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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 "혁신 가로막는 방송 규제 개선해야"

[취재파일]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 "혁신 가로막는 방송 규제 개선해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한류. 한류는 대한민국의 커다란 문화 자산이자,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힙니다.

지난 30년 동안 드라마와 팝 등 K 콘텐츠를 기반으로 성장한 한류는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하지만 동시에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국내 콘텐츠 산업의 자생력이 약화되고, 생태계가 황폐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기론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엔터테인먼트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만들 한류의 미래를 주제로 <넥스트 한류>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석좌교수(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넥스트 한류>를 쓰게 된 동기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K-콘텐츠, 한류의 인기가 절정입니다. 콘텐츠 수출액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외 콘텐츠와 한류 현장에서 만난 분들의 말씀은 다릅니다. "한류가 지속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몰려오는 불안감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공직을 떠난 이후에도 몇 년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한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한류는 문화현상 같지만, 발전 단계별로 보면 지상파방송, 인터넷(포털), OTT 그리고 최근에는 AI 등 미디어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때문에 한류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와 미디어, 기술을 함께 봐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30년 동안 미디어, 콘텐츠 그리고 IT 분야에서 정책을 담당했고, 연구를 했던 저의 경험들이 한류 연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습니다. 교수의 본분이 연구하고 글을 쓰는 것인 만큼 해외 한류 현장을 방문한 후 틈틈이 기록으로 남겼고, 그것들을 모아서 <넥스트 한류>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Q. <넥스트 한류>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넥스트 한류>는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가 된 한류가 '지속가능한가', '지속가능성을 넘어서 국내외에서 한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입니다. 질문과 답 속에 제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넥스트 한류>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한류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면서 잘한 것은 무엇이고, 부족한 점이나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성찰'을 해보자는 제안을 독자들에게 던집니다. 후반부는 한류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새로운 '비전과 역할'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면서 화두를 제시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류는 콘텐츠와 기술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입니다. 그래서 한류의 미래도 콘텐츠와 기술의 결합, 즉 엔터테크(엔터테인먼트+테크놀로지)에서 찾아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한류의 역할과 관련하여 그동안 한류가 일방적인 수출, 진출의 양상을 띠면서 글로벌로 확산되었다면, 앞으로는 한류 수용 국가와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로 윈윈(win-win)하도록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제안을 하면서 구체적인 전략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품격있고 책임있는 문화강국'으로 도약하자는 목표도 함께 제시합니다.

Q. 이 책에선 한류 위기론, 피크(peak) 한류를 지적하고 있는데,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가요?

어떤 국가나 산업, 기업도 흥망성쇠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설사 정상에 올랐다 하더라도 계속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한류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만, 아직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닙니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 있죠. 피크(peak) 한류 논란은 그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논란입니다. K-팝과 드라마에 대한 세계적인 인기와 찬사,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콘텐츠 수출액 등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현상'만 보면 한류가 위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국내 미디어와 콘텐츠 시장은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 '황폐화되고 있다', 그래서 '한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콘텐츠 현장에서 나올까요? 그것은 한류의 토대가 튼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와 콘텐츠 생태계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생태계는 자본과 제작, 유통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동합니다. 그런데 최근 콘텐츠 제작(자본)과 글로벌 유통에서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의존을 넘어 '종속'되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이런 문제를 지적했을 때만 해도 많은 분들이 '걱정이 심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공감하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이제는 제가 묻고 싶습니다. K-콘텐츠 산업과 한류가 위기인가요, 아닌가요?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

Q. 엔터테크는 어떤 개념입니까? 교수님이 엔터테크를 K-콘텐츠, 한류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먼저 용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콘텐츠 혹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콘텐츠 테크(CT)와 엔터테크(Entertech)입니다. 두 용어는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콘텐츠 테크가 콘텐츠를 잘 만드는 기술이라면, 엔터테크는 이용자들이 콘텐츠에 몰입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게 하는 기술입니다.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합의된 것은 아니지만, 엔터테크는 콘텐츠 테크를 포함하면서 콘텐츠 생산과 소비 등 엔터테인먼트 가치사슬 전 분야에서 기술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고, 산업 자체를 혁신하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궁극적으로 더 확장된 산업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합니다.

