻 보면 앞선 실종 사건과 CCTV 속 범인은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해. 근데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이걸 보자마자 '이놈이구나' 확신했대.
꼬꼬무

"일단 표면상 드러나는 것이 은밀하게 돈을 뽑아가도 모자랄 판에, 아주 밝은 색의 옷에 가발을 쓰고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위장이라 봐야 합니다. 피해자의 카드를 써서 강도가 지금 은행에서 돈을 빼갔다는 것을 수사팀에서 알기 위한 의도가 저는 있었다고 봐요. 이건 뭡니까? 범죄자로서는 자기가 저지른 기존의 범죄의 목적과 동기를 다른 걸로 바꾸는 거예요. 기존에 일어난 연쇄 사건으로 나를 추적하지 마라는 강렬한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한마디로 범인이 형사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트릭을 쓴 거야. 하지만 누굴 속여. 그런 수작 따윈 프로파일러 앞에서 안 통하지. 곧바로 범인의 얼굴이 담긴 수배 전단지가 쫙 뿌려졌어.
꼬꼬무

형사들은 이 더벅머리 가발을 쓴 남자를 연쇄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어. 여대생이 실종된 군포 버스정류장과 휴대전화가 꺼진 위치, 그리고 은행까지. 동선상에 있는 모든 CCTV를 죄다 끌어모아 이 잡듯 뒤졌지. 그렇게 찾아낸 CCTV가 무려 300개. 근데 이건 놀랄 일도 아냐. 이 300개의 CCTV에 찍힌 차량의 수가 약 7천 대. 어마어마하지? 형사들은 범인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화면을 돌려보고, 멈춰보고, 다시 보고...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CCTV를 뒤지기 시작했어. 하지만 은행 CCTV 영상 속 남자와 비슷한 행색을 한 운전자는 물론, 수상한 차량도 찾아볼 수 없어. 그렇게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한 형사의 눈에 수상한 차량 한 대가 포착됐어. 바로 이 장면이야.
꼬꼬무

사진 속 운전자의 오른손을 주목해서 봐봐. 잘 보면 운전자가 보조석 쪽의 뭔가를 누르고 있지? 뭘 누르고 있는 걸까?
꼬꼬무

"통상적으로는 과속 단속이 되거나 CCTV에 찍힐 경우에, 프라이버시 때문에 옆의 동승자 보조석에 앉아 계신 분들은 촬영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군포 여대생 피해자가 조수석에 앉아있었지만, CCTV에 촬영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찍힐까 봐, 피해자의 상체를 이렇게 숙이고 그리고 운전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장면들을 경찰이 정말 정밀하게 수사를 잘하셔서, 확인을 했습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형사들은 당장 그 차량의 소유주를 찾았어.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까 차량 소유주가, 여성이야. 그것도 나이가 지긋한.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소유주한테 전화를 해봤지. 그랬더니,

"아~ 그 차요? 그거 우리... 호순이가 타는 차인데?"

강호순. 지난 2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연쇄 실종 사건의 용의자, 그 정체가 드디어 밝혀진 거야.

▲ 연쇄살인범 강호순

당시 강호순은 안산에서 마사지 관리사로 일하고 있었어. 형사들이 바로 달려갔어.

"경찰입니다. 여기 혹시 직원 중에, 강호순이라는 사람 있습니까?"

잠시 후, 한 남자가 느긋하게 손을 닦으며 걸어 나와.

"제가 강호순인데, 무슨 일이시죠?"

아까 우리가 예상한 범인의 모습이 어땠지? 차량을 소유한 30대 남성, 그리고 신뢰감을 주는 인상을 가진 자. 역시나 이 남자! 인상이 서글서글한 게, 딱 봐도 호감형이야.

일단 형사들은 강호순에게 군포 여대생 사건이 있던 12월 19일의 행적에 대해 물었어. 그랬더니, 애인과 저녁을 먹고 저녁 7시쯤 집에 들어갔대. 몇 가지 확인을 더 해봤는데, 딱히 의심할 만한 정황은 안 보여. 하지만 거짓말은 금세 들통났어. CCTV로 동선을 확인한 결과, 강호순이 집에 가지 않았다는 게 확인된 거야.

