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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의 무덤 밝혀지나…"공주 왕릉원 2호 주인은 삼근왕"

백제 왕의 무덤 밝혀지나…"공주 왕릉원 2호 주인은 삼근왕"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

충남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에 수도를 둔 시기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이 일대에는 무령왕릉을 포함해 주요 무덤 7기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굴되는 아픔을 겪었고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명확하게 확인된 무덤은 제25대 왕인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가 함께 묻힌 무령왕릉뿐입니다.

백제가 공주에 터를 잡은 475년부터 538년까지 약 60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 무덤의 주인이 누구일지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나왔습니다.

국가유산청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조사한 결과, 2호 무덤 주인은 백제의 제23대 왕인 삼근왕(477∼479)으로 추정된다"고 오늘(17일) 밝혔습니다.

삼근왕은 13세의 나이로 즉위한 어린 왕이었습니다.

그는 개로왕(재위 455∼475)의 직계 후손으로, 477년 문주왕(재위 475∼477)이 피살된 이후 왕위에 올랐으나 15세 나이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명한 탓에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남아 있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공주 왕릉원 2호분 출토 어금니

연구소는 2023년부터 1∼4호 무덤을 재조사하던 중 2호 무덤에서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2점과 뼛조각 일부를 찾았습니다.

오동선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연구사는 "과거 도굴된 상태로 한 차례 조사가 진행됐으나 흙더미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바닥도 엉망인 상황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연구소는 무덤 안에 남아있는 흙을 모아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치아 등을 발견했습니다.

법의학 분석 결과, 어금니의 주인은 10대 중후반의 인물로 파악됐습니다.

자문에 참여한 이우영 가톨릭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오른쪽 위턱에 있었던 치아들"이라며 "치아의 형태 등을 볼 때 20대가 되기 전 10대 연령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소 측은 웅진 도읍기 시절 왕위 계승과 가계도, 어금니를 통해 추정한 연령대 등을 고려해 2호 무덤의 주인이 삼근왕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또 연구소는 "1∼4호 무덤에 묻힌 인물들은 개로왕의 직계인 문주왕과 삼근왕을 비롯해 혈연관계에 있는 왕족들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해지면 큰 의미가 있습니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된 지 50여 년이 지났으나, 삼국시대 왕릉급 무덤 대부분은 주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성별이나 연대 등 정확한 정보는 향후 연구·분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함께 발견된 뼛조각의 경우, 긴뼈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나 크기가 가로 1㎝, 세로 2㎝에 불과해 데옥시리보핵산(DNA) 등을 추출해 분석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연구소는 2호 무덤에서 나온 다양한 유물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덤에서는 청색 유리 옥이 달린 정교한 금귀걸이, 은에 금을 도금해 줄무늬를 새긴 반지, 철에 은을 씌워 장식한 오각형 형태의 칼 손잡이 고리 장식 등 다양한 공예품이 나왔습니다.

삼국시대 금속공예 전문가인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는 "웅진 도읍기 귀걸이 유물에서만 유리구슬이 확인된다. 한층 발전된 형태의 공예 기술"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교수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귀걸이를 언급하며 "5세기 후반 무령왕 대에 꽃을 피우는 백제의 뛰어난 황금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2호를 비롯해 각 무덤에서 여러 종류의 옥 1천여 점이 나온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연구소는 "황색과 녹색 구슬에 사용된 납 성분은 산지가 태국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교역망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치적으로 혼란기라고 인식돼 온 웅진기 전반부터도 백제는 내부 정치 체계와 대외 교역망을 잘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돼 왔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연구소는 1971년 무령왕릉 발굴 현장을 녹음한 음성도 공개할 예정입니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이 음성은 공주시에 사는 이 모 씨가 이사한 집에서 발견해 보관하다가 올해 1월 국가유산청에 기증한 것입니다.

무령왕릉은 우리 고고학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집니다.

당시 송산리 고분군(현재 명칭은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5호분과 6호분 배수로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된 이곳에서는 백제 미술의 정수라고 부를 만한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만에 유물 발굴을 마쳐 '졸속 발굴'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녹음 자료에는 1971년 7월 8일 당시 기자와 주민에 둘러싸인 채 속전속결로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이 담겨 있어 가치가 큽니다.

(사진=백제세계유산센터·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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