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정 수원고검장
현직 검찰 고위간부인 고등검사장이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검찰 수사·기소 분리' 방안을 비판하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렸습니다.
권순정(51·사법연수원 29기) 수원고검장은 오늘(23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검찰의 미래를 그려봅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형사사법 시스템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트로이 목마'를 들이는 일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수사·기소 분리 주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개념이 모호하고 연원이 불분명해 참고할 만한 해외자료를 찾기 어렵다. 수사·기소 분리가 무엇인지 냉철히 따져보고 그 의미부터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권 고검장은 "검찰의 광범위한 직접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계신 게 사실"이라며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를 제한하는 의미의 수사·기소 분리라면 보다 전향적이고 건설적으로 논의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집권여당이 정적을 공격하는 이슈에서 특검법을 통과시켜 무제한 검찰 수사를 진행한다면 이런 제도 개선은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검찰 수사가 특검 제도와 결합해 힘센 의회권력의 '내로남불'식 공격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권 고검장은 "만약 수사·기소 분리가 검사의 수사를 일체 금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소추' 기능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라며 "문명국 중 어디도 소추를 결정하는 기관이 사실 확인을 하지 못하도록 막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법관이 판결을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검사는 소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수사를 해야 한다"며 "수사는 소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기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권 고검장은 "전문가들과 현장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며 최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사례들을 거론, "이미 경찰이 피의자에게 불기소를 약속하며 거액의 돈을 받고, 조폭이 동료 조직원에게 '검찰 조서는 이제 휴지조각'이라며 버젓이 위증을 회유하는 나라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법안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회의록조차 남지 않는 '소소위'(상임위원회 여야 간사 등 소수 인원만 참여하는 소위원회 회의)가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권 고검장은 "소설 '1984'에는 모든 사회문제의 책임을 골드스타인이라는 한 사람에게 떠넘기는 장면이 나온다"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손쉽게 검찰 탓으로만 돌리는 '골드스타인 책임전가식'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도 강조했습니다.
권 고검장은 법무부 법무과장에 이어 검찰과장으로 일했고 대검찰청 대변인, 법무부 기조실장을 거쳐 검찰국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 기획통으로 꼽힙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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