이제 뭘 해야 해? 강호순, 놈을 잡으러 가야지. 그런데 그날 밤, 강호순의 집 인근에서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져.
꼬꼬무

무슨 상황인지 알겠지? 강호순이 자신의 차량 두 대에 불을 지른 거야. 갑자기 왜?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꼬꼬무

"차량 내에는 많은 머리카락이나 유전자 또 연쇄살인과 관련된 피해자의 혈흔이나 여러 가지 유전자 정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타고 다니던 차량 2대 무소, 에쿠스를 불로 태웁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결국 이 일로 강호순은 긴급체포 됐어. 조사실에 온 강호순, 태도는 어땠을까? 아주 가관이야. 이게 나란 증거 있냐!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이렇게 몰아세워도 되냐! 실실 웃으면서 증거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큰소리를 빵빵 치는 거야.

아무래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냐. 이럴 때 필요한 게 뭐다? 바로 심리전!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직접 강호순을 상대하기로 했어. 그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호순과 마주 앉아.
꼬꼬무

권일용: 나는 형사는 아니고, 그냥 네 이야기를 좀 들으러 왔어. 이제 나랑 대화할 거야.
강호순: 왜요? 증거 찾아오라니까 뭐가 잘 안 돼요? 아니 나랑 대화할 거면 물이라도 들고 오든가.
권일용: 나는 대화를 하러 왔지, 너한테 물이나 주려고 온 사람이 아냐. 일단 얘기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얘기해. 그때 가져다 줄 테니까.
강호순: 여태까지 내내 형사님들이랑 얘기했는데 무슨 얘기를 또 해요. 그럴 시간에 나가서 증거라도 찾아오고 그러는 게 더 낫지 않나? 여기서 편하게 입만 터시려고 하네.
권일용: 4년 전에 화재로 아내와 장모가 사망했네? 아들만 데리고 탈출했고. 어떤 기분이 들어?
강호순: 그걸 내가 왜 다시 생각해야 되죠?
권일용: 네 아들이 아버지가 여성들만 노리는 범죄자라는 걸 알면 어떤 심정일까?
강호순: 지금 저, 의심하는 거예요? 아들 얘긴 그만 하시죠.
권일용: 왜, 불편해? 아들 생각하니까 부끄럽긴 한 가보지?
강호순: (발끈해 책상을 쾅 치며) 아이씨! 이 사건하고 상관도 없잖아요.
권일용: 아들 얘기가 싫으면, 부모 얘기는 어때?
강호순: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시고. 이럴 시간 있으면 나가서 증거라도 하나 더 찾아오시든가.

강호순은 조사 내내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형사들을 쥐락펴락, 조종을 하려 들었대. 오히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강호순이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대. '피해자를 이런 식으로 조종하면서 범행을 저질렀구나.' 이 순간에도 놈을 프로파일링 한 거야. 이 강호순이 얼마나 거만했냐면, 심지어 식사 시간에 짜장면을 시켜줬더니, 자기는 안 먹는대. 밀가루 안 먹으니까 된장찌개를 시켜달라는 거야.
꼬꼬무

"강호순이 본인 몸을 위해서 술 담배는 일절 하지 않았고, 몸에 좋다고 하는 그런 음식들을 먹었는데. 보양식인 개고기, 그리고 민들레 꽃잎으로 만든 차가 남성에게 특히 좋다고 검사님도 드셔 보셔라. 그래서 제가 거기에 대해서 나무랐습니다.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이렇게 건강을 챙기는 강호순의 의도는 뭘까. 그게 '살인'이었어. 내가 건강해야만 내가 필요할 때 살인을 저지를 수 있고 범행을 은폐하고 도주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야.

