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박경수 작가는 스타 작가다. 그는 자신의 인터뷰에서 (대중이) 자신을 권력, 정치드라마를 쓰는 작가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저 그리고픈 인간의 본질을 그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판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한 장이 대한민국 정치판이었다는 말이 매우 와닿는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인간 군상의 총집합이 정치판이고, 그 정치판의 가장 날것 같은 인간 군상을 보여준 대통령 선거판이 최근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봉합되지 않고 터져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여전히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고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답답하고 숨 막히는 오늘의 현실을 리셋하고 싶은 갈망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은 지금 다시금 주목해 볼만하다.

드라마 속 국무총리 박동호는 2024년 <돌풍>이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판타지적 인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이후 펼쳐진 한국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그는 허구가 아닌 오히려 지금 한국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돌풍>은 대통령의 부패를 폭로하고 그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려는 국무총리의 암투로 시작된다. 그는 권한대행의 자리에 올라 스스로를 '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우지만, 이내 또 다른 권력투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반대 진영인 경제부총리 정수진 역시 권력의 자리를 두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둘 다 정의를 말하지만, 둘 중 누구도 '절차' 위에 서 있지 않다. <돌풍>은 이렇게 절차 없이도 권력을 선점하고, 개혁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지배를 시작하는 리셋된 독점체제를 그리고 있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이 드라마 속 세계가 결코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의 위임보다 앞서는 권력자의 자기 확신, 민주주의의 형식은 지켜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형식을 무력화하는 권력의 기획이 작동하고 있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박동호는 스스로 정의를 자임하지만, 그가 벌이는 정치적 '정화 작업'은 사실상 선택적 폭로와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다. 진실을 밝히기보다 더 큰 거짓을 앞세워 정당성을 차지하는 구조. 그것이 <돌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자, 지금 이 사회와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여론조작에 관한 부분이다. <돌풍> 속 권한대행 박동호는 대통령의 비리와 재벌의 검은 커넥션을 폭로하며 스스로를 '정의의 대변자'로 포지셔닝한다. 하지만 그는 그 진실을 선택적으로 공개하고, 그 시점을 정치적으로 계산한다. 언론은 그의 손안에서 움직이며, 여론은 폭로가 아닌 연출된 분노를 따라 흐른다. 이 장면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여론 환경의 기이한 왜곡, 사실보다 프레임이 우선하는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말하느냐'로 바뀌어버린 지금, 드라마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진실조차도 하나의 전략이 된 사회에서, 여론은 더 이상 민심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연출물일 뿐이라고 말이다.
<돌풍>이 2024년 공개 당시 조용한 돌풍을 일으켰던 이유는 대통령 시해, 비상계엄 모의, 헌법재판관 매수 등 현실 정치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다시 <돌풍>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 극적인 요소들이 현실 정치에서도 다르지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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