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수아크에 서식하는 오랑우탄 무리에 속한 암컷 시시(Cissy)가 낮잠 둥지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동물에게 생리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취약한 상태가 될 수 있는 수면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밝히는 것은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 중 하나인 오랑우탄도 밤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사람처럼 낮잠으로 보충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 연구소(MPI-AB)와 콘스탄츠대 연구팀은 26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수마트라 남아체주 오랑우탄(Pongo abelii) 53마리의 수면 행동을 14년간 관찰,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논문 제1 저자 겸 공동 교신저자인 앨리슨 애쉬버리 박사는 "나무 위에서 움직이며 먹이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관계를 탐색하는 것은 피곤하고 인지적 부담이 큰 일"이라며 "오랑우탄도 밤잠을 잘 자지 못했을 땐 인간처럼 낮에 침대를 만들어 낮잠을 자는 것으로 보충한다"고 말했습니다.
야생 오랑우탄은 매일 저녁 약 10분간 나무 위 안전한 곳에 나뭇가지를 구부리고 꺾어 둥지를 짓고 잎으로 매트리스와 베개까지 만들어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잡니다.
어미와 젖먹이를 제외하면 성체 오랑우탄은 대부분 혼자 잡니다.
지상에서는 둥지를 볼 수 없어 오랑우탄의 수면 패턴을 연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구팀은 오랑우탄이 둥지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는 소리는 들을 수 있다며 소리를 통해 수면 시간을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수마트라 남아체주 클루엣 습지(Kluet swamps)에 있는 수아크 발림빙 관측소(SUAQ 프로젝트)에서 14년간 수마트라 오랑우탄 성체 53마리를 대상으로 455일간 밤과 낮 수면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밤에 둥지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시간을 '수면시간'으로 정하고 이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오랑우탄의 평균 수면시간은 12시간 50분에 달했습니다.
또 낮에는 관찰이 이루어진 455일 중 41%에서 최소 한 번 이상 낮잠을 자는 모습이 목격됐고, 평균 낮잠 시간은 76분이었습니다.
이들은 보통 2분 미만의 짧은 시간에 밤 둥지보다 단순하지만 안전한 낮잠 둥지를 만들어 낮잠을 잤습니다.
밤잠 시간과 낮잠의 관계 분석 결과 밤잠 시간이 짧을수록 낮잠이 길어졌고, 전날 밤 수면시간이 한 시간 줄 때마다 낮잠 시간은 5~10분 늘어났습니다.
이는 낮잠이 밤잠 부족을 보충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또 밤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 전날 낮에 섭취한 열량이 적을 때, 기온이 낮을 때, 비가 왔을 때, 먼 거리를 이동했을 때 밤잠이 짧아졌고, 다른 오랑우탄이 근처에서 잠잘 때도 수면시간이 짧아지고 다음 날 낮잠이 길어졌습니다.
애쉬버리 박사는 "밤 둥지 주변에 다른 오랑우탄이 있을 때 수면시간이 짧아진다는 점은 정말 흥미롭다"며 "이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자는 상황과 비슷하고 오랑우탄이 사회적 활동을 잠보다 우선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동 교신저자인 메그 크로풋 박사는 수아크 오랑우탄들은 다른 지역 오랑우탄보다 낮잠 둥지 짓는 빈도가 더 높다며 "사람도 짧은 낮잠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오랑우탄도 낮잠이 생리적, 인지적 회복을 돕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면이 진화해온 야생의 사회적·생태적 환경에서 수면을 연구하는 것은 수면의 진화적 기원과 궁극적 기능 이해에 필수적"이라며 "이는 유인원과 인간 조상에서 수면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창을 열어준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Natasha Bartalotta / Suaq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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