한편 그 시각, 강호순과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 있어. 더 정확히 말하면, 강호순의 물건과 전쟁 중인 이 남자. 바로 국과수의 유전자 감식 요원, 임시근 연구원이야.
꼬꼬무

"강호순이 이미 본인이 쓰던 차량 2대는 이미 불을 태웠고, DNA나 이런 분석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증거물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강호순이)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증거물들을 의뢰를 한 거죠. 의류 겉옷, 신발 이런 것도 다 의뢰가 되고. 그 외에도 장갑, 비닐장갑, 목장갑 피가 묻을 수 있는 칼이라든가. 낫도 있었고 톱도 있었고. 그 집에 있던 웬만한 거는 다 의뢰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임시근,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꼬꼬무

자, 이게 바로 강호순의 집에서 수거한 물건들이야. 이건 일부고, 실제로는 증거품이 100개가 넘었대. 옷만 거의 한 트럭이었어. 이 어마어마한 양의 증거품들 사이에서 결정적 한방을 찾아야 하는 거야.

너 혹시 '루미놀'이라고 들어봤어? 혈흔을 찾을 때 쓰는 시약인데 이걸 뿌리면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촉매 역할을 해서 빛이 나거든? 임 교수는 캄캄한 암실에 들어가서, 물건 하나하나에 루미놀 시약을 뿌리기 시작했어.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어느덧 밤 12시가 훌쩍 지났어.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증거는 보이지 않아. 뭐라도 찾아야 놈의 자백을 이끌어낼 텐데, 얼마나 답답했겠어.
꼬꼬무

그런데, 그때였어! 임 교수 눈앞에, 아주 희미한 푸른빛의 점 하나가 보여. 바로 이 점퍼! 점퍼 오른쪽 소매에서 혈흔을 찾아낸 거야.

"그 옷 중에 이제 까만색 계통에 잠바가 하나 있었는데 비교적 깨끗한 잠바였고요. 그 잠바에 이제 루미놀을 뿌리는데, 오른쪽 팔에 소매 부분에서 아주 약한 빛이 이제 하나가 검출이 된 거죠."
-임시근,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그 양이 어느 정도였냐. 물 한 방울 정도. 그 100개가 넘는 증거품들 사이에서 극소량의 혈흔을 찾아낸 거야. 기적 같은 일이지. 이제 이 혈흔이, 실종된 군포 여대생의 것인지만 확인하면 돼. 그런데, 막상 대조를 해봤더니 결과가, 완전 충격이야.
꼬꼬무

"혈흔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피해자.. 강호순 검거됐던 사건의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여대생 게 아니고 다른 여자 DNA가 나왔어요. 아 그러면 그 얘기는 다른 피해자가 또 있다는 얘기고, 나머지 실종자도 강호순이 범행을 했을 것으로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소름이 좀 끼칠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임시근,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놀랍게도 지금까지 실종된 여성들이 아닌 전혀 다른 여성의 DNA가 검출된 거야. 그럼 이 DNA의 주인은 누구냐. 알고 보니까 한 달 전쯤, 경기도 안산에서 40대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바로 그 여성의 DNA였어. 이게 무슨 의미야? 연쇄 실종 사건의 범인은, 강호순이 맞았어.

"1, 2년 전부터 경기도 서남부 지역에 여성분들이 계속 실종되는 사건이 있어서 그 실종된 분들의 흔적을 또 찾는 그런 증거물들이 계속 의뢰가 되고 있었어요. 그중에 한 명과 확인이 되면서 실종된 분들이 다 강호순의 희생자였다 이런 게 밝혀지게 된 거죠."
-임시근,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 이제 놈이 그토록 가져오라던 증거도 찾았어. 이 얘길 들은 강호순, 뭐라고 했을까?

"글쎄.. 증거가 그렇게 빨리 나오지 않을 텐데? 제대로 찾은 거 맞아요?"

이 와중에도 눈 하나 꿈쩍 않고 비아냥거려. 진짜 기가 차지? 하지만 형사들도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어. DNA 결과를 들이밀며 아주 강하게 추궁을 했지. 결국 그날 밤, 강호순이 마침내 입을 열었어. 그날 강호순은 총 7명의 여성들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실을, 모두 털어놨어.