20세기는 대중 미디어 시대였고, 미디어는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냈습니다. 지난 세기에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기술, 즉 테크놀로지의 발전입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콘텐츠 산업의 발전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술은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류의 전 세계 확산 현상도 기술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의 시대입니다. 생성형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은 현대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물론,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기도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도시의 공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특히 콘텐츠 산업에 광범위하고 혁신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 현장을 바꾸고 있으며,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콘텐츠 제작의 민주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을 비롯한 확장현실(XR) 기술의 활용은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면서 콘텐츠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K-콘텐츠와 한류의 미래를 엔터테크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Q. 책에서 언급하신 '아시아 협력적 콘텐츠 생태계 구축'은 새로운 개념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한류가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핵심 소비 지역은 동남아시아입니다.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빠른 경제 성장과 젊은 연령층 그리고 강력한 소셜 미디어 영향력 등을 기반으로 한류 확산의 중심 시장이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한국 정부 및 콘텐츠업계 간 협력은 앞으로 한류의 확장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뛰어넘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문화 교류, 공동 제작, 기술 협력, 인재 양성 및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상생 전략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난해 10월 개최된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아세안 관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CPS)로 격상된 만큼, 문화 및 콘텐츠 분야에서 한-아세안 관계도 한층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넥스트 한류>에서는 '한-아세안 협력적 콘텐츠 생태계 구축'으로 제안을 한 것입니다. 토종 OTT의 글로벌 진출이나 K-콘텐츠의 더 넓은 세계화를 위해서도 아시아 국가들과 공동으로 협력적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전략입니다.

Q. 문화강국 구현과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해 정책기조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의 힘이 강한 나라를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철학을 이어받아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강국의 토대를 쌓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주요 대선 후보가 '문화강국 실현'을 1호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고, 국민들의 기대도 큽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통해서 문화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공약 실현을 위해 K-콘텐츠 창작 전 과정을 국가가 지원하고, 특히 필요한 예산을 대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화강국 구현과 한류 정책 기조의 전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K-콘텐츠 수출 중심의 한류 정책으로는 결코 문화강국, 즉 '문화의 힘이 강한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자국 문화산업의 육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콘텐츠 산업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 생산과 소비, 수출과 수입 관계를 기본틀로 하는 한류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한류 소비국 및 현지 이용자들과 함께 즐기고, 함께 발전하는 방향으로 한류가 기여할 할 수 있도록 정책기조를 전환해야 합니다. 한류를 사랑하는 세계 모든 사람들과 문화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K-콘텐츠와 한류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책에서 제안한 '넥스트 한류'입니다.

Q.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내신 만큼,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콘텐츠 산업 발전과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한류의 지속가능성은 불가능합니다. 오랜 기간 미디어 산업 정책의 공백으로 인해 지상파방송사를 비롯한 국내 콘텐츠 기업들의 경쟁력이 매우 약해져 있습니다. 지역방송사들이나 PP들은 고사 직전입니다. 특히 콘텐츠 시장의 주류로 부상한 글로벌 OTT는 규제 공백을 이용하여 시장지배력을 크게 키우고 있는 반면, 전통적인 사업자들은 '규제의 족쇄'에 발이 묶여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업자들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방송 편성·광고·내용 관련 낡은 규제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글로벌 OTT들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콘텐츠 시장 내 재원이 부족하다 보니 넷플릭스 투자에 제작비를 의존하게 되고, 글로벌 유통망 또한 넷플릭스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규제의 신속하고 과감한 혁파를 통해 국내 사업자들이 이런 악순환 구조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줘야 합니다.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건강성을 회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시급합니다.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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