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은 스포츠에서 가장 힘든 종목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무려 42.195km를 달려야 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선수들은 많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이 가운데 최악이 마라톤 사기극입니다. 풀코스를 다 뛰지 않은데도 다 뛴 것처럼 속이는 것이지요. 오늘은 역대 마라톤 사기극 중에서도 '끝판왕'이라 불릴만한 희대의 사건을 소개합니다.
1904년 올림픽에서 나온 원조 '금메달 사기'

마라톤 '금메달 사기'의 원조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던 미국의 프레드 로즈 선수입니다. 출전 선수 33명 가운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땀방울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이 관중석에서 내려와 월계관을 쓴 로즈와 기념사진까지 찍었는데 사기극이 곧바로 발각됐습니다.

로즈는 15km 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레이스를 포기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이 로즈를 태워줬고 로즈는 결승선 근처에서 내려 달린 것입니다. 사건 전모는 트럭 운전사가 나타나 증언하면서 밝혀지게 됐는데 로즈는 15분 동안만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분을 맛봤습니다. 그는 이듬해 1905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해 구겨진 체면을 다소나마 만회했습니다.
198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나온 역대급 사기극

미국 보스턴 마라톤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대회입니다. 1947년 서윤복 선생이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고 1950년 대회에서는 함기용-송길윤-최윤칠 3명이 1~3위를 석권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51년 만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의 명성에 먹칠을 한 사건이 1980년 대회 때 터졌습니다. 로지 루이즈라는 여성이 희대의 사기극을 벌여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로지 루이즈는 1953년생으로 원래 쿠바 출신인데 9살 때 미국 플로리다로 이민을 왔습니다. 27살 때인 1980년 4월 21일, 루이즈는 보스턴 마라톤 여자 부문에서 2시간 31분 56초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자 당시 마라톤 역사상 세 번째로 빠른 기록이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완전 무명의 선수가 이런 기록을 낸다는 게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루이스는 1년 전 첫 출전한 뉴욕시 마라톤에서 2시간 56분 29초를 기록했는데 1년 만에 무려 25분을 단축한 것이어서 더욱 경이적인 기록으로 평가됐습니다. 언론들은 여자 마라톤 천재가 등장한 게 아니냐며 흥분까지 했습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던 레이스

하지만 루이즈에 대한 의혹은 처음부터 커졌습니다.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출전이 겨우 두 번째인 신인 중의 신인이 이런 대기록을 작성한 게 누가 봐도 이상했습니다. 42km 이상을 달린 사람치고는 땀도 거의 없었고 호흡도 너무 편해 보였습니다.
의심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경기 직후 인터뷰입니다. 우승 직후 현장에 있던 기자가 "어떻게 기록을 단축한 거죠? 인터벌 트레이닝을 강하게 했나요?"라고 묻자 루이즈는 "인터벌이 뭔지 몰라요."라고 대답했고 이어 기자가 "어떤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았나요?"라고 질문하자 "코치는 없어요. 혼자 연습했어요."라고 말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루이즈를 인터뷰한 기자도 즉석에서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우리는 모든 체크 포인트(확인 장소)에서 신비스러운 여성 챔피언을 놓쳤습니다. 2시간 31분이라는 환상적인 기록은 이 시점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아무튼 세계 수준을 뛰어넘는 기록을 보스턴 마라톤에서 작성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2시간 31분의 레이스 동안에 루이즈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회 주최 측과 취재진이 5km 체크 포인트마다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루이즈 얼굴이 나온 사진은 결승선 직전까지 단 한 장도 없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하버드 대학생 2명의 증언입니다. 이들은 결승선에서 800m 떨어진 곳에서 루이즈가 관중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기극 부인

거의 모든 미국 언론이 이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했지만 로지 루이즈는 끝끝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어요. 내가 한 일을 내가 알아요. 언젠가 다시 내 실력을 입증해 보이겠어요."라고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뉴욕의 한 신문사가 다시 풀코스를 다 뛰면 10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대신 "거짓말 탐지기에 응할 용의는 있다, 나는 결코 속이지 않았다"는 변명만 계속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우승한 기분은 1분밖에 느끼지 못했다. 이후로는 매 순간이 악몽이었다. 만약 (주최 측이) 제 우승을 박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흐느껴 울기까지 했습니다.

루이즈 스캔들이 터지자 1년 전에 있었던 뉴욕시 마라톤 주최 측도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이 대회에서 루이즈가 2시간 56분 29초를 작성하면서 이듬해 보스턴 마라톤 출전 자격을 얻었기 때문인데요, 조사 결과 뉴욕 마라톤에서도 사기를 벌인 게 드러났습니다.
목격자인 프리랜서 사진작가의 증언에 따르면 루이즈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려 결승선까지 걸었고, 이후 부상당했다며 응급 처치소로 호송됐는데 자원 봉사자들이 완주한 것으로 표시해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뉴욕 시 마라톤 관계자는 루이즈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해 대회가 끝난 지 1년 뒤인 1980년 4월 25일에 소급해 실격 처리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3일 뒤인 보스턴 대회 측도 루이즈의 우승을 박탈하고 기록을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루이즈의 사기극은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린 것입니다.

희대의 마라톤 사기극을 벌인 로지 루이즈는 이후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2년 뒤인 1982년, 자신이 일하던 부동산 회사에서 거액을 횡령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5년의 보호 관찰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듬해에는 코카인 거래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어 3년의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고 한 회사에서 근무하다 2019년 7월 66세의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마라톤 사기극을 연거푸 펼친 것에 대해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대선 떨어진 뒤 사기극 펼친 멕시코 정치인

2007년 9월 말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평소 청렴과는 거리가 멀었던 멕시코의 대선 후보 출신 로베르토 마드라소가 마라톤에서도 부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인데요, 그는 이 대회 55살 이상 부문에서 2시간 41분 12초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하며 1년 전 대선 패배의 아픔을 씻고 국민의 동정심을 얻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골인지점에서 찍힌 사진 한 장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지만, 마드라소는 바람막이 상의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러닝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 레이스 도중 몰래 코스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사용했음이 드러났습니다. 마드라소는 괴한들에게 7시간 동안 납치됐다고 주장했지만, 멕시코 국민들은 동정표를 얻기 위한 자작극이라면서 거센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2년 전엔 멕시코에서 1만 명 이상의 마라토너가 부정한 짓을 저질러 화제가 됐는데요,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전체 참가자 3만여 명 가운데 무려 1만 1천여 명이 코스를 제대로 달리지 않고 완주한 것처럼 속인 사실이 드러나 실격 처리됐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댓글 아이콘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