▲ 친절한 연쇄살인마
꼬꼬무

강호순은 대체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여성들을 차로 유인해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걸까? 이걸 이해하려면 강호순이 어떤 범죄자인지부터 파악해야 해. 사실 강호순은 조사 시작부터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면모를 드러냈어. 특히 조사관들 앞에서 강호순이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고 해. 뭔지 한 번 들어봐.
꼬꼬무

"자기가 그동안 성인들이 다니는 나이트클럽 갈 때 굉장히 성사율이 높다, 일단 성에 대해서 굉장히 좀 그릇된 가치관, 그리고 남성적으로 외모적으로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 좀 근거 없는 우월감이라는 게 있었고요. 여러 여성들을 저희가 면담시켰을 때 일단 의자에서 다리를 꼬고 본인이 강한 척 이렇게 자세를 잡는 모습, 그리고 대화 내용 중에 뭐 사형제 폐지될 것 같지 않냐, 자기는 좀 건재한 듯이. 여성을 마치 토끼를 잡아서 우리 속에 같이 데리고 있는 호랑이나 사자처럼 본인을 그렇게 스스로 인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보통 사이코패스들은 상대를 내 발 밑에 두고 그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려는 습성이 있대. 특히 이 부분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와도 비슷해. 둘만의 공간에서 피해자를 결박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피해자를 보며 자존감을 충족하는, 아주 위험한 성향의 범죄자라고 할 수 있지.

근데 왜 우리가 아까 그런 얘기 했잖아. 모르는 남자의 차를 누가 타겠냐고. 강호순은 이런 심리까지도 철저하게 계산했어.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따뜻한 남자.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란 듯 보조석에 세워두고 깔끔한 신사룩으로 드레스코드까지 맞춘 뒤 주행에 나선 거야. 그 이후의 상황은, 강호순이 직접 진술한 내용을 읽어봐.
꼬꼬무

"옷 잘 입고, 얼굴 괜찮게 생기고, 말 잘하고... 봤을 때 제가 사기꾼같이 보이진 않잖아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일단 양쪽 창문을 다 열어버려요. 그러면 차 안이 환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실실 웃으면서 초행길인 척 여자가 갈 것 같은 방향을 물어봐요.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태우는 거죠. 안 타도 괜찮아요. 내가 그런 마음을 먹었다면 여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억지로 태울 필요는 없어요."
-강호순 진술 中

심지어 여성들이 타는 걸 망설이잖아? 그럼, "왜요?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여요? 아유, 그렇게 못 믿겠으면 그냥 갈게요"라면서, 오히려 피해자가 죄책감을 갖게 만들었대. 선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내가 이래도 되나?'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거지. 그렇게 친절한 가면을 쓰고, 여성들을 속여 차에 태운 강호순은 얼마 안 가 본색을 드러냈어. 차량 문을 강제로 잠그고, 피해자의 휴대전화 배터리를 분리한 뒤 성폭행을 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거야.
꼬꼬무
꼬꼬무

"경찰은 오전 10시반부터 460여 명과 건설 중장비를 동원해 시신 발굴에 나섰습니다... 범행을 재연하는 강호순의 태도는 한결같이 태연하고 침착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꼬꼬무
꼬꼬무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 손에 죽었는지는 봐야 되잖아요."

내 딸, 그리고 엄마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 믿으며,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뎌 왔던 가족들은 무너진 희망 앞에 눈물만 쏟아낼 수밖에 없었어. 심지어 4번째 희생자인 김 씨는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 암매장 장소에, 골프장이 들어섰거든.

결국 시신 없는 살인사건을 포함, 강호순은 총 7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가 돼.

그런데, 좀 이상한 거 없어? 강호순이 자백한 피해자, 7명이라고 했지? 그리고 아내와 장모를 살해한 방화 사건도 기억하지? 다 합하면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는 모두 9명이야. 그런데 처음에 강호순에 희생된 피해자가 10명이라 했잖아. 그럼 한 명이 비어.

자, 이 남은 한 명에 대한 진실은, 오늘 처음으로 공개되는 '강호순의 자백 영상'을 통해 살인마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될 거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들어줘.

