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피아니스트 손열음에게는 지난 1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상상해 본 무대가 있었습니다. 해외 유명 콘서트홀에 서거나,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무대가 아니었습니다. 손열음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무대는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전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20주기 추모 음악회였습니다. 그 무대가 지난달 23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렸습니다.

열정적인 문화예술 후원 활동으로 '한국의 메디치'로 불린 故 박성용 명예회장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거목 같은 존재였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 경제관료로 일하기도 했고,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4년부터 금호그룹에 합류해, 1984년 부친 박인천 회장이 별세한 후 금호그룹 회장이 되었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을 설립하는 등 그룹의 기반을 다진 그는 1996년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직을 맡았습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젊음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인류의 미래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에 따라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 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고 권혁주 등 수많은 영재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했습니다. 1998년부터 열린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연주자들은 2천여 명에 이릅니다.
실내악 전문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그의 뜻에 따라, 2000년 광화문 옛 금호그룹 사옥 건물 안에 금호콘서트홀이 개관했습니다. 또 금호현악4중주단을 창단해 실내악을 지원했고, 고악기를 실력 있는 연주자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주는 '악기 은행'도 운영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임지영, 김봄소리 등이 악기 은행의 수혜자였죠.

그는 문화예술 후원에 관한 일이면 항상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 메세나의 선구자'였습니다.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초대 이사장, 2003년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습니다. 2004년 독일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받았고, 사후인 2005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습니다.
고인의 10주기 추모 음악회에서도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했던 손열음은 금호영재콘서트의 첫해부터 함께 한 1세대 음악 영재였습니다. 고인은 손열음을 마치 친손녀처럼 아꼈습니다. 고인이 지휘자 로린 마젤에게 소개한 덕분에, 손열음은 만 18살의 나이에 뉴욕 필하모닉 아시아 투어의 협연자로 발탁되었습니다.
손열음의 피아노 리사이틀로 열린 20주기 추모음악회는 표를 팔지 않고 금호문화재단과 인연 깊은 음악가들과 음악계 인사들을 초청했습니다. 프로그램은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 라벨의 '라 발스',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등이었습니다. 연주 후 마이크를 잡은 손열음은 '회장님은 나이 어린 저를 항상 친구처럼 대해 주셨다'며, '1998년 회장님을 처음 만난 순간과 2005년 마지막으로 만난 공연에서 연주한 작품, 그리고 현재 고인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곡을 선곡했다'고 밝혔습니다.
"회장님을 알고 지낸 시간보다 떠나신 다음 시간이 더 많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님께서 남겨주신 귀중한 것들을 함께 추억해 주시고 소중하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박성용 회장님을 오래오래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손열음)

공연에 앞서 상영된 영상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이정란 등 금호문화재단과 함께 했던 수많은 음악가들이 각자의 추억을 소개하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저도 이 날 객석에서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내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친분이 있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저는 1990년대 말부터 취재기자로서 금호미술관, 그리고 광화문 금호아트홀을 드나들면서 그와 인사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재벌그룹 총수였다는데 권위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고 항상 소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공연 리허설 때도 와서 조용히 연주를 듣고 있거나 공연장에서 항상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종종 봤습니다. 의례적인 박수가 아니라는 게 느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진심으로 음악가들을 아끼고 사랑하는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고인을 제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04년 11월,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열린 김남윤-이경숙 듀오 연주회에서였습니다. 새로 생긴 공연장을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그는 이날도 역시 연주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공연장 로비에서 마주쳐 인사했더니, 그는 당시 만삭이던 저에게 '좋은 음악 들었으니 예쁜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덕담을 해 줬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닷새 후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다음 해인 2005년 5월 23일, 그가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만났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 생생한데 이렇게 빨리 떠나가다니 황망했습니다. 당시 영결식장이었던 광화문 금호아트홀을 찾았습니다. 영결식장에는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무척 좋아하던 곡이라 했습니다. 음악가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음악가들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했습니다. 저도 취재기자로서, 아니, 그저 한 명의 클래식 애호가로서, 그가 떠나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같은 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에서 그를 추모하며 들려줬던 '아다지에토'도 생각났고, 구석구석 고인의 숨결이 담긴 광화문 금호아트홀이 2019년 문을 닫을 때의 기억도 스쳐 갔습니다.
(광화문 금호아트홀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와서 썼던 취재파일 링크합니다.)
손열음의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추모 음악회 덕분에 저도 다시 과거를 되돌아보고 고인을 추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가 뿌렸던 씨앗이 뿌리를 내려 키 큰 나무로 자라고 열매를 맺으면서,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던 연주자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를 포함한 관객들 역시 그가 한국의 클래식 음악 발전을 위해 했던 노력 덕분에 오늘날 이렇게 풍성한 결실을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손열음의 추모 음악회 닷새 후인 지난달 2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는 한국 발레계의 스승을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최태지 X 문훈숙, 커넥션'이라는 제목으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한국 발레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토크와 함께, 후배 무용수들이 이들에게 헌정하는 공연이 펼쳐졌는데요, 이 공연에서 마침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유리 그리가로비치 전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 그리고 문병남 M 발레단 예술감독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던 겁니다.
지난달 19일 98세를 일기로 타계한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러시아 발레의 상징이요 영웅이지만, 한국 발레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스승이자 은인이었습니다. 국립발레단은 그가 안무한 볼쇼이 발레단 버전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라이몬다',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을 레퍼토리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립발레단에 자신의 작품들을 헌신적으로 전수해 준 것이, 오늘날 국립발레단의 위상을 만드는 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국립발레단은 우수한 레퍼토리를 갖추고 무용수 기량을 급격히 끌어올려 발레 관객을 크게 늘릴 수 있었습니다. 최태지 전 단장은 '초대 단장 임성남 선생님이 국립발레단의 아버지라면, 유리 선생님은 국립발레단을 키워준 제2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유리 선생님의 별세 즈음해 썼던 글을 링크합니다)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은 지난 4월 9일 64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문병남 감독은 198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주역무용수로 활약했고, 최태지 단장/예술감독 재임 시절 지도위원, 부예술감독으로 함께 국립발레단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는 특히 창작발레 안무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클래식 발레로 기초를 익힌 국립발레단이 야심 차게 내놓은 '왕자 호동'이 바로 그가 안무한 작품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발레 축제'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 무대는 기쁘고 흥겨운 축제 중에도 차분하게 한국 발레의 오늘에 이바지한 거장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마련해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후배 무용수들이 최태지 전 단장과 문훈숙 단장에게 헌정한 공연 중에 두 작품은 세상을 떠난 발레 스승들을 추모하는 의미도 담게 됐습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레이몬다'는 국립발레단 전현직 수석무용수인 김지영, 이재우가, 문병남 안무작인 '왕자 호동' 역시 국립발레단 전현직 수석 김리회, 정영재가 춤췄습니다. 모두 고인이 생전에 직접 지도했던 무용수들이라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두 사람을 추모하면서 저는 그 며칠 전 손열음이 들려줬던 추모의 연주도 떠올렸습니다.
이날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 한가운데 세워진 나무는 처음엔 앙상했으나 점점 자라면서 잎이 무성해졌고, 화사한 꽃을 피우고는 더욱 푸르른 신록이 되더니 어느새 황금빛 가을의 풍요로움을 발산했습니다.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이 나무는 곧 한국의 발레였고, 한국의 클래식 음악이었고, 한국의 문화예술이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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