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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방에 사는 굽은 나무?…수도권 안팎의 지방 청년

지방산업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자손이 가난해지면 선산의 쓸 만한 나무는 팔아버리지만, 줄기가 굽어 쓸모없는 것은 그대로 남는다. 결국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도리어 제구실을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요즘 이 속담이 비수도권에서는 '지역 소멸, 인구 유출' 현상에 빗대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배웠다고 하는 똑똑한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고 못난 자식이 고향에 남는다'는 건데요. 같은 속담에서 정반대 평가를 받는 굽은 나무. 비수도권 청년이 느끼는 수도권과의 괴리, 소외, 위기 의식이 큽니다.

### 수도권 인구 50.6%, 비수도권 인구 49.4%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 비율입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학계에서도 현상 진단과 연구 논의가 활발한데요. 그래서 오늘은 수도권 안팎에 사는 '지방 청년'을 키워드로 최근 열린 강연과 학술행사 일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 "그래도 제가 대학을 나왔는데…"

지역 청년들은 왜 수도권으로 굳이 나오려고 하는가.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울산, 부산, 창원 등 제조업 중심 동남권 산업도시 청년들을 다 년 간 지켜보며 이 지역의 일자리, 노동자를 조명해왔는데요. 저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는 제조업 산업 도시의 쇠락과 불안한 일자리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침 '두산 인문극장 2025'에 강연자로 나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방청년 소외감
 
<양승훈/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동남권 산업도시의 고용 구조는 '남초'로 생산직 위주의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여성 일자리, 사무직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생산직 일자리도 자동화, 아웃소싱, 외주화로 늘어나지 않는 추세다. 남자 대학생들은 공장 아르바이트를 선호한다. 그러나 중공업 공장의 산재부터, 공장들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 지를 목격하며 충격을 받는다. 큰 공장의 경우 노동조합의 방패 안에서 정규직의 노동 윤리가 천차만별이고, 힘들고 위험한 공정은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 맡긴 채, 간접직이나 작업 세팅만 본인들이 맡아 태만하게 일하기도 한다. 남성 대학생들은 결과적으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지방청년 소외감
 
<양승훈/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숙련공이 되어 입사하라고 하면 '그래도 제가 대학을 나왔는데…'라고 한다. 이들이 원하는 대졸 이상 관리직 일자리는 부족하다. 공장이 아니라면 공무원 공기업이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거점 대학 출신들이 주로 시험을 통과해 독점하기에 지방 사립대 출신이 취업하기는 어렵다. 커리어 관점에서 지방살이 자체가 '경력 단절'이다. 비수도권 지방 도시는 여성 커리어의 확보가 어렵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별정직, 임기제 일자리들이기 때문에 커리어패스를 연속적으로 이어가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비수도권의 대다수 도시와 산업들은 지역 청년들의 고학력화에 대응하는 노동 시장을 구축하지 못했다. 지역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확보할 수 없다면 지방 청년들의 지역 탈출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지방 청년 문제는 지역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 지방 청년은 '시간 거지'?

양 교수는 강연 말미에 지방 청년들은 '시간 거지'로 수도권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 시간이 적다고 했는데요. '시간 거지'라고 표현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양승훈/경남대 교수>
"지방에는 전철 등 대중교통 기반으로 광역 간이나 지역 내 연결이 잘 안 되어 있어서, 자가용이 없는 이상, 인접 지역에 있는 청년들이 일찍 귀가해야(오후 9시 이전) 하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거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다. 이런 의미이다. 서울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수도권 친구들이 모두 홍대에 모여도 11시에는 헤어질 수 있는 데, 부울경 같으면 9시면 헤어져야 한다."

### 똑같이 수도권 대학 나와도 성장 지역에 따른 다른 출발선

지방 청년이 지역을 떠나 수도권에서 정착하려고 해도 수도권에서 계속 자라온 청년과 비교해 높은 벽을 실감합니다. 지난 13일, 지역 사회학회 주관으로 '지역의 눈으로 본 지역'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열렸는데요. 여러 연구 가운데 청년들의 성장지와 대학 소재지에 따라 첫 일자리와 좋은 일자리의 이행 기간이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 연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방청년 소외감
지방청년 소외감

연구자들은 한국노동패널에서 추출한 표본 4천271명을 대상으로 만 14세 당시 성장 지역과 졸업 대학 소재지를 각각 분류했습니다.

성장지와 대학 소재지를 각각 수도권(성장지)→지방(대학 소재지), 지방→지방, 수도권→수도권, 지방→수도권 이렇게 4개로 집단으로 나눠 청년들의 일자리 진입 기간을 분석했는데요. 그래프가 아래로 위치할수록 일자리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는 걸 뜻합니다. 분석 결과 지방에서 성장해 수도권 소재 대학을 간 청년들은 수도권에서 계속 자라고 공부한 청년들에 비해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얻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다고 합니다.

지방청년 소외감
지방청년 소외감
 
<김가현/청주복지재단 전문연구원>
"첫 일자리 이행 기간의 경우 수도권→지방, 지방→지방, 수도권→수도권, 지방→수도권 집단 순으로 그래프가 아래쪽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졸업 후 3년 정도까지는 경로별 집단의 첫 일자리 이행 양상이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이후 격차가 점차 벌어졌다. 첫 일자리와 괜찮은 일자리 이행 양상에서 볼 때 지방→수도권 집단이 상대적으로 일자리 진입에 더 취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수도권 대학 졸업 청년층이라 할지라도 성장 기반 지역이 어느 곳이냐에 따라 노동시장 이행의 과정에서 어려움 정도가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방은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지방 청년들이 수도권에서 구직 활동을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높은 진입 장벽을 뚫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지방청년 소외감
 
<김가현/청주복지재단 전문연구원>
"이 사회에서 수도권 대학으로 진입하거나 수도권의 일자리를 갖는 경우는 더 높은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의 지역 이동은 단기적 진학이나 취업에 그치지 않고 일자리, 혼인, 출산 등 생애 과정 전반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중략) 수도권으로 이동한 우수 인재가 다시 지방으로 돌아가는 귀환 이동 비율은 매우 낮아 인적 자본 축적의 지역 간 격차를 심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지방 청년의 일자리 문제는 지방에 머무르는 청년과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으로 이원화해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요. 먼저 지방에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고부가가치 일자리 산업을 전략적으로 유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 생활비 등으로 어려움을 갖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새 정부의 5년 국정 운영 방향을 설계하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출범해 활동에 들어갔는데요, 국정위는 지역 특화 전략산업을 키우고 지역 투자를 촉진해 지역의 균형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정위 TF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지역균형발전특위에서 실효성 있는 밑그림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SDF 다이어리'는 SBS 보도본부 미래부에서 작성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관점이나 시도를 전합니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매주 수요일 발송되는 'SDF 다이어리'를 구독해 주세요. →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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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빡!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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