한편, 강호순의 조사를 앞둔 안산지청엔 전에 없던 긴장감이 감돌고 있어. 왜냐? 바로 그 강호순의 곡괭이 때문에.
꼬꼬무

"그 당시에 저희 검찰에서 압수수색을 할 때 땅속에 뭔가가 뾰족 튀어나와서 그 부분을 파보니까, 이런 반달 모양의 곡괭이의 날만, 그 안에 파묻혀져 있는 것을 발견을 해서. 국과수에 보내는 등 필요한 절차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제 국과수의 감정 결과, 곡괭이 날이 이렇게 있으면 중간 부분에서 유전자 두 개가 발견이 됐고, 그 유전자는 여성 유전자인 것까지는 확인이 됐습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강호순의 축사에서, 그가 범행 도구로 사용했다는 곡괭이의 날 부분이 추가로 발견된 거야. 그런데 이걸 한 번 봐봐.
꼬꼬무

강호순이 범행을 잠시 멈췄던 냉각기, 기억나지? 강호순은 이 냉각기 이전 범행엔 곡괭이를 사용하지 않았고, 냉각기 이후 2008년에 저지른 두 건에서만 곡괭이로 피해자를 확인 사살했다고 진술했어. 그렇다면, 곡괭이에서 나왔다는 두 명의 여성 DNA. 누구 거여야 해? 당연히 마지막 두 여성이어야지. 그런데... 아니야. 게다가 냉각기 이전의 피해자 5명과도 불일치해. 정리하면, 지금까지 강호순이 자백한 피해자 중엔, 곡괭이의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 이거 무슨 의미야? 강호순의 피해자가 최소 두 명 더 있다는 거야.
꼬꼬무

"기존 경찰에서 사건이 넘어온 피해자들 유전자와 대조를 해봤는데.... 불일치했습니다. 그러면 결국 상식적으로 여죄가 더 있을 수 있다. 밝혀야 되겠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연쇄살인마와의 두 번째 진실 게임이 시작된 거야.

▲ 피해자가 더 있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강호순이 어디 보통 놈이야? 검거부터 자백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고 심지어 조사실에서도 증거를 가져오라며 거들먹대던 놈이야.

"당연히 강호순은 날이 왜 그곳에서 발견됐는지 모르겠다,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부인하는 형태의 답변만 했습니다. 어차피 강호순 본인도 사형 또는 무기징역 잘 받아 봐야... 그 정도로 본인도 예상했던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더 얘기해서 나한테 남는 게 뭐가 있냐, 라는 좀 이기적인 질문을 거꾸로 저한테 하기도 했습니다."
-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어느덧 검찰 조사 14일째. 이제 기소까진 일주일도 남지 않았어. 강호순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야. 그렇게 그날도 오전 조사를 마치고 답답한 심정으로 동료 검사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와. 그런데!

"검사님, 빨리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호순이.... 할 말이 있답니다."

손 검사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바로 달려갔어. 지금부터, 강호순의 모습이 담긴 '실제 진술 영상'을 보여줄 거야. 이거 최초 공개야.
꼬꼬무

<2009. 02. 17 안산지청 진술녹화실>
강호순: 제가 이거하고 별 건으로...... 숨긴 게 하나 있습니다. 사람 죽인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게 하나 더 있다, 강호순이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어. 사실 강호순은 자백 전날 조사실에서 아들을 만났어. 내내 울기만 하던 아들을 보며, 강호순은 덤덤하게 "나 없이 잘 살아라"라는 말을 했다고 해. 이 만남이 그를 흔들었던 걸까? 강호순은 깊은 한숨과 함께 추가 범행을 털어놓기 시작했어.
꼬꼬무

검사: 뭘 숨겼는데?
강호순: 하..... 강원도.. 강원도에서... 사람 하나 죽인 게 더 있습니다.
검사: 강원도 어디에서요?
강호순: 정선이요.
검사: 그게 언제예요?
강호순: 재작년 여름일 겁니다. 가을인가? 여름인가. 가을쯤 될 겁니다.
검사: 정선엔 왜 갔어요 그때?
강호순: 그때 그냥 놀러 댕겼습니다.
검사: 혼자서?
강호순: 예.
검사: 그때 상황이 어땠는데요?
강호순: 하........ 거기서 제가.... 군청 가는데 거기서 아가씨가 아침에, 아침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오전에... 군청가는데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까 그 아가씨도 마침 군청 간다고 해 가지고 그 아가씨 태워가지고 가다가 제가... 딱 강간해서 죽였습니다.

마치 모든 걸 체념한 듯, 강호순은 또 한 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했어. 범행일자는 2006년 9월 7일. 지금껏 첫 범행 일자로 알려진 날보다 3달 앞서 저지른 또 다른 살인을 털어놓은 거야.

근데, 아직 끝난 게 아냐. 강호순이 추가 자백한 피해자가 곡괭이 피해자인지 확인을 해야 하잖아? 손 검사는 추가 피해자의 DNA와 곡괭이에서 나온 DNA를 대조해달라고 국과수에 의뢰했어. 과연 결과가 어땠을까?

"정선군청의 여직원 그 사체는 저희가 수사할 때 유일하게 찾은 유해가 엉덩이뼈와 턱뼈였습니다. 다행히 건조화는 덜 됐고 거기에서 그 유전자, 물론 가족 유전자로 확인할 수 있지만 어쨌든 곡괭이 유전자하고 대조를 해 보니까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어. 강호순이 자백한 추가 피해자 역시 곡괭이의 피해자가 아니었던 거야. 이거 뭐야? 다시 도돌이표야.
꼬꼬무

"저는 좀 단순한 얘기로 아, 이거 자백한 거 이거 무효다... 일단 곡괭이 유전자 2명 이거는 다시 원점에서 계속 수사해야 되는구나..."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손 검사가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 곡괭이 피해자를 대라, 죽인 사람 2명 더 있지 않냐! 그러자 강호순은 뭐라고 했을까?

"아니 검사님, 제가 한 명 죽인 거 불었잖아요. 아니 근데 뭘 또 불으라는 겁니까? 곡괭이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더는 모른다, 딱 잡아떼는 거야. 그런데 말야, 여기서 또 이상한 거 없어? 사실 검사들은 곡괭이 피해자를 추궁하고 있었어. 그리고 강호순은 냉각기 이후인 2008년부터 곡괭이를 사용했다고 했잖아? 그래 놓고 뜬금없이 제일 처음에 저지른 2006년 범행을 자백한 거야. 대체 강호순은 왜, 첫 번째 살인을 고백한 걸까?
꼬꼬무

"저희한테 점심시간에 연락한 교도관을 불러서 물어봤습니다. 뭐라고 얘기하면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더냐 그랬더니 그 교도관님이 저한테, 강호순이 이렇게 점심 먹으면서 '교도관님, 이번엔 강원도 쪽에 한 번 바람이나 쐬러 갈까요?' 이렇게 얘기를 했고,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범행에 대한 단서나 추궁될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저지른) 범행, 2006년도 최초 범행으로 이렇게 저희 시선을 돌리는 거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너가 본 자백 영상, 어쩌면 그건 곡괭이의 진실을 덮으려는 강호순의 큰 그림이었을지도 몰라. 경찰 조사 당시 그를 만났던 권일용 프로파일러 역시 강호순의 자백 태도에서 다른 의도가 읽힌다고 지적했어. '연기'를 하고 있는 거래.
꼬꼬무

"이제는 하. 지금 거의 한 15년이 지났잖아요. 그때는 내가 역할이 있었고 저런 것들을 하나하나 미세하게 분석을 해야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 객관적으로 나와서 다른 조사 받는 장면을 보면서 표정을 보니까. 그때 내가 진짜 마주 앉았던 그 느낌이... 좀 다른 의미로... 떠오릅니다. 강호순은요, 저렇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거는 죄책감의 표현이 아니고 정말 사이코패스들이 순식간에 썼다 벗었다 하는 가면이에요. 뭔가 지금 숨기고자 하는 다른 범죄가 있다면 그 정도의 범죄를 빨리 드러내서 화제를 바꿔서 다른 것을 부각하려고 하는 그 수법 중 하나예요. 저 장면은 아주 교묘한 사이코패스들의 특징이에요."
-권일용 프로파일러

그렇다면 첫 번째 범행을 자백하면서까지 그가 감추고 싶은 곡괭이의 피해자 2명은 대체 누구일까?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아마도 평범한 피해자는 아닐 거라고 추측했어. 강호순은 아들이 아킬레스건이라고 했잖아. 그렇게까지 숨기고자 했다면, 자기가 생각해도 자식한테 말 못 할 파렴치한 범죄, 부끄러운 범죄의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는 거야.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숨겨야 될 범죄는 결국 뭐가 있느냐, 자기가 생각해도 세상에 드러났을 때 너무나 파렴치한 범죄일 수 있어요. 아동이거나 노인이거나, 이런 유형의 범죄일 가능성을 우선순위로 분석할 수 있겠죠."
-권일용 프로파일러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강호순의 여죄를 밝혀낼 순 없었어. 이후 총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호순은 2009년 7월, 최종적으로 사형을 선고받게 돼.

▲ 풀지 못한 숙제

너는 강호순의 여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꼬꼬무'가 강호순의 자백 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까지 오늘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야. 지금도 어딘가에 묻혀있을지 모를, 곡괭이의 진실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제가 25년 검사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건들을 많이 접해봤는데, 유일하게 아직까지 제가 숙제를 제대로 못했다 라고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사건이 이 사건입니다. 대부분 많은 희생자들이 있는 사건은 그 사건 기록 내용에 피해자들의 한이 서려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제가 가슴 아팠던 점은 그 가족들이 사체가 수습되기 전까지 계속 그 방을 치우지 않고 기다렸다는 겁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꼬꼬무

"강호순은 어차피 사형을 선고받았으니까 끝난 것이다, 라고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검찰에서 추가로 살인사건을 하나 밝힌 것처럼 곡괭이 유전자에 있는 여성 유전자 두 명이 또 다른 확인되지 않은 실종 사건일 가능성은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영배, 당시 안산지청 검사

세상 어딘가에 억울한 죽음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며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수사기관이 나서서 강호순 곡괭이의 진실을 밝혀내야 하지 않을까?

강호순의 여죄는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어. 그래서 이번에 '꼬꼬무'가 '특집:더 리얼'을 제작하면서 국과수에 정식으로 문의를 해봤어. 지금이라도 실종자 가족의 DNA가 확보된다면 강호순의 곡괭이에 남은 DNA와 대조가 가능한지를 말야. 돌아온 답은 예스. 지금도 곡괭이의 유전자 프로필이 남아 있기 때문에 DNA 대조가 가능하다고 해.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있어. 미국이나 영국은 실종자 가족의 DNA 정보를 수사기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해서 변사자나 무연고자가 발견되면, 바로 대조가 가능하대.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성인 실종자에 관한 DNA관리법과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야. 실종자 가족이 곡괭이의 DNA 프로필과 대조를 해보고 싶어도 법적인 근거가 없어 어려움이 있다는 거지.
꼬꼬무

"실종 사건은 상당수가 범죄와 관련이 있거든요. 우리나라도 지금 미제 사건 중에 상당 수가 실종 사건이에요. 이 데이터베이스에 일단 수록이 되면 나중에 혹시 다른 불상 변사자가 나왔을 때 그 곡괭이 DNA랑 일치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성인을 포함한 실종자들에 대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하고 관리하는 법이 만들어져서 가능성을 열어놓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시근,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화성 연쇄 실종 사건의 범인 이춘재가, 30년 만에 그 죗값을 치르게 된 것처럼 지금이라도 성인 실종자에 대한 새로운 DNA 관리법이 만들어지고 '곡괭이 특별 수사 본부'가 구성돼 집중적인 수사가 진행된다면 '플러스 2'라는 강호순의 여죄는 반드시 밝혀질 거라고 생각해.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어. 우리가 사건을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2'라는 강호순의 여죄는 반드시 밝혀질 거라고 믿어.

강호순은 현재 사형수로 16년째 복역 중이야.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살도 많이 빠지고 얼굴도 수척해져서 예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해.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강호순이 수척해진 이유를 이렇게 해석했어. 강호순은 교도소 안에서 살인과 성범죄를 저지르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거라고.

강호순은 지금껏 피해자와 유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없었어. 그러는 사이, 강호순의 피해자 가족 중 한 분은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고 해. 바로, 경찰. 그가 첫 경찰 제복을 입던 날,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어. "혹시 강호순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해.

"딱 이 한마디 전하고 싶어요. 너는 아무 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 동생을 죽였지만, 나는 경찰이 되어 너의 가족을 지키고 있다고…"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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